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진료에 의약품 허가외사용 불가피한데..미허가 약 쓰면 면허정지?

국내 미허가 동물약 광고문제 지적 여파로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 추진..수의사회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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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한 수의사에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안이 8일 입법예고됐다.

국내에서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의약품을 적법절차 없이 들여와 쓰는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취지인데, 수의 임상에서 필수적인 허가외사용(extra-label)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의사회도 해당 조항에 문제를 제기했다. 의약품의 밀수나 유인행위는 별개로 규제하더라도, 임상수의학적으로 인정되는 허가외사용이라면 진료에 사용한 것 자체를 처벌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팔라디아·소렌시아 광고 문제 지적에..시행령 개정안까지

8일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은 ‘품목허가를 받거나 품목신고를 하지 아니한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행위’를 면허정지 처분 대상에 추가했다.

효능 및 부작용이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의 무분별한 사용에 따른 동물보건상 위해와 동물복지 침해를 예방하고 동물의료의 건전성을 확립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팔라디아, 소렌시아 등 해외에선 허가됐지만 국내에서는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동물용의약품을 들여온 동물병원이 이를 광고까지 한다는 지적이 국회와 언론을 통해 나오면서다(본지 2023년 9월 25일자 해외에선 쓰는 약, 국내에선 미허가..규제 완화로 동물치료 무기 늘려야 참고).

함께 입법예고된 시행규칙 개정안은 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면 최대 6개월의 면허정지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동물용의약품등 취급규칙에 따라 대한수의사회장의 추천과 함께 검역본부에 신고하여 합법적으로 들여온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안 조문대비표

축종 넘나들며 허가외사용 불가피한데..부작용 우려

문제는 품목허가가 되지 않은 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다양하다는데 있다.

수의 임상에서는 타 축종이나 사람에서 허가된 약품을 수의사가 전문성에 기반해 활용하는 ‘허가외사용’이 일반적이다. 축종이 워낙 다양한데, 안전성·유효성 평가 비용 대비 시장성이 낮아 품목허가를 받기 어려운 약품이 많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임상에서 주로 활용하는 인체용의약품들이 대표적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허가됐지만 동물에는 허가되지 않은 약품인 셈인데, 시행령 개정안에서 금지한 ‘미허가 동물용 의약품’에 해당된다면 동물 진료가 마비될 정도의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동물용의약품의 범주 안에서도 가령 돼지에서만 허가된 지속성 항생제를 개에 투약하는 경우도 허가외사용에 해당한다.

통칭 고양이전염성복막염(FIP) 신약으로 불리는 GS-441524처럼 사람에서도 동물에서도 허가 받지 않은 물질을 치료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동물병원에서 자체 배양한 줄기세포를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품목허가를 받거나 품목신고를 하지 아니한 동물용의약품을 진료에 사용하는 행위’에 저촉될 수 있는 여지가 다양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개정안은) 허가·신고절차를 지키지 않고 들여온 동물용의약품을 사용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자 한 것”이라며 전면적으로 의약품의 허가외사용을 규제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의의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개정안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덧붙였다.

 

수의사회 ‘임상수의학적으로 인정된다면 처벌 부적절’

대한수의사회는 시행령 개정안의 해당 조항이 아예 철회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당시 문제로 지적된 팔라디아, 소렌시아 등의 동물용의약품은 해외에선 정식으로 허가 받은 약품이다. 국내에선 품목허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수의학적으로는 그 효능이나 부작용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이 관계자는 “이들 약을 불법적인 경로로 구했거나 광고하여 유인행위를 벌였다면 문제지만, 아픈 동물을 위해 진료에 사용한 행위까지 처벌할 사안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허가외사용이라 해도 수의사의 전문성과 수의사-환자-보호자 관계(VCPR)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정말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문제가 있는 처방이라면 이미 처벌할 근거도 따로 있다. 현행 수의사법은 임상수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진료행위를 한 경우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약의 밀수나 유인행위는 별개로 규제하되, 임상수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진료행위라면 유통을 문제 삼으면서까지 면허정지처분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희귀의약품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며 “환자를 위해 어떻게든 구해서 사용하는 걸 처벌부터 하려는 것은 현장에 대한 몰이해”라고 비판했다.

이번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3월 19일까지 통합입법예고시스템을 통해 제출할 수 있다.

동물 진료에 의약품 허가외사용 불가피한데..미허가 약 쓰면 면허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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