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7 ― 임동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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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7. 가축으로 인한 6가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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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에 버금하는 가축 혁명은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가축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정리해보겠다. 

첫 번째 변화는 굶주림에서 벗어나 문명을 창조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사냥은 성공확률이 높은 생산 활동이 아니다. 가축을 키우지 않았던 수렵민은 식량을 얻기 위해 아주 먼 사냥터까지 가야 할 때도 있었다. 수렵민은 며칠이고 굶주리다가도 사냥한 날에는 폭식을 한다. 사냥할 때에는 맹수에게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숲 속을 헤매다가 독사에게 물리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수렵은 여러 위험이 동반된다. 하지만 소, 돼지, 닭, 오리 등의 가축을 키우게 됨에 따라 인류는 언제든지 필요할 때 고기를 먹을 수가 있게 된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고, 식량을 마련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절약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영양상태도 개선되고 사냥보다 덜 위험한 일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냥감을 놓고 인간끼리 서로 싸울 필요가 없게 됨에 따라, 사람은 한곳에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결국 인류가 문명을 창조할 시간적 여유와 지혜를 모을 기회를 갖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축 사육은 문명 창조의 중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변화는 가축 키우기에 전념하는 유목민의 등장이다.

처음 인류가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가축은 비상시 식량에 불과했다. 인류는 여전히 사냥과 채집, 어로(漁撈)를 하거나, 농사짓기를 했다. 그런데 차츰 가축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유목민이 등장했다. 유목민의 등장 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수렵과 목축, 목축과 농경을 겸하던 사람들이 목축에 전념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농업과 목축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유목사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자노프의 분류에 따르면, 순수유목, 반유목, 반정주목축, 방목, 하영지목축, 정주방목 등 유목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즉 유목민 가운데는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다. 가정 경제에서 유목의 비중이 50% 미만인 경우도 있다. 남편은 목축을 하고, 부인은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

유목민은 양, 염소, 소, 야크, 순록, 말 등을 키우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하지만 그들이 무조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겨울철 유목지와 여름철 유목지를 왕복하면서 생활한다. 유목민이 수렵민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은 가축들로부터 지속적인 먹을거리를 얻기 때문이다. 소와 양, 염소는 사람들에게 고기보다 소중한 젖을 제공해준다.

러시아의 마이스키가 20세기 초 몽골인의 칼로리 섭취원을 분석해본 결과 우유와 유제품이 55.3%, 곡류가 24.38%, 육류는 20.31%로 유제품의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유제품을 ‘차강이데’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이용하는 유제품의 종류는 수십 가지에 달한다. 유제품은 즉석에서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치즈 등으로 만들어 장기간 보관해두기도 한다. 유제품의 장점은 가축을 죽이지 않고도 매일 식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목민에게 유제품은 고기보다 월등한 가치가 있다.

유목민은 늦가을에 양들을 도축해 고기를 저장하여 봄까지 먹는다. 특별한 손님이 오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양을 잡아 훌륭하게 대접할 수가 있다. 이들은 동물을 죽이기보다는 동물을 보호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가축에 관한 전문가들이다. 유목민은 동물을 죽여야 할 때에도 되도록 피를 흘리지 않고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순간적으로 죽인다. 유목민도 농민 못지않게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생활리듬을 갖는다. 농민이 곡식의 성장과 수확 등에 맞추어 매해 연중행사를 갖는 것처럼, 유목민도 가축의 번식과 사육, 그리고 도살과 부산물 처리 등의 일로 연중행사를 갖게 된다.

유목민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가축을 키우며 이동하는 유목민 덕분에 동서 문명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고, 농경민을 자극해서 다양한 문명을 만들어냈다. 인류 최대의 국가였던 몽골제국을 세운 몽골 사람들은 농경민이 아닌 유목민이었다. 만약 인류가 가축을 키우지 않아 유목민이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보다 인류 문명이 훨씬 못했을 것임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 변화는 농업생산성의 급증이다.

