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기록에 담기는 수의사의 전문직업성

함께 고민하는 수의 윤리 20


5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주설아 수의사/수의학박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실

jsa321@snu.ac.kr

[사례]

A 원장은 3안검탈출증 수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진료 기록을 작성했다: 체리아이 제거, 과다 출혈, Lasix/dex/pen/atropine”

수술 중 환자가 사망했고, 이후 보호자는 A 원장으로부터 수술 과정과 사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 원장의 동료는 수술 과정에서 환자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으며, 적절한 수액과 약물이 투여되면서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수술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했으나, 보호자는 “기록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며 근거가 없음을 주장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사망의 직접원인은 수술 중 마취 쇼크사로 추정되며, 3안검제거술의 시행 자체나 수술 과정에서 의료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되나, 진료 기록 소홀로 인한 부분적 손해배상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임상 상황에서 진료 기록은 동료의 환자를 대신 맡아야 할 때나, 진료 기록을 요청받기 전까지는 종종 귀찮은 일, 시간 낭비, 혹은 필요악으로 간주되며 수의사들의 업무 로드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진료 기록은 환자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고 수의사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이자 의무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동물 의료에서 진료 기록 작성과 이용에 대한 윤리적 측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진료 기록 혹은 의무 기록이란, 말그대로 병원에 방문한 모든 환자의 진료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을 의미한다. 문서와 자료가 포함된 실제 종이 파일, 환자와 보호자 관련 정보의 전자 데이터베이스, 이미지나 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조합일 수 있다.

진료 기록을 작성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과정에서 의료적, 법적, 그리고 윤리적 측면은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수의사이자 칼럼가인 Phil Zeltzman 박사는 펜실베니아주 수의사회 자문위원인 Teresa Lazo의 설명을 인용하여 “진료 기록에 있어 큰 오해 중 하나는, 비정상적인 발견 사항만 기록하면 된다는 생각”이며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환자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문서화”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가능한 상세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세부적인 진료 상황과 환자에 대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용문이 강조하는 바는 단순히 일반적이지 않거나 이상이라고 판단되는 사항만을 적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료 기록에 어떤 정보가 얼마나 포함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료 기록의 두가지 근본적인 목적을 알아야 한다.1)

가) 진료 지속성 유지

진료 기록의 첫번째 목적은 지속적인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이다. 즉, 진료 기록은 ‘진료 지속성(Continuity of care; COC)’을 위한 문서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2) 

진료의 질이 유지되고 최적의 임상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환자 상태와 추이, 시행된 처치나 처방과 같은 임상적 정보와 더불어 보호자의 주요 특성, 환자의 증상이나 복용, 치료와 관련된 가정 내 환경적 요인에 대한 정보 역시 기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뢰 및 응급 상황에서도 좋은 기록은 의뢰된 환자의 신속하고 적절한 평가, 진단 및 치료를 위해 필수적인 보조 수단이다.

나) 근거 자료로서의 기능

둘째로, 진료 기록은 수의사가 무엇을 했는지, 왜 했는지, 또는 하지 않았다면 왜 하지 않았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증거 문서이다. 진료 기록에 포함된 정보는 수의사의 임상적 조치 또는 누락을 설명하고 입증한다.

대부분의 잘못된 진료 기록은 수의사의 행동 또는 그 이유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독자(당사자 혹은 제3자)가 그 당시 수의사의 인지적 추론을 따라가기 힘든 방식으로, 혹은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는 방식으로 기술된다.

수의사는 추후 본인의 결정과 행동에 대해 질문을 받을 것을 예상하면서 문서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펜실베니아 주 수의사법은 진료 기록이 동물 진료 계획의 기초가 되며, 수의사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문서적 증거를 제공함으로써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검토, 연구 및 평가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3)

   

위의 두가지 본질적인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적시에 작성되는 정확한 기록이 중요하다.

