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백신으로 ‘영웅’ 찬사받은 국내 기업 대표, 수의사죠

유바이오로직스 백영옥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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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콜레라 발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찬사를 받는 국내 기업이 있습니다. 개량형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개발해 WHO의 승인을 받은 유바이오로직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유니세프(UNICEF)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18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유바이오로직스의 새로운 경구용 콜레라 백신(유니콜-S) 승인 소식을 환영했습니다. 국제백신연구소(IVI)의 줄리아 린치 박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바이오로직스를 ‘언성 히어로’라고 언급했습니다(“EuBiologics is really the unsung hero of the story”).

이처럼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는 유바이오로직스의 대표는 수의사입니다. 수의대생 시절부터 백신 개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백영옥 대표를 강남구 유바이오로직스 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소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여물도 많이 먹이고, 벌집을 건드려서 소랑 같이 도망가다가 소가 다친 적도 있고, 소뿔이 부러진 것도 보고 했죠.

한 번은 소 발굽에 염증이 생겨서 소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보면서 ‘소를 치료하는 직업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자연스럽게 수의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수의대생 시절에 미생물학과 면역학을 배우면서 백신 개발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질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 보였어요. 백신이 많은 동물과 인류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특히, 농장동물의 경우 한 번 전염병이 발생하면 수백, 수천 마리의 동물이 감염되어 피해를 입기 때문에 질병 예방과 백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의미생물학 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수료까지 했습니다. 박사학위는 나중에 고려대(생명공학)에서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녹십자수의약품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이후, CJ제일제당 제약사업본부로 자리를 옮겨 18년간 근무하며 백신 사업을 했습니다. CJ에서 기술팀장, 생산팀장, QA팀장을 거쳤어요. 그 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바이오공정실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국내 회사가 백신, 바이오의약품을 만들어서 수출하려면 해외 GMP 기준을 맞춰야 하는데 이를 위한 공공인프라 시설을 운영·관장하는 일을 4년간 했습니다.

2010년 3월에 정식 창업을 했습니다. 당시 콜레라가 저개발국가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었는데, 여행자들이 해당 국가들을 방문했다가 콜레라에 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여행자들을 위해 경구용 콜레라 백신이 만들어졌죠. 여행자 백신으로 잘 알려졌던 스웨덴 제조사의 제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용 시 불편함이 있었고 가격도 비싸 개발도상국에 공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IVI(국제백신연구소, 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가 지원하여 베트남의 국영 백신 생산업체가 스웨덴 기술을 이전받아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만들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인도의 샨타바이오테크닉스 사가 기술을 이전받아 백신을 생산했습니다.

샨타바이오테크닉스는 연간 300만 도스의 백신을 생산했었는데, 당시 매년 콜레라로 사망하는 사람이 10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백신이 턱없이 부족했던거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고, IVI가 샨타바이오테크닉스에 이은 제2의 제조업체(2nd Manufacturer)를 물색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서울대에 있는 IVI는 우리나라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입니다. 당시 IVI가 제2의 제조업체로 한국기업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회사 창업이 추진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바이오공정실장으로 일하고 있던 제가 회사를 책임지고 운영할 전문가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나도 세계와 인류를 위해 뭔가 기여를 해봐야지 않겠어?’라는 생각이었지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을 사업성 분석이었습니다. IVI가 내세운 조건은 ‘최소 연간 600만 도스 이상 생산’, ‘WHO 기준에 맞는 GMP 시설 구축 및 WHO 적격성심사 통과’, ‘유니세프 납품 단가 1달러대’였습니다.

22년간 이 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기술에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만약 600만 도스를 1.5달러로 공급하면 연간 900만 달러의 매출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판단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IVI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느냐였습니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포장방법을 바꾸고, 유가배양식 발효법(Fed-batch-type Fermentation)을 적용해 생산성을 2~4배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적용으로 2010년 9월 1일 IVI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인도 샨타바이오텍이 콜레라 백신 생산을 중단하면서 유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세계 유일의 글로벌 기준을 갖춘 콜레라 백신 생산·공급 업체가 됐습니다).

힘든 점도 많았습니다. 운영자금과 개발자금 확보가 큰 관건이었습니다. 투자유치를 위해 70여 곳의 투자처를 찾아다녔는데, 투자가 중도에 무산되고 보류되는 일도 있었고, 투자유치와 회계실사까지 마친 상태에서 주금 납입일에 투자를 포기한 곳도 있었죠.

