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과학자 양성할 교육과정 개편 필요하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한수협, 회장 이만휘)가 8월 26일(화) 세종 충북대 동물병원에서 2025년도 제2차 이사회를 열고 수의대 교육 개선을 위한 현안을 논의했다.

전국 수의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한수협은 10개 수의과대학 학장단이 이사진을 구성한다. 학장들이 모여 수의대 간 협력해야 할 교육 현안을 논의하는 한편 신임교수 연수교육, 수의학교육 개선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수의사 양성 정책을 담당하는 농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도 배석해 교육 개선을 위한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학장단은 수의대 졸업생의 반려동물 임상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의 교육·연구 기반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양규 건국대 수의대 학장은 “대학에서 보면 학생들의 90% 이상이 (반려동물) 임상을 희망하고 있다. 연구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잘 없다”면서 “이미 수의 관련 기관에서 (석·박사) 학위를 가진 수의사가 필요해도 못 뽑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이미 수의연구사의 상당수를 타 전공 학위자로 채용하고 있다. 최 학장은 “곧 수의대 교수를 뽑을 때도 박사학위를 가진 수의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의대생이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더라도 임상과목에 집중되고, 기초 연구 분야는 타 전공생 위주로 흐르는 현상은 이미 뚜렷하다.

최 학장은 의과대학의 ‘의사 과학자’ 양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수의과대학에도 ‘수의사 과학자’ 양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목했다.

“개별 교수가 자체 연구비로 인건비를 주겠다는 정도로는 (수의대) 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다”면서 수의과대학에 DVM-MS 혹은 DVM-PhD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양규 건국대 수의대 학장

김상현 경상국립대 수의대 학장은 10개 수의과대학이 함께 연구를 활성화하면서 수의사 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선도연구센터 사업이 필요하다고 지목했다.

기초의과학 연구 분야를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의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기초의과학분야 선도연구센터(MRC, Medical Research Center)’ 사업과 같이 수의학 분야에도 가칭 VMRC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주영 충남대 수의대 학장도 “VMRC와 같은 연구 플랫폼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치대, 약대, 한의대 모두 MRC에 참여하고 있지만 수의대만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현 학장은 “대학동물병원을 중심으로 10개 수의대가 VMRC를 구성한다면 원헬스 전문가를 양성하고 수의대 간 네트워킹과 연구 경쟁을 유도할 좋은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정훈 강원대 수의대 학장(왼쪽), 정주영 충남대 수의대 학장(오른쪽)

농장동물을 진료할 수의사를 많이 배출하지 못하는데도 수의학 교육 여건이 작용하고 있다.

대학 동물병원에서도 주로 반려동물을 진료하고, 주변에서 실습처를 찾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반려동물 임상과 달리 농장동물 임상은 학생들이 접할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의과대학에서 농장동물을 직접 진료하는 교수가 매우 부족해졌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다.

이와 관련해 최정훈 강원대 수의대 학장은 “최근 본교에 대동물 임상 교수 2명을 신규 임용하니 실습 환경도 좋아지고, 대동물 임상을 지원하는 졸업생들도 매년 나오고 있다. 관련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정주영 학장도 “각 수의대에 농장동물 전공 교수진이 사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강원대 사례처럼 학생들이 농장동물 임상에 관심을 가지고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돼지, 가금 등 축종별로 교원을 채용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벌어지며 관련 교원을 확충한 사례가 있는만큼 정책적 필요에 따라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기정 충북대 수의대 학장은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의 수준이 지역의 대형 동물병원에 비해도 떨어져 있는만큼 이를 개선하는 것을 정부 주도로 지원하되, 농장동물 등 타 축종 수의사 양성을 위한 교원 채용을 조건으로 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농식품부가 지원하는 농장동물 임상 교육 예산을 늘려 평창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이 아닌 일선 농장으로의 학생 실습까지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동물 치료 넘어 생태계로” 국립생태원 김영준 실장이 말하는 공존의 수의학

생명존중 사회를 위해 수의학적 의료 활동을 펼치며 동물보호복지 정책을 제안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사)국경없는수의사회(VWB, 대표 김재영)가 국내외 수의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제2회 국경없는 수의사회 B-인사이트’를 개최했다.

24일(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국경없는수의사회가 국내외 수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수의대생들에게 생명존중에 대한 철학과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위해 진행된 뜻깊은 행사였다. 우리와 주식회사(대표 최광용)가 행사를 후원했다.

제2회 B-인사이트는 ‘수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수의학의 더 넓은 가능성과 역할의 발견’을 주제로 열렸으며, 약 50명의 국내외 수의대생이 참가했다.

