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20] 대한수의학회 초대 회장 `김용필 수의사`

등록 : 2018.06.24 23:36:14   수정 : 2018.06.24 23:36:14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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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20. 김용필(金容珌, 1910~1966). 한국전쟁 당시 유일한 정규 수의학사,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대한수의학회 초대 회장

1910년 9월 9일 황해도에서 출생하였다. 1941년 일본 홋카이도 제국대학 예과를 거쳐 농학부 축산학과 2부(현 수의학과)를 졸업(1938~1941, 수의학사)한 후 병리학교실(토끼 귀에 콜타르coal tar를 발라 세계 최초의 인공 암, 피부암을 유발하여 일본 최초의 노벨상 지명 후보자였던 이치카와市川厚一 주임교수)의 조수로 근무하였다. 그 후 만주 하얼빈 농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로 발령받아 근무하던 중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여 수원 농림전문학교 수의병리학 교수(1945. 8.~1947. 8.)로 근무하였으며, 수원 농림전문학교 수의축산학과가 수의와 축산으로 분리하기로 결의한 이사회(1947. 7. 8.) 결의에 따라 발족한 농과대학 수의학부의 교무과장(학부장 이근태)을 맡았고 이근태 학부장이 농림부 축산국장으로 옮긴(1948. 10. 10.경) 후에는 학부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예술대학의 경우 학장은 공석으로 하고 미술학부장, 음악학부장을 발령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의학부 역시 농과대학 수의학부였으나 본부 교무과장 회의에 수의학부 교무과장이 참석하는 등 단과대학과 같은 대우를 하였다(당시 이사회기록에는 농과대학 수의학부는 “단과대학으로 승격할 것을 전제로 하고 수원 농과대학으로부터 분리”라는 내용이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될 무렵 그는 학부장 책임을 맡고 있었기에 학교를 두고 피란 갈 수 없어 일부 교수들과 서울에 남았다가 9.28서울수복 후 소위 도강파가 주축이 되어 주장한 ‘적군에 협조하였다’는 오명을 쓰고 일자 미상의 날짜(1950. 12.)에 학교를 떠나 호구지책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서 처남이 하는 사업을 도우며 생활하였다.

서울대학교 설립 이후 일부였겠지만 교수도 학생도 좌우익으로 나뉘어 있던 혼란기였으므로 그가 좌익이었다면 ‘부산이 아니라 고향(황해도)으로 갔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47학번, 48학번 졸업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유일한 정규 수의학사인 그가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은 피란 가지 못하고 적 치하에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전문부 출신들이 여론을 강하게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적 치하 서울에 남았던 서울대학교 총장(제4대 최규동), 의과대학 학장(이갑수)을 비롯한 상당수의 교수가 납북되어 돌아오지 못하였다.

부산 생활 중 이방환의 권유로, 이리농과대학이 전북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전환되어 첫출발한 날인 1952년 4월 1일에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4년 동안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의 기틀을 다진 후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 교수(1955. 5. 25.)로 초빙되어 근무지를 대구로 옮겼다.

이학철 교수의 초빙 노력으로 경북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 그는 1961년 12월 29일부터 경북대학교 농과대학장을 겸하면서 수의학과의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대한수의학회 창립(1957) 후 작고(1966)하기까지 약 10년 동안 학회장을 역임한 것으로 미루어 수의병리학계는 물론이고 당시 수의학계에서의 비중을 감히 짐작할 수 있다.

1963년 5월 28일 경북대학교 개교기념일에 맞추어 「용혈에 있어서의 황달 발생에 관한 실험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생 강의에서도, 그 당시 교재가 없었으나 수의병리학 교재는 『수의병리학 총론』(306쪽), 『수의병리해부학 각론』(상・하권 총 882쪽)을 A4 용지 크기로 손수 등사하여 만든 교재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독일의 수의병리학 책을 번역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대학원 학생들에게 독일어를 강조하였는데, 경북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 입학시험 독일어 출제 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기도 하였다.

1966년 10월 25일 안타깝게도 56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부인 한영희(韓榮喜)와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글쓴이_이차수, 이학철, 이성희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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