옛날 농민들에게 재산목록 1호는 ‘소’였다. 소를 가진 농민은 소를 갖지 않은 농민보다 보다 넓은 땅을 힘들이지 않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쟁기를 끄는데 소 한 마리가 장정 10명 몫을 할 수 있었으니, 소가 가져온 농사의 변화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소를 이용한 농사인 우경(牛耕)은 지역마다 그 시작 시점이 다르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등 우경이 먼저 시작된 곳에서 고대문명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를 활용한 농사는 농업생산성을 높여, 보다 많은 잉여생산물을 생산해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곡물생산에 매달리지 않고 기술자, 예술가, 군인, 관료, 학자 등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소를 이용한 우경의 시작은 농업사에서 실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농사짓기에서 소를 대신할 동물로 말, 당나귀, 노새 등이 종종 이용되곤 한다. 한편 개, 양, 돼지, 닭 등 농사짓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가축들도 그 분뇨로 퇴비를 생산해 훌륭한 질소비료가 되어 농사에 큰 공헌을 했다. 이렇듯 가축은 농업에 절대적 역할을 해왔다. 

네 번째 변화는 교통, 운송, 군대, 전쟁 분야의 변화이다.

인간이 말을 타게 되면서, 말은 요즘의 자동차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소는 느려 보이지만, 말 못지않게 중요한 운송수단이 된다. 소는 말과 함께 수레를 끄는 중요한 가축이다. 특히 소는 말보다 더 많은 짐을 달구지에 실을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낙타, 코끼리, 노새, 물소, 당나귀, 순록, 야크 등도 수레를 끄는 역할을 했다. 만약 인류가 야크나 순록, 낙타 등을 키울 줄 몰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인류는 티베트 고원이나 시베리아 지역에서 전혀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말이나 낙타 등을 탈 줄 몰랐다면, 인류는 유럽과 중동, 인도와 동아시아 등 지구상의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배를 만들어서 해상교통로를 이용할 수는 있었겠지만, 실크로드와 차마고도 같은 내륙 교통로를 만들거나 이용하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낙타나 말이 없었다면, 사막을 건너는 일은 아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행자들은 하루에 대략 40㎞ 정도를 이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몽골의 조랑말은 하루에 보통 150㎞ 정도 달릴 수 있으며, 빼어난 준마는 무려 550㎞를 갈 수가 있다 한다. 사람이 등에 봇짐을 지고 터벅터벅 걷는 것과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의 차이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더욱 크게 벌어진다.

인간이 가축을 이용하게 되자, 군대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말이 끄는 전차병의 등장으로 전투의 양상은 움직임이 신속한 거대한 기동전(機動戰)으로 바뀌었고, 말이 수레를 끄는 전차의 숫자가 곧 국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전국시대에 나오는 만승천자(萬乘天子), 천승제후(千乘諸侯)라는 말은 고대 중국에서 전차의 숫자가 곧 나라의 크기를 표현하는 지표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병이 등장하자, 전투의 양상은 또 바뀌어 전차는 사라졌다. 과거 보병이 주류를 이룰 때, 기병의 등장은 전쟁사를 바꾼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그 영향은 마치 활, 화약무기, 전투기, 원자폭탄의 등장과 다름없었다. 기병이 등장함으로써, 보병과 더불어 기병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물론 장갑차, 탱크의 등장으로 기병이 사라졌지만, 기병의 등장은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가축은 인간의 교통, 군대, 전쟁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수레를 끄는 소와, 전차를 끌거나 기병을 탄생케 한 말은 노예보다 비싼 값으로 거래될 만큼 가치가 높았다. 이처럼 소와 말은 인류문명을 크게 바꾼 중요한 가축이었다. 