‘수의 봉사활동에서 마주치는 윤리’ 강연과 ‘공존을 위한 수의학-야생동물 보전의 현장과 실천’ 강의에 이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공존을 위한 수의학-야생동물 보전의 현장과 실천’ 강연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을 이끄는 김영준 실장이 진행했다.

김영준 실장은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실천해 온 수의사다.

1995년 전남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방글라데시 KOICA 해외봉사를 시작으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와 서울대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을 거치며 야생동물 보전과 복지를 위해 힘써왔다. 반달가슴곰 복원과 천연기념물 치료 현장을 이끌었고, <한국 고라니>, <야생동물의 질병>, <죽음 없는 유리창> 등 다수의 저술과 번역서를 통해 연구 성과를 대중과 공유해 왔다. 국민포장(2020)을 비롯해 환경부장관상, 문화재청장상 등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영준 실장은 기후위기와 신종 감염병이 맞물린 오늘의 현실 속에서 “수의학은 더 이상 동물 치료에 머무를 수 없으며, 인간·야생동물·환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준 실장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편화는 벡터 매개성 질병의 확산을 가속하며, 이는 인간과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복합적 위기로 부상하고 있다. 김 실장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수의사가 단순한 치료자에 머무르지 않고 생태계의 건강을 설계하는 전문가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수의사의 공적 책무를 강조했다.

강연에서는 야생동물의학의 변화가 핵심적으로 다뤄졌다. 전통적으로 개체 치료 중심이었던 이 분야는 이제 생태 보전·공중보건·환경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학문으로 발전 중이다. 이를 위해서는 GIS, 역학, 분자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김 실장은 “수의사는 연구자이자 매개자”라며, 현장과 정책, 사회와 생태계를 잇는 연결자로서 실질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식지 파괴, 기후 위기, 신종 질병의 확산 등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연쇄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김 실장은 그 해법으로 ‘공존’을 제시했다. 단순한 보호·관리에서 나아가 인간과 야생동물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지키는 것이 곧 미래 수의학의 본질적 가치”라며, 수의학이 좁은 ‘치료’의 틀을 넘어, 균형을 지향하는 학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멸종위기종 복원, 보전 정책의 우선순위, 길고양이의 생태적 영향 등 현실적인 논의가 폭넓게 다뤄졌다.

김 실장은 특정 종 보호가 생태계 전반의 건강을 높이는 우산효과(umbrella effect)를 예로 들며 “보전은 결국 생태계 단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야생동물의 법적 범위와 관리 주체의 모호성을 짚으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균형 있는 정책 설계의 필요성을 환기했다.

김영준 실장은 “개체를 넘어 생태계를, 치료를 넘어 공존을 바라보는 것”이 수의학의 궁극적 역할임을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번 강연은 수의학이 동물 진료를 넘어, 인간과 야생동물, 환경을 아우르는 연결의 학문으로 도약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 공존을 위한 선택은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앞의 책무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오늘의 논의가 내일의 생태계를 지키는 출발점이 될 것을 기대한다.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

“수의대생이 수의봉사활동에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지점은 무엇일까?”

생명존중 사회를 위해 수의학적 의료 활동을 펼치며 동물보호복지 정책을 제안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사)국경없는수의사회(VWB, 대표 김재영)가 국내외 수의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제2회 국경없는 수의사회 B-인사이트’를 개최했다.

24일(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국경없는수의사회가 국내외 수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수의대생들에게 생명존중에 대한 철학과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위해 진행된 뜻깊은 행사였다. 우리와 주식회사(대표 최광용)가 행사를 후원했다.

제2회 B-인사이트는 ‘수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수의학의 더 넓은 가능성과 역할의 발견’을 주제로 열렸으며, 약 50명의 국내외 수의대생이 참가했다.

‘수의 봉사활동에서 마주치는 윤리’ 강연과 ‘공존을 위한 수의학-야생동물 보전의 현장과 실천’ 강의에 이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수의 봉사활동에서 마주치는 윤리’ 강연은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약 중인 주설아 박사가 맡았다. 주 박사는 인간동물학 관점을 주된 연구 방법으로 하여 수의인문사회학 분야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인간동물학이란, 인간 사회와 문화에서 동물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의미와 역할, 인간과 동물의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의봉사활동(동물의료봉사활동) 현장에서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실질적인 고민과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이번 강연은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딜레마를 함께 고민하고, 이를 윤리적 언어와 관점으로 풀어내며, 미래 수의사로서 사회적 책임과 전문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성찰하는 시간이 됐다.

