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졸업하고 동물병원 인턴을 거쳐 작은 제 병원을 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병원과 비슷한 1인 원장과 2인 직원의 형태였죠.
의욕과 열정이 넘치던 시절, 퇴근 후 병원 전화도 제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해 응급 진료도 봤습니다.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아내와 산책을 하다가, 새벽에 잠을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바닥나 결국 착신 전환을 해제했습니다.
일요일만 쉬는 주 6일 근무도 점점 버거워졌습니다. 젊을 때나 자녀가 없을 때는 버틸 만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녀가 생기면서 미안해지는 일이 늘어나고 저 자신도 힘에 부쳤습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순진한 생각으로 임상에 뛰어들었습니다. 수의학 지식이 풍부하면, 기본적인 실력만 갖추면 다 잘 될 거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나름 학생 때 공부도 열심히 했고, 개원 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원 운영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경영인 마인드, 사업적 수완도 있어야 했죠. 전 그 부분에서 역량과 자질 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여러 요인이 맞물려 10년 가까이 운영해 온 병원을 정리했습니다. 그 후 현재까지 진료 수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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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면 마음의 지진을 겪는다고들 합니다. 보통 이때쯤 자녀가 어느 정도 커서 손이 덜 가고, 본업이 안정권에 들어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한숨 돌리고 여유가 생기니 늘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이 비로소 내부로, 즉 자기 안으로 향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왜 살지?”, “무엇 때문에 살지?”,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와 같은 수많은 질문과 의문에 휩싸입니다.
정답이 없기에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사실 지진은 훨씬 그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눈 질끈 감고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결국 마흔이 되어 폭발한 겁니다.
마음의 지진은 이렇듯 제 삶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흩어진 생각과 감정을 붙잡아줄 무언가가, 숨 쉴 구멍이 필요했습니다. 삶의 활력소가 될 만한 일, 100세 시대인 만큼 훗날 수의사를 그만두어도 할 수 있는 일, 노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제게 그 답은 글쓰기였습니다.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든 제가 시간만 내면 가능하니 문턱이 낮아 좋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게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로 시작해 온라인(SNS) 글쓰기, 전자책 발간, 종이책 출간 작가까지 이어졌습니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이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제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선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제 글과 책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희망을 보았고 용기를 얻었다, 독서와 글쓰기 나아가 책 쓰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칭찬과 인정은 제게 자신감을 주었고 자기효능감과 자기가치감을 높여주었습니다.
저란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여가 시간을 영상 시청으로 허비하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아웃풋(Output)이 있으려면 인풋(Input)이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아웃풋이라고 한다면, 인풋은 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도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깊이 있고 수준 높은 글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었습니다. 읽고 쓰는 삶이 시작되면서 저는 점점 성장했습니다. 과거의 저보다 오늘의 제가 한 뼘이라도 더 발전해 있음을 느꼈습니다.
심리적 안정도 얻었습니다. 글쓰기의 여러 효과 중에는 강력한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머릿속과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꺼내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됩니다. 그야말로 힐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도 알게 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내게 이런 감정이 있었다니!’ 하며 놀라는 순간도 마주하게 됩니다. 마음이 번잡하거나 괴로울 때, 뭔가에 쫓기듯 불안할 때 책상에 앉아 차분하게 글을 쓰는 건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을 우리는 자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스스로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남보다 더 자신에 관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 자신을 잘 아는 방법 중 하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메타인지(Metacognition)도 높아집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쓸수록 나에 대해 더 정확히 알게 되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즐겁고 행복하며 언제 괴롭고 힘든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등을 명확히 파악하게 됩니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메타인지가 높을수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공부해라”, “책 읽어라”, “글 좀 써봐라” 하고 말로만 강조한다면, 대부분의 자녀는 잔소리로 여길 뿐입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랍니다. 부모의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행동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부모가 먼저 TV를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독서하거나 글 쓰는 모습을 자녀에게 꾸준히 보여준다면, 자녀는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글을 잘 쓰려면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됩니다. 삶이 더욱 농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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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수의사 여러분도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읽고 쓰는 것은 본업인 진료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공 서적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다양한 분야의 책도 접해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시야가 넓어지고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됩니다.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입니다. 시야가 넓고 다양한 관점을 지닌 사람이 문제 해결을 잘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독서와 쓰기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