진료 기록 작성 기간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정보를 잊어버릴 수 있으며, 기록을 작성하지 않고 여러 환자를 연달아 진료하다 보면 일부 세부 사항을 놓칠 수 있다. 또한 환자가 진료 당일 다른 병원이나 응급실을 방문했다면 그 병원에서 가장 최근의 진료 결과와 치료에 관한 기록을 요청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상적으로 진료 기록은 ‘동시성’ (contemporaneity)을 유지해야 한다.4)

사건과 동시에 기록되는 의료 기록은 환자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연대기적 의료 지도”(chronologic medical map) 역할을 한다.5) 이 지도를 통해 수의사는 논리적인 의학적 근거를 반영하는 사고 알고리즘을 더 쉽게 생성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성공적인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한마디로 진료 기록은 수의사의 임상 추론(clinical reasoning) 즉, 임상적 사고 과정을 담는다. 임상 추론은 수의사들이 임상적 요인과 맥락적 요인들을 통합하여 판단함으로써 진단, 치료, 향후 옵션이나 예후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의미한다.6) 이 과정에서 적절한 기록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정보의 공백으로 인해 추론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종합해보면, 진료 기록의 생성은 단순한 사실이나 정보 기입의 행위이기 보다 수의사들의 지식, 직감, 의견, 판단, 아이디어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전문성 발현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진료 기록에는 환자 정보(이름, 종, 나이, 체중 및 성별 등 포함), 병력 및 보호자의 요청 사항, 예방 접종 및 구충 기록, 초기 평가, 상세한 처방 내역, 검사 결과 및 해석, 진단(또는 최소한의 잠정 진단) 등이 기재되어야 한다.

수행한 모든 진단 또는 시술이 포함됨으로써 진단과 치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체 임상 정보가 입력되어야 한다.

환자가 수술을 위해 입원하는 경우, 수행하거나 관찰한 모든 사항을 기록해야 한다. 음식이나 물을 제공했다는 언급이 없는 경우, 환자가 입원한 동안 아무 옵션도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야 하는데, 일반 대중이나 변호사에게 ‘일반 중성화 수술’ 등의 표현은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수술 기법에 더해 봉합 방식까지 기재하는 것도 권고된다. 수술 중 모든 비정상적인 소견은 모두 문서화해야 한다.

또한 투여하거나 조제된 약물을 기록하지 않거나, 진정과 마취 도중 바이탈 사인이나 신체 검사 결과를 문서화하지 않는 실수도 흔히 발생한다. 마취 기록과 관련하여 투여된 약물, 농도, 용량, 투여 경로 및 시간, 투여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마취 방식(마스크 또는 기관 내 삽관 등)도 기록에 포함해야 한다. 마취 중 5~10분마다 산소 및 흡입 마취제의 유량과 함께 바이탈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회복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기록해야 하며, 문서화하지 않으면 아무도 환자를 모니터링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또한 수술 후 넥칼라를 왜, 얼마나 착용해야 하는지, 약물 투여 방법과 간격은 어떻게 되는지, 가정에서 모니터링은 어떻게 하는지, 다음 내원 시기는 언제인지 등에 대한 상세한 퇴원 지침이 서면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관련 설명을 들었다는 보호자 서명이 담긴 사본을 진료 기록에 포함해야 한다.

내원부터 퇴원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보호자에게 설명된 사항들과 수행된 서면 동의 사항에 대한 정보들 역시 진료 기록으로써 꼼꼼하게 저장 관리되어야 한다.7)

    

이렇게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를 명료하고 읽기 쉽게 정리하는 방식 역시 기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진료 기록을 정리할 때 SOAP 형식이 주로 권고된다.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의 진료 기록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SOAP는 주관적 요소(Subjective elements), 객관적 요소(Objective elements), 평가(Assessment), 그리고 계획(Plan)을 나타내며 각 항목은 다음 내용을 포함한다.8)

-주관적 요소: 내원 이유와 동물의 최근 건강 상태 및 병력 청취 내용을 포함함(e.g. 문제에 대한 보호자의 설명, 양육 환경 등)

-객관적 요소: 검사 항목 및 결과를 기입함. 약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함(e.g. 신체 검사 결과, 진단 결과 및 기타 측정 가능한 데이터 등)