주설아 수의사

주설아 박사는 봉사활동의 의미를 묻는 여러 질문을 던졌다. 기사를 읽는 독자들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봉사활동이란 무엇일까? 개인적 관점, 커뮤니티 그룹, 그리고 사회·국제적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수의봉사활동에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지점은 무엇일까?”

주 박사는 봉사활동에서 ‘선(good)’이라는 개념은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봉사활동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우리는 더 나은 봉사활동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곧 우리가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유와 그 의미, 그리고 타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전남대학교 박수현 학우(본4)는 “봉사활동은 남을 돕는 동시에 ‘나를 위한 활동’이라고 느껴진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아무리 적더라도,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봉사활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진다. 단순히 한 마리 동물을 돕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파급효과를 미치기도 한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자아 성찰, 학문적·사회적 역량 향상, 더 나아가 커리어적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과정이며, 재해 현장 파견을 통한 동물 구조와 구호, 정책 제안을 통한 집단적 영향력 확산, 국가 단위 연계 확대에도 기여한다. 나아가 해외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 파견되어 봉사하거나, 동물뿐 아니라 사람을 돕는 활동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수의대생이 참여하는 봉사에는 뚜렷한 특성이 있다. 단순히 자원봉사에 그치지 않고 ‘봉사학습(service-learning)’의 성격을 지닌다. 봉사학습은 기술 개발뿐 아니라 대인관계 능력, 자기 인식, 팀워크와 리더십 발전으로 이어지며, 실제 동물을 마주하는 값진 경험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활동 후의 성찰이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이후의 배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돌아보는 과정이 봉사학습의 핵심이다. 이는 개인의 성장과 학문적 향상뿐 아니라 시민 참여적 성격도 지닌다. 봉사학습은 학생·교수·수의사·지역사회가 협력하는 교육적 특성을 갖는다.

주 박사는 수의 봉사활동을 “동물과 인간 모두를 위한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일차적으로는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공중보건을 개선하는 목적을 지니므로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이로운 활동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적 상호작용은 결국 인간과 동물 모두의 건강과 복지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고 이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다.

수의사가 마주치는 윤리적 딜레마는 직업 만족도와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번아웃이나 직업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과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수의사는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가 높은 직군이다. 보호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기대도 크다.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큰 비난을 받는 이유는 수의사에 대한 사회적 믿음 때문이다. 또한 수의사는 동물의 지위와 대우를 개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문직 중 하나다.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한 만큼 더 큰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존재하므로,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

특히, 수의 봉사활동은 윤리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 대표적 활동이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현지에서는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이해를 넓혀야 한다.

주 박사는 수의 봉사활동에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지점으로 ▲Nature of “good” ▲Cultural difference ▲Paternalism vs Care ▲Lesser evil을 제시했다.

‘선’이라는 것은 봉사자의 입장에서 구성되지만, ‘소통을 통한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같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의료적 전문성을 제안할 때, 후견주의(Paternalism)는 의료분야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제시되면 일방적인 의료 개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료적 개입을 상대방이 얼마나 이해하고 소통하고 있는지가 진정한 의료적 케어다.

또한, 봉사활동을 위한 교육과 훈련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부 동물에 대한 ‘위해’를 당연시하고 대를 위한 소의 희생(공리주의)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떤 활동이냐, 어떤 이해당사자냐에 따라서 해(harmful)가 어느 정도 일어날 수 있고 자아중심적(egocentric)인 관점이 투영될 수 있다. 봉사활동에서는 이러한 지점들이 간과되기 쉬운데, 봉사활동을 하는 ‘나’, 봉사활동을 받는 ‘대상’, 지역사회의 ‘시각’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주설아 박사는 “더 윤리적인 봉사활동이란 전공을 위한 단순한 실습의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전공이 봉사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과정”이라며, “올바른 봉사활동은 수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고 전문직업성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활동의 긍정적 결과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고 경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박연우 기자 pyw2196@naver.com

정현우 미국수의심장전문의 초청 강의 9월 28일 개최

한국수의심장협회(KAVC, 회장 윤원경)가 미국수의심장전문의 초청 특별 강연을 마련했다.

9월 28일(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유한양행 본사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이번 특강은 수의심장협회 정회원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강사는 미국수의내과전문의(심장)(DACVIM(Cardiology))인 정현우 수의사다.

