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생물과 무생물 사이/최이향

2020년 1월 책읽기 모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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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온 나라가 한바탕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 ASF 사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지금은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전세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이러스 관련 사태 속에서 언론이나 방역 당국은 바이러스의 전파 과정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야기한 바이러스가 지금 사태의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관계 속에서 35억년에 걸쳐 공진화해왔습니다. 지구 어디에나 매우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와 세균이 있고 수많은 유기체는 그러한 미생물이 있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진화해왔습니다. 때문에 그들 유기체들은 각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로서 동적평형 관계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과 관련된 많은 문제가 산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은 모두 인간이 저지른 행위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명의 현상을 관계적 측면에서 이해하기보다 무엇인가를 괴물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생명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풀어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수의사들은 동물을, 더 나아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은 생명을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매달 생명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그 나눔을 동료 수의사분들과도 함께 하고자 데일리벳의 협조를 얻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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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 후쿠오카 신이치

학교에서 지식적으로 접근했던 ‘생물’이란 조금은 흥미로우면서 외우면 점수가 나왔던 만만한 과목쯤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여겼던 과목에 대해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이런 것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DNA가 유전정보를 담고 있고 자기복제가 가능하도록 이중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기간 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들어갔고, 더 빨리 최종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혹은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 결과를 뺏고 뺏기도 하는 치열한 뒷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또한 우리가 검사에서 많이 활용하는 PCR 검사의 원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PCR을 발명한 멀리스가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던 중 PCR을 생각해냈다니… 학자의 삶은 지루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연구에 대한 열정이 새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DNA가 규명되고 20세기 생명과학은 생명을 ‘자기 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기계론적 생명관으로 보면 생명체란 마이크로 부품으로 이루어진 조립식 장난감, 즉 분자기계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자생물학자인 저자는 DNA의 일부를 자르고 붙이는 것만으로 생물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해 쥐 췌장세포에서 특정 당단백질(GP2)이 없는 녹아웃(knock-out) 마우스(연구를 목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불활성화 시킨 쥐) 만들어서 유전자의 역할을 밝히고자 했다.

췌장은 인슐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화효소를 분비한다. 만약 췌장의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제거한다면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당을 흡수할 수 없어 결국은 당뇨병을 앓는 마우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쥐들은 예상과는 달리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연구진은 ‘실험상에 오류가 있었나’하고 같은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실험의 결과는 똑같았다. 유전자를 제거한 녹아웃 마우스는 매번 건강하게 태어났다. 나의 예상으로도 쥐들은 췌장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참 놀라웠다.

생물은 조립식장난감과 달리 부품이 하나 없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그 결함이 채워져 보완되고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다이너미즘(dynamism)이 있는데 저자는 이를 ‘동적평형’이라고 표현했다. 하나의 유전자가 결함이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 생물의 동적평형 시스템은 그러한 부분을 보완해준다는 것이다.

또 신체의 장기나 조직은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뼈나 치아 같이 단단한 조직조차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1년 반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모습 같아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포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다. 생명체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고 회복되는 ‘흐름’이 있는 분자 덩어리라는 것이다.

결국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저자는 ‘동적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는 새로운 생명관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몸이 매 순간 조각이 교체되는 유연한 3D 퍼즐처럼 느껴졌다. 어제 내가 먹은 밥과 고기가 오늘 내 몸 속의 당단백질로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생명체가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인지 감탄하게 되었다.

아마도 오류를 수정하고 바로잡는 과정이 비단 DNA 뿐만 아니라 과정과정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사실 생명체는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극히 일부분을 의사와 약이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수의사로서 오만하지 않았는지, 습관적으로 약을 처방하며 나의 권리를 남용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에서 독서모임을 하며 진정한 수의사로서 또 생명을 다루는 한 사람으로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원장님,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최이향 원장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생물과 무생물 사이/최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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