다섯 번째 변화는 인간의 지식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가축을 키우려면 그 동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뭘 먹는지, 무엇이 독초이고 약초인지, 어떤 병에 잘 걸리고, 예방 및 치료법은 무엇인지, 언제 번식하는지, 가축의 천적을 어떻게 막아야 하며, 어떤 기후와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어떻게 해야 도망가지 않는지, 언제 도살해야 하는지, 어떻게 젖을 짜야 하고, 언제 털과 뿔을 잘라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또 유제품과 고기는 어떻게 장기간 보관해야 하는지, 털과 가죽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기후 변화가 닥치면 가축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등등 가축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사육에 관련된 공부가 필요하다. 인간은 가축을 키우면서 다양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또한 가축을 해부하면서 얻게 된 지식은 나아가 의학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가축 가운데 인간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역시 소와 말이다. 특히 말의 경우 고대 로마 전차 등에 유용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말의 조련(操鍊)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B.C. 14세기 히타이트에서는 미탄니 출신 말 조련사인 키쿨리가 전차용 말 조련법을 저술했다. 키쿨리는 말과 교감하는 동물 교육학적 차원의 말 훈련 지침서를 만들었다. 야생말은 전차를 끌기에 부적합한 걸음을 걷는다. 그래서 말은 훈련이 꼭 필요하다. 훈련 지침서에 몇 가지 조련법이 나온다. 갤럽(gallop-단속적으로 네 발을 땅에서 떼고 달리는 전력 질주), 캔터(canter-천천히 달리는 것), 트로트(trot-속보), 엠블(amble-앞다리와 뒷다리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걷는 것), 워크(walk) 등 걷는 방법과 방향 바꾸기 등을 기본으로 한다. 키쿨리는 말에게 이런 훈련을 매일 정해진 숙제로 부여하고, 반드시 휴식시간을 주도록 했다. 조련사에게는 말과의 심리적인 교감을 가질 것을 권장했다. 다시 말해서 일정한 커리큘럼을 갖고 훈련과 연습에 변화를 주되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학습하도록 지침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말 조련법은 지금도 동물 훈련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고대 중국에서도 지식인이 익혀야 할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6가지 지식(六藝) 가운데 하나로 어(御) 즉 말 다루는 기술이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 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면허를 따기 위해 공부하듯이, 옛날에는 전차를 타기 위해 말에 대해 공부를 했다. 자동차도 제대로 운전하려면 기본적인 자동차 구조나 정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옛날에도 말이 아플 때, 말이 굶주렸을 때, 편자가 닳았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야 했다. 또 잘 달리는 말을 좌우 어느 쪽에 배치해 전차를 끌어야 할지, 채찍이나 당근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등 온갖 말에 관한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요즘 사람들이 자동차를 애마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하며 세차를 하듯이, 수시로 목욕도 시켜주었다. 옛사람들에게 말은 너무도 소중한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가축에 관한 지식이 늘면서, 사육사, 도축사, 마부, 수의사 등 가축과 관련한 전문 직업인도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동물과 자주 접하게 된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지식, 동물과 다른 인간에 대한 성찰, 그리고 가축을 활용하는 방법과 관련된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만약 인간이 가축을 키우지 않았다면, 인류의 지식 발전도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여섯 번째 변화는 동물에게서 다양한 부산물을 얻어 이를 활용하게 된 것이다.

인류는 동물을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얻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동물을 사냥해서 그 고기는 먹고, 가죽과 털은 옷을 만들어 입었다. 뼈는 갈아서 바늘 등 도구로 사용했다. 소의 가죽은 갑옷이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가죽옷으로, 매머드(맘모스) 뼈는 집의 골격이 되기도 했다 뿔로는 피리를 만들기도 했다. 가축을 키우게 되면서, 인간은 특정 동물의 부산물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축의 젖은 다양한 유제품으로 활용됐다. 말의 젖을 이용해 마유주 등의 술을 빚기도 했고, 차와 섞어서 새로운 음료를 만들기도 했다. 양을 거의 키우지 않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유제품을 전혀 몰랐지만, 몽골 유목민들은 수많은 유제품을 만들 줄 알았다. 유목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자신들이 키우는 동물들로부터 얻었다. 심지어 순록이나 야크 등 한 종류의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를 중요하게 여겼던 조선시대 농민들도 소는 버릴 것 하나 없는 동물이라고 여겼다. 소의 고기도 백여 가지 부위별로 나누어 각기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했고, 가죽, 뼈, 힘줄, 뿔, 털, 분뇨 등등 소의 모든 것을 이용해 다양한 생산물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인간은 가축을 사육하게 되면서 동물의 부산물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어 더 다양한 요리를 하게 되었고, 더 다양한 물건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점차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이처럼 가축 키우기는 인류의 운명을 크게 바꾼 사건이었다. 인간은 가축이라는 든든한 동반자를 얻음으로써 더 많은 일들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식량 생산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거대 건축물을 만드는 등 문명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가축 사육의 시작을 농업혁명에 못지않은 가축혁명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이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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