고등학생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정현우 전문의는 조지아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이후 버지니아공과대학교(Virginia Tech) 수의과대학(버지니아-메릴랜드 수의대)에서 레지던트를 마치고, 2022년 미국수의심장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이번 특강에서 정현우 전문의는 ▲각도에 따라 진단이 달라진다 ▲고양이 심근병증 ▲MMVD ▲폐고혈압 ▲실신 환자의 감별과 치료를 주제로 심장초음파부터 ProBNP 활용, 이뇨제 사용법, 심부전 관리, 폐고혈압의 혈역학적 분류와 진단·치료 등 다양한 심장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증례를 바탕으로 하루 종일 강의할 예정이다.

특강에 참여하는 한국수의심장협회 회원에게는 중식 및 다과, 강의자료 PDF 파일이 제공된다. 8월 31일(일)까지 한국수의심장협회 2025년 정회원 신규 가입 및 특강 신청을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수의심장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안 되는데…일본은 왜 반려동물 대피소 입장을 허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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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i Tanaka 박사

24일(일) 열린 ‘제1회 국경없는 수의사회 아시아 창립총회’에서 일본수의생명과학대학의 아키 타나카(Aki Tanaka) 박사가 일본의 재난재해 대응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변화된 일본의 반려동물 피난·보호 정책을 주로 소개했다.

이날 발표를 들은 전문가들은 아키 타나카 박사의 발표가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이 크다고 분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초 경북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로 1,994마리의 반려동물이 죽거나 다쳤다. 가축까지 포함하면 2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피해를 입었다.

이번 사건으로 ‘반려동물 동반대피’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제기되는 이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해구호법은 구호 대상을 ‘사람’으로만 한정하고 있고, ‘재난 대피소 지침’도 반려동물의 대피소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재난 시 반려동물이 갈 곳이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상당수 반려동물 보호자가 대피소 입소를 거부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반려동물을 버리고 나만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반려동물의 대피소 동반대피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반면, 가까운 일본의 경우, ‘사람과 반려동물의 재해대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재난 시 반려동물은 보호자와 함께 이동하도록 하는 ‘동행 피난’을 기본 원칙으로 명문화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계기가 됐다.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9.1 규모의 지진으로,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자 전 세계 역사상 4번째로 큰 지진이었다. 수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동물들도 피해를 입었다. 지진 이후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고, 주민들이 대피하면서 동물들은 현장에 그대로 남겨졌다.

아키 타나카 박사는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사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급작스럽게 대피 명령이 내려졌는데,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만 대피하고) 동물들은 현장에 남겨졌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동물 구조 작전은 한 달 후에나 시작됐다. 지자체, 지역 수의사회, 지역 수의대가 공동 조사를 시행했는데, 현장은 참혹했다. 5,800마리 이상의 개가 죽었고, 3,400여 마리의 소와 31,500여 마리의 돼지, 그리고 63만수 이상의 가금류가 목숨을 잃었다. 고양이의 피해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자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었고, 많은 동물이 탈수로 죽었다.

2011년 당시 미국 UC DAVIS 대학원생이었던 아키 타나카 박사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발생한 동물들의 피해를 보고 심각성을 인지한 뒤 다양한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그녀의 연구는 ▲Epidemiological evaluation of cat health at a first-response animal shelter in Fukushima, following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s of 2011Epidemiological evaluation of cats rescued at a secondary emergency animal shelter in Miharu, Fukushima, after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sEffect of Pets on Human Behavior and Stress in Disaster 등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일본도 당시에는 전문적인 대응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구호 활동과 치료 활동도 체계적으로 수행되지 못했다.

첫 번째 임시 동물보호소가 이노(Ihno)에 마련됐다. 큰 동물은 안락사됐고, 작은 동물만 보호소에 입소됐다. 그러나, 체계적인 가이드가 없다 보니 보호소 운영이 원활하지 못했다. 개, 고양이가 한 데 섞여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설사와 호흡기 감염이 매우 많았다. 동물들은 충분한 운동을 하지 못해 근육량이 감소했으며, 사람과의 접촉이 끊겼기 때문인지 사람을 무는 개도 많았다. 개물림사고를 당하는 자원봉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후쿠시마현수의사회를 중심으로 수의사들이 자원봉사를 왔지만, 매일 다른 수의사가 봉사를 오고, 기존 처치 내역이 잘 전달되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약물 처치가 이뤄졌다. 자원봉사를 온 수의사들은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려 했고, 이것이 오히려 ‘항생제 과다 투여’로 이어졌다. 무려 17개의 항생제가 사용됐다고 한다.

두 번째 임시 보호소는 미하루(Miharu)에 마련됐다. 2013년 1월에 모든 구조 동물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시설은 훨씬 나았지만, 보호소 내 동물 관리·치료 프로토콜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초기 몇 달간 운영이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후쿠시마현 구조 동물에 대한 보호 활동은 2015년 12월 31일까지 4년 이상 지속됐다.