2012년 가을 직원들의 급여가 2~3개월씩 밀렸습니다. 투자금이 입금되기로 했다가 취소된 날은 11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해 12월에 ‘20만 원짜리 우동’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편집자 주 : 백영옥 대표가 투자유치를 위해 직접 가방을 짊어지고 70여 곳의 투자처를 찾아다녔지만, 투자유치에 실패했고, 2012년 12월 말 회사의 통장 잔액은 400여만 원에 불과했다. 백 대표는 그 돈을 당시 전 직원 20명에게 20만 원씩 이체하고 “많지는 않지는 20만 원을 이체했으니,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따뜻한 우동이라도 사드세요. 밀린 급여는 곧 마련해 지급하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20만 원짜리 우동 이야기’다. 이후 투자 유치에 성공한 유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WHO PQ인증을 획득했고, 2016년 유니세프와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1월에는 코스닥 상장을 했고, 현재 직원 수는 325명이다).

유바이오로직스 2공장(V Plant)

유비콜-S 제품입니다. 유비콜-S는 기존 유비콜-플러스의 항원 제조방법 및 조성의 개선을 통해 생산량을 약 40% 가까이 증대 시킬 수 있도록 개량됐으며, 네팔 등지에서 2년 간의 비교임상 3상을 통해 그 효능을 입증했습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연구개발비 지원으로 국제백신연구소와 공동 개발했고, 유바이오로직스가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식약처로부터 수출용 품목허가를 받았고, 최근 WHO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춘천2공장 GMP시설까지 포함해 연간 4900만 도스 생산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콜레라 발생이 없고, 가끔 여행자들이 걸리는 수준이기 때문에 관심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전쟁, 기후변화 등으로 콜레라 발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50억원을 수출했는데, 올해는 4900만 도스를 수출해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티푸스 접합백신의 2단계 임상 3상을 아프리카에서 진행 중이며, 수막구균 접합백신과 폐렴구균 접합백신도 국제협력을 통해 3상 임상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세균성이질 백신 및 장독성대장균 백신 등의 기술도입 및 수탁생산 협업을 통해 글로벌 백신제조업체로 위상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자체 플랫폼기술로 개발 중인 유코백-19 변이주백신 및 프리미엄 백신인 RSV백신, 대상포진백신, 자궁경부암백신 등도 추진 중입니다.

유바이오로직스 본사 입구. ‘health that lasts a lifetime’이라는 문장에서 백신에 대한 회사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유바이오로직스의 미션은 ‘일생 동안 지속되는 인류의 건강에 기여한다’이다.

제가 수의사인 걸 아는 사람 중에 ‘콜레라 백신’을 한다고 하니 ‘돼지콜레라?’라고 물어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친절하게 돼지콜레라는 바이러스고 사람콜레라는 세균이라고 설명해 줍니다(웃음).

수의학 전공자로서 생명과학 관련 일을 하기 위해 CJ제약사업본부에 들어갔었고, 생명과학의 꽃이 ‘백신’이라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끔 농담으로 내가 ‘백 씨’여서 백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웃음).

수의학은 생명공학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좋은 학문이라고 봅니다. 최근 원헬스 개념도 나오고 있는데, 동물과 사람의 건강이 별개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고, 의약품 개발 시 동물을 통한 안전성, 유효성 평가도 수의사가 가장 잘 수행·판단할 수 있죠. 수의학은 종합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동물용의약품뿐만 아니라 인체용의약품 개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후배 수의사들이 임상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쪽으로도 많이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의사과학자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수의사과학자도 필요합니다. 현재 동창회장(서울대 수의대 동창회장)인데, 학생들에게 어떻게 생명과학 분야에 대해 알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정책적으로 학교에서 수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조금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의사 출신 벤처 기업가도 많고, 생명공학 분야에서 활약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을 처음 개발한 화이자의 CEO도 수의사였습니다. 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이 생명공학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의학의 꽃은 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전의식을 가지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에 도전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수의학은 다른 학문에 비해서 원리부터 실용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바이오의약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WHO와 일을 하다 보니 WHO에 일하는 수의사가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국제기구나 국제사회에서 수의사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콜레라백신으로 ‘영웅’ 찬사받은 국내 기업 대표, 수의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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