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獸)타트:2차 병원은 처음이라] 뭐든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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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면서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문을 두드립니다. 인턴으로 불리는 1년차 임상수의사뿐만 아니라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을 해도, 이직을 해도 심지어 은퇴를 해도 1년차가 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0기는 다양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수의대생, 새로운 생활에 직면하는 수의사들을 위해 [수(獣)타트 : OO은 처음이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과 함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는 수의대생들이 많은데요,

임상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에 진학할지, 로컬병원 혹은 2차 병원을 선택할지 여러 선택지 앞에서 주저하곤 합니다.

수타트 프로젝트 6번째 주인공, 서울대 수의대 졸업 후 2차 병원 1년차로 일하고 있는 이윤경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산동물의료원에서 1년 차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윤경이라고 합니다. 2차 병원에서 일한 지는 337일이 됐네요(인터뷰일 기준).

 

Q. 졸업 후 바로 2차 병원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변에서는 대학원을 꼭 가야 한다고 말하는 분위기였는데, 좀 더 폭넓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원보다 2차 병원을 선택했어요.

본과 4학년 때 로테이션을 돌며 다양한 과를 2주씩 경험해보잖아요. 근데 이 2주마다 본과 3학년 겨울방학에 제가 가졌던 생각에서 계속 달라지더라고요.

사실 이 시기에 과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되게 심하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더 경험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2차 병원으로 오게 됐어요.

여기 오고 난 후에도 생각이 많이 변했죠. 그래서 정말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Q. 어떻게 생각이 달라졌나요?

본3 때까지는 비임상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본3 때 임상 과목을 배우면서도 엄청 흥미를 끄는 과목은 없었죠. 비임상으로 가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로테이션을 돌면서 괜찮은 과들이 하나씩 생겼던 거죠. 저는 내과가 되게 재밌었어요.

직접 병원 돌아가는 걸 보는 거랑 수업 들으며 글로 보는 건 많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본4 때 배운 건 이겁니다. 내가 혼자 생각하면 아무런 답이 안 나오는구나. 직접 해보고 몸소 느껴야 아는 거구나.

저는 본4를 보내면서 내과랑은 정말 잘 맞고, 외과랑은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학부생 때는 외과 로테이션을 돌더라도 직접 수술을 참가하기보단 멀리서 지켜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병원에 오고 3월부터 외과를 돌게 된 거예요. 보조 수의사로 수술에 들어가서 실제 수술하는 걸 정말 가까이서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재밌더라고요. ‘내가 너무 얕게 생각했다’ 여기 와서 반성하게 됐죠.

 

Q. 2차 병원 1년차는 병원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 병원은 외과, 내과, 영상의학과, 응급중환자과로 나누어져 있어요. 인턴은 1년간 4개 과 로테이션을 도는데 각 과마다 하는 일이 많이 달라요.

외과는 주로 수술의 보조술자로 들어가고, 영상과는 X-ray 촬영, 그리고 X-ray랑 초음파 판독하는 방법을 배워요.

응급중환자과에서는 입원환자 관리와 CPR, 카데터 잡기, 채혈 같은 다양한 처치들들, 그리고 상황에 맞게 빠르게 판단하는 걸 간접적으로 배워요.

내과에서는 신체검사나 청진, 바이탈 재는 걸 주로 하고, FNA(세포흡인검사) 등을 배우고요.

또, 모든 과에서 진료, 문진에 참관하면서 진단과정에 대해 배우고 보호자 상담하는 법도 많이 참고하게 됩니다.

 

Q. 1년차의 하루 루틴을 소개해주신다면

9시 출근이라 7시 반쯤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8시 10분쯤 버스를 타요. 한 30분 버스 타고 가서 도착하면 옷 갈아입고 시작이죠.

오전에는 각 과의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고, 12시쯤 점심 먹고, 1시부터 일하다가 6시에 퇴근해요. 퇴근하고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집 청소하면 9시에요.

그 이후에는 의지가 있는 날은 카페 가서 공부를 하고, 의지가 없는 날은 유튜브 보거나 책 읽기도 하고. 축구 보는 거 좋아해서 밤에 축구도 봐요.

 

Q. 졸업 후 바로 2차 병원에서 일하는 것의 장단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2차 병원의 장점은 다양한 과를 경험하며 케이스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중에 본인과 어떤 과가 잘 맞는지도 알 수 있고요. 특히 응급과가 있는 게 되게 좋다고 느낀 게, 본4 때 로테이션 돌면서 보지 못했던 급박한 상황들도 여기서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단점은 의외로 간단한 거를 못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백신접종처럼 1차 병원에서 주로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모를 수 있어서, 제가 어떻게든 따로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학교 다닐 땐 어떤 학생이셨나요?

한 문장으로 말하면 학업에 충실치 못한 학생이었어요(웃음). 방황을 많이 했죠.

대학 오고 목표를 잃어버렸는데, 본3 때쯤 코로나를 겪으며 집에 있는 동안 저만의 해답을 찾았어요. 꼭 목적성이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느꼈죠. 임상 공부를 시작할 때라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Q. 2차 병원 입사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뭐가 있을까요?

정말 없어요. ‘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지 해보자’는 마인드만 가지고 오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이 없던 분야라고 해서 너무 등지지 말고, 가서 해보면 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오픈 마인드를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외과에 대한 편견이 깨진 것처럼요.

처음에는 내가 이 병원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텐데 낙담하지 말고,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미리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글쎄..와서 열심히 부딪혀 보는 게 훨씬 도움 되는 것 같아요.

 

Q. 미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근시안적인 목표는, 진료를 봄에 있어서,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 조금 더 확신을 가지는 거예요. 내가 불안하면 환자와 보호자도 불안할 테니까. 그런 불안함을 없애고 싶어요.

멀리 봤을 때의 목표는, 그런 자기 확신을 갖고 오만하고 나태한 수의사가 아닌, 계속 불안감을 가질 수 있는 수의사가 되는 거예요. 내가 놓친 게 있는 게 아닐까, 나 지금 너무 나태해서 발전을 안 하려는 게 아닐까 불안해할 수 있는.

 

Q. ‘1년차가 0년차에게’ 2차 병원에 이제 막 입사한 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6년간 공부하고 국가고시를 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정말 생각보다 많이 알거든요.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부딪혀보고, 많이 깨지기도 하겠지만 열심히 한다면 훌륭한 수의사가 되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요.

김신우 기자 yegurshin01@snu.ac.kr

[수(獸)타트:2차 병원은 처음이라] 뭐든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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