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터칼로 배 가르고 호르몬제 투약하고…번식장에서 벌어지는 자가진료

최근 적발된 주요 번식장에서 심각한 자가진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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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학대를 일삼은 번식장(동물생산업)이 연이어 적발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불법 제왕절개 흔적과 수많은 주사기, 그리고 옥시토신 등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이 발견됐다.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동물에 대한 주인의 진료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약품 유통을 막지 못하면 자가진료에 의한 동물학대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성 번식장에서 냉동상태로 발견된 모견 사체

1400여 마리 구조한 화성 번식장에서 불법 제왕절개, 안락사 정황

경기도와 여러 동물보호단체가 2일(토) 경기도 화성의 대형 번식장에서 1,400마리가 넘는 개를 구조했다.

이곳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동물생산업체였다. 하지만, “불법 제왕절개, 안락사 등을 시행했다”는 제보를 받고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과 동물보호단체가 현장을 찾아 학대 행위 등을 확인한 뒤 번식장 소유주에게 개 소유권 포기 의사를 받아 냄으로써 모든 개체를 구할 수 있었다.

냉동고에서는 93마리의 사체가 발견됐는데, 그중에는 불법 제왕절개 수술을 한 것으로 보이는 개체도 발견됐다(사진 : 출처 위액트). 제보자에 따르면, 해당 임신견이 영양실조로 쓰러지자 번식장 대표가 문구용 커터칼로 배를 갈라서 새끼를 강제로 꺼낸 뒤, 새끼만 살려서 판매했다고 한다.

불법 자가진료(제왕절개) 행위이며, 수의사법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불법 약물 투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주사기와 약병도 발견됐다.

@위액트

제보자는 동물단체에 “동물병원비를 절감하기 위해 백신, 주사, 투약 행위를 본인들이 하고, 임신한 모견에게 제대로 급여가 이뤄지지 않아 저혈당 증세를 보이거나 죽으면 그 자리에서 배를 갈라 새끼만 빼내는 등 비인간적이고 악독한 불법 시술도 이뤄졌다”고 전했다.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위액트는 “동물학대와 더불어 불법 안락사 및 제왕절개 시행 등 온갖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지옥이었다”고 밝혔다.

광주 번식장에서 발견된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비슷한 시기, 광주광역시 도심 내에서도 불법 번식장이 적발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2곳의 도심지 불법 번식장을 적발했는데, 모견은 모두 성대가 제거되어 있었다. 짖는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불법 수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다량의 동물용의약품이 발견됐는데, 안락사용 약물, 동물약국에서 ‘강아지 면역주사’라며 널리 판매되는 동물용의약품, 수의사처방대상 성분으로 지정된 옥시토신 등이 있었다고 한다.

@비글구조네트워크

비구협은 “(번식장 현장에) 교배일지는 물론, 동물병원을 방불케 하는 각종 동물용의약품이 있었고, 심지어 늙고 병든 폐견들을 처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락사 약품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견들을 지속적으로 교배·임신·출산시키는 과정에 약물을 사용했고, 더 이상의 임신·출산이 어려워지면 불법 안락사를 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비구협은 이번 번식장 적발 활동에서 수컷들의 정액을 뽑아 주사기로 인공수정을 시도하려는 현장을 직접 잡았다고 전했다.

“누구나 합법적으로 처방대상 동물약 살 수 있는 상황에서 동물학대 근절 어려워”

지난 2017년 7월 개정 수의사법이 시행되며,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가 금지됐고,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번식장에서 제왕절개, 주사, 안락사 등 각종 자가진료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불법 자가진료에 사용된 각종 약물이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임에도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누구나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광주 번식장에서 발견된 ‘분만촉진 및 유즙분비 촉진제’ 옥시토신은 수의사처방제가 처음 시행된 2013년부터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동물용호르몬제)으로 지정된 성분이다. 법에 따라, 반드시 수의사가 동물을 먼저 진료한 뒤, 수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품이 사용·처방·판매되어야 하지만, 약사예외조항*에 따라 동물약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합법적으로 판매·구입할 수 있다.

옥시토신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처럼 동물학대와 각종 사람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 마취제, 호르몬제를 약국에서 진료·처방 없이 판매해도 불법이 아니다.

동물학대의 완전한 근절을 위해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의 삭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수의사 처방제 약사예외조항 : 약국개설자는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약사법 제85조⑦).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번식장이 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한 이번 사건처럼 교배, 임신, 출산을 반복하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번식장 주인 손에 합법적으로 약을 쥐여주는 일을 하루빨리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커터칼로 배 가르고 호르몬제 투약하고…번식장에서 벌어지는 자가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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