-평가: 수의사가 진단에까지 이르는 방법에 대한 정보와 추론이 기록되어야 함. 문제 목록, 감별 진단 및 추가 정보가 수집됨에 따른 업데이트된 기록이 포함됨. 수의사가 진단을 확인하기 위해 진단 검사의 데이터를 검토하고 해석했음을 입증하는 충분한 정보가 제시되어야 함(e.g. 문제에 대한 수의사 견해, 주관적 및 객관적 요소의 의미 등)

-계획: 검사, 약물, 치료, 수술 또는 입원 절차, 전문 치료를 위한 의뢰 및 후속 일정에 대한 권장 사항과 시행 계획을 명시함. 보호자와의 의사소통 및 전문적인 조언 제공 내용 역시 여기에 포함됨(e.g. 수행할 진단, 치료 및 보호자 교육 계획 등)

    

적절한 진료 기록은 환자 치료를 용이하게 하며, 보호자나 동료와 소통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아가 교육에도 이용될 수 있다.9) 수의과대학 커리큘럼에서 진료 기록은 환자 관리의 임상적 기초를 형성하는 훈련이자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소통 교육 도구이다.

학생들이 양질의 진료 기록을 위해 배워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3가지는 첫째, 경청(good listening), 둘째, 적절한 의료 용어 사용(proper medical terminology), 그리고 셋째,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를 고려한 의학 정보 기술 방식(describe medical information in a manner for both medical professionals and lay people)이다. 이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야 진료 기록의 신뢰성과 효용성을 보장할 수 있다.10) 

또한 진료 기록은 임상 수의학 연구(Clinical veterinary research)에서도 중요한 연구 데이터로 이용된다.11)

진료 기록 데이터의 신뢰성(reliability)과 완전성(completeness) 문제는 연구의 질과 직결된다. 부실한 데이터와 그 분석은 치료를 받는 동물의 향후 복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 수행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요소이다.

둘 이상의 임상 기관이나 병원이 관여하는 경우 각 병원마다 기록 작성과 보관의 기준이 다르며, 일부 기록의 관련성이나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과학적 엄격성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검색, 선택,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연구에 사용된 기준의 맥락과 세부 사항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정보는 동물 정보(종, 품종, 나이 등), 증상, 진단 결과, 치료 방법, 처방 내역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 일부 연구 분야에서는 보호자의 치료 선택 등에 대한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다.

진료 기록 데이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연구 설계 과정에서 연구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데이터 사용에 대해 보호자가 인식하고 있고 이를 동의한 상황에서만 이용 가능하다. 진료 기록 사용에 대한 사전 동의는 환자가 처음 내원하여 등록하는 시점에 받는 것이 가장 권고되며, 치료 과정을 시작할 때 동의를 받는 것이 차선으로 권고된다. 이미 수집된 데이터에 대해서도 데이터 전송과 이용에 대한 보호자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절차가 어떤 식으로,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 또한 연구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대부분 익명화 되는 경우가 많지만, 혹시 모를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식별 가능한 개인정보의 사용 및 처리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규제된다. 수의사는 이에 더해, 고객의 정보 보호와 기밀 유지에 대한 직업적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있다.

연구를 위해 보호자에게 진료 기록 이용 동의를 얻는 경우와 반대로, 보호자가 진료 기록을 요청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보호자들이 진료 기록을 원하는 이유는 본 사례처럼 사고나 분쟁이 생겼을 때 의료과실을 따져볼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서, 혹은 반려동물에게 어떤 처치가 이뤄졌는지 단순히 궁금해서 일 수도 있다.

현행 수의사법에 따라 수의사의 진단서나 처방전 발급은 의무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다만 진료 기록 공개 자체에 대한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얼마전 대통령실은 “현행법상 의사와 달리 수의사는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가 없어, 반려동물 보호자의 알권리가 침해되고 동물진료업의 투명성이 저해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며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요청할 경우 반려동물 진료기록(복약정보 포함) 열람을 허용하고, 소송 등에 필요 시 사본 발급도 가능토록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진료 기록 공개의무화에 반대하는 수의사회의 입장은 “약사예외조항 삭제, 동물 자가진료의 완전한 철폐 없이 동물진료부 공개가 의무화되면 동물용의약품 오남용과 무분별한 자가진료에 의한 동물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12)

