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유정 작가 소설 `28`을 읽고서 – 오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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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와 남양주 근처 도시 '화양'에 인수공통전염병 '빨강 눈’이 덮치고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 반려견 또는 모든 개들이 매개로 보이는 전염병이 인구 29만명 도시를 덮치고서 벌어지는 일들. 그 도시에서 벌어진 28일 동안의 일들. 그리고, ‘스타’와 ‘링고’라 이름 붙여진 개들이 벌이는 아득한 사랑의 일들.

‘화양’은 서울의 위성도시다. 화양에는 29만명의 사람들과 함께 근교도시여서 자연이 살아 있다. 그곳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발생하고 그 질병은 48시간만에 사람을 죽인다. 처음엔 결막충혈로 ‘빨간 눈’이 되고 곧바로 온몸에 출혈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 그것은 작가가 ‘빨강 눈’이라 이름한 인수공통전염병.

소설의 처음과 끝은 ‘서재형 수의사’로 시작하고 끝난다. 서재형은 처음에 알래스카 평원에서 썰매개 레이스 도전자였다. 화양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도시 근교에 살았던 서재형은 부모의 선택으로 알래스카로 이민을 떠난다. 서재형은 18세에 개썰매 경주인 아이디타로드(Iditarod Trail Sled Dog Race)에 도전하게 된다.

아이디타로드는 ‘최후의 위대한 레이스’라 불리운다. 세계 최대 개썰매 경주로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출발하여 27개의 체크 포인트를 거쳐 베링해 연한 마을 놈(Nome)까지 1,6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는 경주이다. 아이디타로드 대회는 ‘놈’의 주민들을 구한 용감한 썰매꾼들에게서 유래되었다. 1925년 '놈'에 악성 디프테리아가 유행해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앵커리지까지 들어온 혈청을 ‘놈’까지 나를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이때 용감한 개 썰매꾼 10명이 자원을 하였고 1,600km나 되는 길을 헤쳐 가면서 혈청을 무사히 운반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들이 헤쳐 온 길은 '아이디타 로드'라고 명명되었다. 이 길은 한 때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으나 Joe Redington에 의해 1967년부터 조사가 이루어졌고 1973년 몇 개 구간에서 시합이 시작되었다.

아이디타로드 1,600km, 부산에서 중국 북경까지의 직선 거리. 18살 서재형은 그 길에서 부비고 입맞췄던 모든 썰매개를 늑대에 잃고, 자신도 다리가 부러지고 마음이 부서진 채 어미개 ‘마야’에 구출된다. 마야는 서재형에게 묻는다. “대장, 우리 아이들은?”

서재형은 개썰매 경주를 그만 두고서 한국에 돌아와 수의사가 되기 위해 애써서 S대 수의대를 졸업한다. 이민가기 전의 부모님 집을 개조해 ‘드림랜드 동물보호소’를 만들어 유기견을 돌보던 서재형에게 ‘화양시의 재앙’이 덮쳐온다.

30대 초반 수의사 서재형은 인수공통전염병 ‘빨강 눈’ 때문에 개들을 잃고, 화양시와 south korea는 28일 동안 사투를 벌인다.

서재형 수의사는 무엇을 하려 했을까?

정유정 작가는 서재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정유정28

우리 수의사들은 끔찍한 기억을 함께하고 있다. 2010년 11월.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2011년 늦봄에야 수의사들을 놓아주었다. 정유정 작가는 ‘28’에서 구제역을 인수공통전염병 상황으로 높여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쿠키와 스타. 두 마리 개의 삶과 사랑을 통해 구제역 때 땅속에 묻힌 380만 마리의 목소리를 깨어낸다.

그 목소리가 인쇄된 비명처럼 들려왔다. 자꾸 가슴을 파고들었다.

메사추세츠 수의과대학 제임스 서펠 교수는 그의 책 ‘동물, 인간의 동반자’에서 ‘제4장 착취와 연민, 그 이해의 상층//인간 중심주의의 신/학살자의 양심/살생면허/은총의 상실’이라 했다. 인간이 반려동물을 아끼면서도 육식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갖춘 윤리 회피 시스템. 또는 농장동물에게 깊은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농장 사람들.

정유정 작가는 ‘28’을 쓰면서 어느 수의사를 만났을까?

