FASAVA에 가다 [1부] FASAVA 2019 대회 참관기/이덕원

수의사는 어떻게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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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원 수의사(프리랜서 기자, 사진)의 기고문 3개를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1. FASAVA 2019 참관기 2. 아카사카동물병원 방문기 3. TRVA 응급전문동물병원 방문기 중 가장 먼저 FASAVA 2019 참관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반려동물과 인간은 어떻게 서로의 삶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지난 9월 25일부터 5일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소동물수의사대회(FASAVA)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의사들이 더 좋은 진료와 더 많은 사회 공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행사였다.

대회조직위원장인 이시다 타쿠오(Takuo Ishida) 일본임상수의학회 회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우리가 매년 이렇게 큰 행사를 열고 모이는 이유는 수의학의 새로운 성과들을 공유하기 위함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것들을 통해 수의사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동물, 공중보건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은 잘 정립되어 있고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지만, 반려동물 임상의 역할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며 “앞으로 더욱더 인간-동물 관계(Human-animal bond)가 중요해지는 만큼 수의사들이 더 큰 책임과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동물 관계(Human-Animal bond)는 어떻게 우리를 더 건강하게 할까

기조강연 역시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으로 채워졌다. 인간-동물 상호작용연구센터의 레베카 존슨 교수(Rebecca Johnson, 미국 미주리대 수의대)는 반려동물이 여러 면에서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직업 중 하나인 증권중개인들은 고혈압과 당뇨, 뇌졸중 등을 가질 가능성이 크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고혈압 관리가 잘 된다는 연구가 있다. 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자존감이 더 높고 우울증에 빠질 위험성이 낮다. 반려견과 교감 후에 사람과 반려견 모두 애정과 안정감에 연관된 호르몬 수치는 상승하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감소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이렇게 반려동물이 우리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그동안 수많은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존슨 교수는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노인과 반려견의 관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반려견과 정기적인 산책을 한 집단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산책한 집단, 산책을 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걷는 속도와 거리가 증가했다. 반려견은 산책할 때 날씨가 나쁘다거나 다른 스케줄이 있어 바쁘다는 이유로 투덜거리지 않는 좋은 산책 동료이며 노인들이 정기적인 운동을 하는데 좋은 원동력이 된다. 또 반려견과 산책하는 노인은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더 쉽다.”

존슨 교수는 반려동물을 통한 건강 보조를 지역사회 차원에서 복지의 일환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반려동물과 동반 가능한 은퇴자 시설이나 요양원이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반려동물을 돌보는 게 쉽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반려견 봉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노인뿐 아니라 힘든 항암 치료로 심한 식욕감소와 무기력에 빠졌던 소아 환자가 치료견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삶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던 사례도 있다. 이전까지는 의료기관에서 위생상의 우려로 반려동물을 거부했지만, 실제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 과정에 수의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반려동물은 어떻게 우리의 성공적인 노년에 도움을 줄까’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강연에는 수의사뿐 아니라 많은 일반인도 참석했다. 특히 일본 국왕 부부가 직접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밖에도 5일간 동안 유명 연자의 다채로운 강연이 진행됐다. 한국 연자로는 서울대 황철용 교수가 각화성 피부질환에 대해 강연했다. 행사 동안 4000여 명에 달하는 수의사들이 참가했다. 테크니션과 학생들을 위한 강의도 준비됐다.

두 개의 대형 홀에서 열린 부스 행사도 흥미로웠다. 수의사들에게 익숙한 여러 기업들뿐 아니라 일본의 제약, 의료기기 업체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또 중국계 기업들의 약진도 느낄 수 있었다.

“반려동물 수의사는 원헬스의 키플레이어”

행사 마지막 날 열린 강연에서는 마이클 데이 교수(Michael J. Day, 호주 머독대 수의대)가 ‘반려동물 임상수의사가 어떻게 원헬스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원헬스란 인간-동물-환경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보건을 위해서 의사와 수의 분야의 임상가뿐 아니라 연구자, 행정가 등 여러 전문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그동안 원헬스의 고려사항으로 야생동물, 산업동물이 주로 다뤄졌고 반려동물은 상대적으로 간과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원헬스가 기존에 주목했던 인수공통감염병 문제뿐 아니라 인간과 다른 동물의 비교 임상연구, 인간-동물 관계를 통한 건강증진 등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반려동물은 인간과 같은 생활 환경을 공유한다는 점 때문에 전염병뿐 아니라 생활습관, 환경으로 인한 여러 가지 건강상의 영향을 먼저 알 수 있는 표본이 되기도 한다.”