진료 기록 공개의무화에 대한 또다른 우려는 오픈노트(open notes) 정책에 대한 의사들의 의견에서 참고할 수 있다. 오픈노트란 임상 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을 고객과 의사가 공유하는 것을 말하며, 환자가 포털사이트나 앱을 통해 자신의 진료 기록에 언제든 접근하여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2023년 기준 영국, 스웨덴, 미국을 포함한 약 30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13) 

이 정책이 시행되기 전 임상의들은 급격한 진료 환경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 이유로는 업무량 가중과 비효율성 증가, 환자 안전(특히 고위험군 환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 불안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전화나 이메일 폭주, 문서가 ‘둔화'(dumbed down)되어 임상적 가치 저하 가능성(방어적 기록), 환자가 내용에 대한 비판이나 불쾌감을 표현하여 환자-의사 관계 약화, 환자가 자신의 메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 접근 권한으로 인한 소송 위험 증가, 건강 불평등 확대 위험 등이 제시되었다.14)

아마도 국내 많은 수의사들이 진료 기록 공개의무화에 대해 보호자와 환자에게 갖는 우려들과 비슷할 것이다.

Blease 외 연구진(2022)은 제도 시행 후 진행된 다수의 설문 조사 결과를 통해 기록에 대한 접근성 향상이 고객들의 신뢰도 상승15)과 함께 의료 과실 소송의 위험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으나16), 제도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인한 혼란, 정착 과정에서 정비해야 할 보완점과 수용해야 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내 동물 의료의 현실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바로 적용하는 경우 큰 혼란과 부작용이 예상된다. 다만, 진료 기록 공개 열람에 대한 압박은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도 지속되고 있어, 수의계 내부적으로는 진료부 공개 시 마찰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반려동물 자가진료는 이미 불법이기 때문에 그런 보호자들에게 법적인 처벌을 물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진료 기록 입력 시스템에 수의사만이 접근 가능한 루트를 만들어 공유할 필요가 없는 민감한 메모나 의견을 따로 남기고 확인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진료 기록 공개의무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문제 등의 또다른 피해를 예방하고 수의사와 동물 환자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장치 마련에 수의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댈 때다. 장기적 관점에서 수의사들의 진료 기록 관행을 점검하고, 진료 기록이 갖는 가장 큰 목적(진료 지속성 유지와 수의사 보호)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사례로 돌아가보면, A 원장의 기록에서 생략된 내용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취 전 수행된 신체 검사 및 혈액 검사 결과는 어땠는지, 마취제 투여 용량이나 투여 방식, 수액 처치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마취 모니터링 상황은 어땠는지가 세부적이고 명확하게 담겨 있어야 한다.

더불어 A 원장의 임상 추론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방식으로 작성된 적절한 메모가 추가되어야 한다. 보호자에게 수술의 이점 및 합병증, 마취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고지했다면, 해당 사항이 명시되어 있어야 하며, 만약 보호자의 서명이 담긴 동의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분쟁까지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진료 기록과 관련된 문제는 기록 공개 요청 전 이미 발생하고 있던 다양한 문제들, 예를 들면 사전 고지 및 사전 동의 문제17), 의사소통 부재, 임상적 판단에 대한 낮은 자신감, 진료 과정이나 진료비에 대한 보호자 불신, 수의사의 무관심이나 태만 등이 중첩된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료 기록 안에는 동물 환자에 대한 의료적 정보, 보호자 개인 정보와 함께 수의사의 전문성과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물론 적절하고 세심하게 쓰여진 진료 기록에 한해서 해당되는 사항이다.

수의사들은 더 이상 의료 기록 작성과 이용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에 무감각해서는 안 되며 그간의 관행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핵심은 의료 기록을 철저하고 읽기 쉽게 작성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전문직업성이 발현되는 장(field)이자 필수적인 의사소통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은 대한수의사회,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과의 협의에 따라 KVMA 대한수의사회에 게재된 원고를 전재한 코너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아래 QR코드나 바로가기(클릭)로 보내주세요-편집자주>

진료 기록에 담기는 수의사의 전문직업성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