2011년 그 겨울과 봄. 매몰현장에서 ‘매몰 보상비 책정’을 위해 수첩을 들고 매몰 구덩이로 밀려가는 생명의 수를 세었던 수의사는 만났을까?

그 비명소리에 짓눌리다 농장 업무를 그만둔 공무원 수의사들은 만났을까?

‘28’에 수의사가 없었다.

어느 공무원 수의사는 ‘피’를 보지 못한다. 아버지가 어느 섬의 인정받는 의사였고, 도축장 근무를 계속하면서도 ‘피’를 보지 못한다. 수의학을 배우는 동안에 너무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수의사이고 수의사 일을 하고, 해야 한다. 어쩌면 이 후배가 ‘28’의 주인공 서재형일지도 모르겠다.

수의사 일은 방역/위생/진료이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쇠침쟁이‘ 수의사는 동물의 질병을 돌봐서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의 의주 피난을 도와 정3품까지 승진한 수의사는 말을 돌봤다. 일제시대 ‘수의사’라는 이름을 도입한 일본 수의사들은 공무원으로 우역을 막기 위한 방역공무원이었다. 그들 중 3명이 1907년 ‘한성동물병원’을 개업해서 젖소를 진료했다. 1853년~1877년 전후의 메이지유신때 독일 수의학서적을 번역하여 일본 수의학을 만들고 ‘수의사’를 만들고는, 한반도에 수의사 보조자를 만든 그들은 1945년 Korea를 떠났다. 대한민국 ‘수의사’는 뿌리가 이끼보다도 얕은 60년이 되었다. 유구한 5,000년 역사에서 서양 유래 직업인 1958년 특별법 ‘수의사법’을 갖추었으니 한 살배기 전문가집단이다. 그 때쯤 의사법, 변호사법 등이 만들어졌으니 ‘師,士’자 집단은 모두 이식된 한 살배기다.

지금 우리는 진료/위생/방역을 한다. ‘한다고 생각’ 한다. 순서가 무엇이 중요할까? 중요하다. 뿌리깊지 않으니 세 뿌리중 어느 뿌리가 조금 더 깊을까 따진다. ‘28’에는 진료하는 서재형 동물병원 수의사도 나오고 ‘화양시’ 공무원 수의사도 나온다. 방역을 위한 국가적 체면을 걱정하는 수의사도 언뜻 보인다. 서재형을 비롯한 ‘28’의 모든 수의사는 슬프다. 기술자다.

‘28’에는 수의사의 가슴이 있었다.

인간은 수렵채집을 하다가, 농경사회를 이루고 도시를 만들고 세계화를 이뤄 왔다. 멸종위기 동식물은 보호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위기’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 때문에 변해버린 삶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수의사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인간이 변두리로 몰아낸 동물에 대한 아릿한 그 마음. ‘28’ 서재형 수의사는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서 잃어버린 12마리 말라뮤트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쿠키와 스타, 링고는 그들만의 사랑으로 죽어간다. 지금도 인간이 지배하는 사회이니.

정유정 작가는 휘몰아치듯이 화양시의 비극과 인간 사회의 매몰참을 묘사한다. 28일 동안 29만명 인구에게 가혹하게 몰아치는 봉쇄의 고통과 동물과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28’은 모든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수의사 서재형도, 말라뮤트 쿠키-스타, 늑대개 링고도, 119 구급대장도, 작가의 분신인 듯한 간호사 노수진도, 서재형의 연인도.

그들 모두는 자신이 겪은 일을 스스로의 행동과 시선으로 말한다.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사람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다 개들의 시선으로 그 일을 써내린다.

개가 말을 하다니…

정유정 작가는 말한다. 수컷 쿠키의 시선으로, 암컷 스타의 시선으로, 투견 수컷 링고의 으르렁댐으로… 스타와 링고는 인수공통전염병 매개체로 낙인찍혀 묻힌 개 매몰지를 미친 듯 파헤치고, 링고는 제 짝 스타의 복수를 위해 싸운다.

서재형은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시킨 개들의 무덤을 가꾸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알래스카 그 추운 벌판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맨다. 서재형은 수의사의 그 아릿함을 품은 수의사이다.

 

정유정 ‘28’에는 살고 있는 수의사는 없지만 수의사의 가슴은 있다.

고마웠다. ‘28’

 

[칼럼]정유정 작가 소설 `28`을 읽고서 – 오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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