이어 데이 교수는 일상적으로 진료 업무를 하는 임상 수의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원헬스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의사와 수의 분야 임상가들이 더욱 긴밀하게 소통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 이는 같은 지역 수의사가 사람 병원을 찾아 가볍게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또 수의사는 보호자와 상담할 때 어떤 때 인수공통감염병을 의심해야 하는지 언제 병원을 꼭 찾아가야 하는지 교육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원헬스 개념 중 하나로서 수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반려동물의 건강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비만이나 흡연 등 인간-동물 관계에서 함께 나타날 수 있는 보건상의 문제에 대해 조언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 

데이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진드기나 모기 매개 질병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실제 영국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실시간 질병 감시체계를 소개하기도 했다.

데이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진드기나 모기 매개 질병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실제 영국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실시간 질병 감시체계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1. 영국 소동물수의감시네트워크 SAVSNET 바베시아, 살모넬라, 톡소플라스마 등 인수공통감염병뿐 아니라 파보, 디스템퍼, 클라미디아증 등 개, 고양이의 주요 전염성 질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https://www.liverpool.ac.uk/savsnet/real-time-data)
그림1. 영국 소동물수의감시네트워크 SAVSNET 바베시아, 살모넬라, 톡소플라스마 등 인수공통감염병뿐 아니라 파보, 디스템퍼, 클라미디아증 등 개, 고양이의 주요 전염성 질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https://www.liverpool.ac.uk/savsnet/real-time-data)

데이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반려동물 수의사가 동물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건강을 책임지는 원헬스의 키플레이어 중 하나란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마치며 – 수의사는 어떻게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가

반려동물 수의학은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원헬스에, 인류와 다른 생명의 건강과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

첫째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대응이다.

최근 아프리카 돼지열병 사례처럼 가축과 야생동물이 같은 질병에 노출된 경우 양돈수의사와 야생동물수의사의 협력 없이 효과적인 방역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신종 전염병 중 75%가 인수공통감염병인 상황에서 인류가 전염병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의학, 수의학, 환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둘째는 질병에 대한 예찰이다.

인간과 같은 생활 환경을 공유하는 반려동물은 인간과 같은 보건상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다. 과거 광부들이 탄광 안의 유독가스를 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려갔던 것처럼 반려동물에게 나타나는 이상 징후는 인간의 위험을 미리 알리는 경고신호일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사람과 반려동물 임상 간의 정보교류가 새로운 보건 문제에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셋째는 비교의학을 통한 인간과 동물의 의학 발전이다.

반려동물 수의학과 의학의 협업은 암을 포함에 다양한 질환을 연구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반려동물에 나타나는 여러 질환은 실험동물에서 인위적으로 유도한 질환에 비해 사람에게서 실제로 나타나는 질환과 훨씬 더 유사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반려동물 임상연구는 실험동물 연구와 달리 정말 치료가 필요한 생명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윤리적으로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넷째는 인간-동물 유대관계를 통한 사람과 반려동물의 건강과 행복 증진이다.

사람과 동물의 교감이 실제로 서로에 건강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준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쌓이고 있다. 수의사들은 인간과 반려동물이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수의사들은 동물치료의 긍정적인 효과들을 연구하고 동물치료가 더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기여할 수 있다.

모든 직업인이 꼭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가’이다.

수의사는 생명을 보호하는 직업이다. 수의사는 반려동물과 산업동물의 건강을 지키고 야생동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돕고 또 우리 사회에 건강한 먹거리와 약품을 공급하는데 기여한다. 특히 반려동물 수의학은 우리에게 가족처럼 소중한 반려동물이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려동물 수의사 역시 우리의 직무를 통해 동물의 건강뿐 아니라 인류의 건강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생명에 더욱더 큰 가치를 부여할수록 수의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앞서 언급한 보건상의 문제뿐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는 유기동물 문제, 개물림 사고를 포함해 동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 이슈들도 발생하고 있다. 동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을 넘어서 인간과 동물이 보다 행복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에 수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수의사에게 거는 기대와 요구가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수의사 사회는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이번 FASAVA 대회는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모인 수의사들의 열정과 노력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그림 2 행사 부스에 참가한 일본 반려동물 봉사단체. 잘 교육받은 반려견들이 의료기관이나 요양원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수의사와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은 반려동물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림 2 행사 부스에 참가한 일본 반려동물 봉사단체. 잘 교육받은 반려견들이 의료기관이나 요양원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수의사와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은 반려동물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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