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수술비 사전설명 의무 없는데‥동물만 규제하겠다는 政

농식품부,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고지제·공시제 정부입법 추진 발표..대수 `동의 못 해`

등록 : 2020.04.07 06:06:12   수정 : 2020.04.08 11:49:16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정부가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고지제 및 공시제 강행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20대 국회에서 보류된 관련 수의사법 개정을 정부입법으로 곧장 재추진하겠다는 것인데, 대한수의사회는 “진료항목 표준화 등 선행요건 없이는 (사전고지제 등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수의사법 개정안은 사람(의료법)에는 없는 예상 진료비용에 대한 설명의무를 추가했다.

정부의 수의사법 개정안은 사람(의료법)에는 없는 예상 진료비용에 대한 설명의무를 추가했다.


농식품부, 수술 등 중대행위에 사전고지제 도입하겠다

대한수의사회는 반대 입장 재확인 ‘수술비 사전 설명의무는 의료에도 없는 규제’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술 등 중대진료행위에 대한 사전고지제 도입, 다빈도 진료비용 공시제 등을 골자로 한 수의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6일 밝혔다.

농식품부가 제시한 사전고지제는 ‘동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등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진료행위’에 적용되는 형태다.

이러한 중대진료행위의 경우 진단명, 수술 필요성, 수술 방법과 내용, 예상되는 후유증이나 부작용, 수술 전후 보호자의 준수사항을 사전에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했다. 여기에 ‘예상 진료비용’까지 사전에 설명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어길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는 강제 조항인데, 이는 사람 의료보다도 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도 수술, 수혈, 전신마취 시 진단명이나 수술방법, 후유증 등을 알리고 서면동의를 받아야 하지만(의료법 제24조의2), 사전설명 의무항목에 ‘비용’은 없기 때문이다.

대한수의사회는 “진료 전에는 개체별 치료경과나 예후를 예측할 수 없어 진료비 산정도 어렵다. 사전고지는 할 수 없다”며 “사람의료도 진료비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전 서면동의의 대상이 되는 중대진료행위를 농식품부가 열거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꼭 수술이 아니더라도 농식품부가 정하기만 하면 사전고지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수의사회는 “동물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진료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공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입법 개정 시 1년 후부터 수의사 2인이상 동물병원에 공시제 적용

동물병원협회 ‘진료항목 표준화 이전에는 법 개정 원천 반대’

이번 정부 개정안은 표준화된 진료항목, 예방접종 등에 대해 순차적으로 공시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개별 동물병원이 책자나 홈페이지에 비용을 게재하는 것은 물론, 농식품부가 동물병원 여러 곳의 진료비를 조사·분석해 평균 가격이나 가격 범위 등을 제시하는 형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가령 반려견 중성화수술의 경우 A동물병원, B동물병원, C동물병원이 각각 홈페이지나 보호자 대기공간의 책자로 비용을 게시해야 한다. 아울러 농식품부가 전국이나 특정 지역의 중성화수술 단가를 일괄 조사해 평균 금액을 발표할 수도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매년 국내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일부를 조사해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 형태다. 병원급 조사결과는 심평원 홈페이지에서 개별 병원단위로도 확인할 수 있고, 의원급도 매년 표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공시 방법에 대해 농식품부는 “진료항목별로 단일비용이나 범위를 정해 고지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병원별로 공개된 비급여진료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병원별로 공개된 비급여진료비

 
정부 개정안은 개별 동물병원의 공시제를 법 개정 공포 1년 후부터 2명 이상의 수의사가 진료하는 동물병원에 먼저 적용할 방침이다. 공포 후 2년째가 되면 모든 동물병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시정명령을 부과하거나, 동물병원 시설 장비의 이용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진료비를 사전에 공시하지 않거나, 공시된 진료비보다 높게 받으면 아예 동물진료업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수의사회는 “진료항목 표준화를 완료한 후 다빈도 진료항목을 선정해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표준화 연구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국가예산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동물병원 내에 동물 소유자의 권리·의무를 게시하는 내용도 정부 개정안에 포함됐다.

대한수의사회는 “이번 정부 입법안은 다음(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될 예정”이라며 “현재(제20대)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동물 진료비 관련 법안이 폐기되는지 확인하는 한편, 제21대 국회에서도 지속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병렬 한국동물병원협회장은 “진료항목 표준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관련 법 개정이) 소비자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아직 표준화된 항목도 없는데 사전고지제든 공시제든 논의하자는 것은 성급하다”면서 “진료항목 표준화가 선행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법 개정 자체에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는 4월 7일부터 5월 18일까지 40일간 진행된다. 관련 의견 제출 절차는 국민참여입법센터(바로가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단 [의견 제출]란을 클릭하면 사전고지제, 공시제 등 개정 조문별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