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수의사들의 정치참여를 엿보다 下/이규영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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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기념비

정책 건의에 앞서 관계 기관과 단체를 만나다

미국수의사회와 미국수의과대학협회에서 조언을 얻은 후 국가정책프로그램(National policy program)의 두 번째 단계로 축산업계의 주요 생산자단체들과 농업∙환경 분야 단체, 미국 농무부(USDA) 본부를 방문했다.

이들 관계자들을 만나 기후변화와 식량안보에 대한 그들의 활동과 의견을 알아보고, 정책건의에 고려해야 할 다양한 이슈들을 논의했다.

 

먼저 축산생산자들의 주요 단체인 미국양돈생산자협의회(NPPC), 미국낙농생산자협회(NMPF), 미국농장단체연합(AFBF), 미국농장주연합의회(NCFC) 등을 방문했다.

이들 주요 생산자단체들은 사실 기후변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위협으로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지역 가뭄 등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들은 (연방차원의 문제가 아닌) 주 단위의 지역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역사적으로 미국의 농축산업은 늘 환경과 기후변화에 맞서 성공적으로 대처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이들 단체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프로그램 참가 수의사들의 견해를 소홀히 듣지 않았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매개체 유래 질병(Vector-Borne Diseases)과 동물 감염질병의 발생 지역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우리의 견해에 귀 기울이고, 그 대책과 연구협력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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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선을 위한 도시농장 (Common Good City Farm)

올해 프로그램에는 특별히 ‘도시농장’ 방문이 포함됐다. 저소득층 식량안보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공공선을 위한 도시농장(Common Good City Farm)’을 찾아갔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작물 생산이 감소하면 가격은 올라간다. 그러면 저소득층의 식량공급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된다.

최근 미국은 유기농식품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저소득층에 공급률이 낮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스턴트 음식섭취가 증가하면서 저소득층의 건강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도시농장이 대안책이 될 수 있다.

워싱턴DC 시내 슬럼가에 자리 잡은 이 도시농장은 문을 연지 7년째다. 다양한 지원사업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긍정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변 저소득층 주민들은 이 농장에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낮은 가격에 농작물을 공급 받고 있다. 인스턴트 음식 섭취를 줄여줘 건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교육효과에 따른 범죄율 감소 효과도 보고 있다. 굉장히 인상적인 대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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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장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

이어서 미국 농무부(USDA) 본부의 기후변화팀(Climate change office)를 방문했다. 농업경제학자와 기상분석가, 환경학자로 구성된 이 팀은 1990년대 초반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

기후변화팀은 “20여년의 연구를 통해 지속적이고 급격한 기후변화를 감지해냈으며, 지금은 단순 분석을 뛰어넘어 기후변화 예측과 각 기관의 대처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팀의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동물질병 발생 패턴 변화에 대한 토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정책건의를 위한 상세한 과학적 근거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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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무부(USDA) 본부

마지막으로 환경단체인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orld Wildlife Fund, WWF)을 찾았다.

환경단체임에도 축산 및 수산분과를 갖춘 WWF는 단체는 축산생산자들에게 환경에 대한 책임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야생으로부터의 질병전파 예방에 도움을 주면서, 환경보호와 지속적인 축산업 발전을 동시에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목축업 팀을 담당하는 팀 허드만(Tim Hardman)은 “최근 미국의 축산업에 지역적, 환경적 차이에 따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다양하게 나타난다”며 “특히 기후대 변화로 인해 야생동물 생활상이 바뀌면서, 전염성 질병의 위험요소를 관리하는 데도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 환경단체, 생산자, 학계가 서로 지속적인 소통과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동물복지를 고려한 환경단체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연구자료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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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에서의 회의

직접 정책 건의에 도전하다

국가정책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로 앞서 배우고 토의했던 내용을 종합해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직접 건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후변화와 식량안보 정책 중 주제를 정해 미국 상∙하원의원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필자와 함께 참여한 캘리포니아대학 수의과대학 대학원생들은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바바라 복서(Barbara Boxer)와 하원의원 존 가라멘디(John Garamendi) 사무실을 방문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전염성질병 발생패턴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지원 요청’을 골자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 중에서도 존 가라멘디 하원의원실에 대한 발표는 내가 담당했다. 캘리포니아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을 예로 들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야생동물의 생활상 변화와 그로 인한 질병발생의 위험성을 다뤘다.

이 발표를 위해 앞서 배운 노하우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간략하게 요약된 발표자료, 보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 그리고 구체적인 지원 요청사항을 작성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존 가라멘디 하원의원실은 “최근 캘리포니아의 가뭄이 심해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다”며 “동물 질병 발생 패턴의 변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고 답했다.

빌 시스코 교수는 “당장 발표의 성과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보통 직원 1명이 10~20분 정도의 시간만 투자해주는 국회의원실에서 2명의 직원 40분 넘는 시간 동안 관심을 보인 것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이어진 바바라 복서 상원의원실에서의 발표는 캘리포니아대학 수의과대학원생 웬디 잭슨이 주도했다. 목축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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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복서 상원의원(가운데) 사무실을 방문해 정책을 건의했다.

마무리하며..

이번 국가정책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수의사들의 정치참여를 일주일간 경험하면서, 훌륭한 점 두 가지가 눈에 띠었다.

첫 번째는 기본에 충실하지만 현장에서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교육과정이었다.

사실 미국에서도 정치참여의 기회가 모두에게 평등하지는 않다. 사회적 지위나 정치인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하면 더 효과적으로 정책참여가 가능하다. 그 과정이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빌 시스코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정치참여’ 과정을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루하게 이론만 가르치는 정치참여교육은 ‘불만’을 ‘불평’으로 변하게 할 뿐이며, 정치참여의 기본바탕을 철저히 체험하면서 ‘불만’을 ‘의견’으로 만들고 이를 정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실제 워싱턴에서의 일하는 사람들처럼, 매일 바쁘게 관계 기관의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종합해 ‘의견’을 만들고, 이를 국회의원사무실에 직접 전달하는 과정 모두를 스스로 해야 했다. 미국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정치참여 과정을 이해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수의대생이나 수의사들에게도 단순한 세미나 형식보다는, 직접 정치참여 과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개설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치참여 과정을 경험하면 더 나은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참여를 경험하고 싶은 수의대생이나 수의사들에게 주어지는 지속적 투자였다.

미국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주로 회의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한국과 유사하게 대부분 어린 나이에 낮은 연봉을 받는 사회 초년병이거나 학생 인턴이었다(이번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각 의원 사무실의 보좌관급 직원에게 발표할 수 있었지만, 보통의 개인적인 건의는 의원실의 인턴이 수렴해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다양한 수의사 단체들은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일하려는 수의대생이나 사회 초년병 수의사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여러 관련 분야를 소개하는 등 그들의 도적을 독려했다.

현재 미국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수의사들은 이러한 지원 과정을 경험했다. 물론 지원대상자 모두가 정치를 계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쌓인 노하우와 인맥은 수의사 단체의 중요한 재산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여의도에서 일하고자 하는 학생이나 수의사들을 협회나 학교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지원하거나 인맥에 도움을 주는 등 독려한다면, 분명 수의사 전체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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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에서 프로그램 참여자들과 함께

[칼럼] 미국 수의사들의 정치참여를 엿보다 下/이규영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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