일본 정부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재난 시 동물구호·대피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재난 시 반려동물은 보호자와 함께 이동하도록 하는 ‘동행피난’을 기본 원칙으로 명문화했으며, ‘사람과 반려동물의 재해대책 가이드라인’을 2018년 제정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대피소 내 공간 분리, 케이지 수용 등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권고하고 있다.

수의사회의 노력도 있었다.

각 지역수의사회가 동물의 구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팀을 구성했다. 이 팀에 속한 수의사들은 동물구조훈련을 받고, 응급구조대원들과 함께 반려동물 보호자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대피 교육도 실시한다.

아키 타나카 박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는 반려동물 대피를 허용하는 보호소가 많이 늘어났으며, 여러 회사가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대피소 내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특별 텐트도 제작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피소가 여전히 반려동물 입장을 거부하는 점에 대해서는 “동물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대피를 거부하면서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에서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반려동물의 동반 입장이 안되어 보호자가 대피소 입소를 거부하고, 자동차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일명 차박)을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중 일부는 장기간 차량 생활로 심부정맥혈전증 등에 걸려 사망하기도 했다.

아키 타나카 박사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재난 시 대응 체계는 많이 발전했으나 이러한 활동이 여전히 일본 내부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대규모의 국제적인 구호 시스템은 여전히 없다”며 “아시아 국경없는수의사회 발족이 이러한 시스템 마련에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정부는 지난 2022년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구체적인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수의사회, 동물보호단체 등이 참여하는 재난시 구조보호 매뉴얼을 만든다. 이를 통해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 및 보호자의 안전한 대피 및 대응을 위해 국가 및 지자체가 재난대응 단계별로 준비·수행해야 하는 업무와 역할을 규정할 예정이다.

‘아시아 국경없는수의사회’ 창립 공식 선언..캄보디아 지부도 발족

‘아시아 국경없는 수의사회’가 창립을 공식 선언했다.

동물의료활동과 동물보호복지 정책 제안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건강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국경없는 수의사회(VWB, 대표 김재영)가 24일(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제1회 국경없는 수의사회 아시아 창립총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번 창립총회는 지난 2020년 국경없는수의사회가 창단한 지 5년 만에 이루어진 뜻깊은 행사였다.

이날 총회에는 국경없는 수의사회의 해외지부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지부 관계자들과 일본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들도 배석했다. 이들은 광견병 청정, 재난 시 동물구호, 원헬스 구현, 미래 세대 지원 등을 위해 아시아 차원의 연대를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김재영 국경없는수의사회 대표

국경없는 수의사회 김재영 대표는 “인간, 동물, 생태계의 건강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원헬스(One Health) 개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동물복지 증진과 인수공통감염병 퇴치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총회는 이러한 공동 목표를 향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총회는 이인형 준비위원장의 개회로 시작했으며,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인 한정애 의원과 박홍근 의원의 축사가 이어졌다. 또한, 이번 행사를 후원한 우리와의 최광용 대표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정애 국회의원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국경없는 수의사회가 이 시대의 진정한 주역”이라고 전했으며, 박홍근 국회의원은 “국경수의 국제연대가 한층 더 굳건해졌다. 광견병 청정지대 조성과 재난 동물 구조에 앞장서는 숭고한 실천에 제도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최광용 우리와 대표는 “아시아 국경없는수의사회 창립은 아시아 동물복지와 공중보건 향상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라며 “우리와 역시,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경없는 수의사회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Saran Chhoey 국경없는수의사회 캄보디아지부장

국경없는 수의사회 캄보디아지부도 정식 발족했다. Saran Chhoey 수의사가 캄보디아지부장으로 공식 위촉된 것이다. 캄보디아 왕립농업대학(Royal University of Agriculture, RUA)을 졸업한 Saran Chhoey 지부장은 전남대 수의대에서 수의영상의학을 전공한 뒤 캄보디아로 돌아가 모교인 RUA의 교수가 됐다. Saran Chhoey 지부장은 “캄보디아에서 광견병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총회에서는 아시아 각 지부의 현황이 공유됐으며, 광견병 확산 방지, 국가적 재난 발생 시 대처 전략, 지역의 미래 세대의 수의학 인재 양성 등 공동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방인준 국경없는수의사회 베트남지부장

국경없는 수의사회의 방인준 베트남지부장은 “베트남에서는 여전히 개물림사고로 인한 광견병 감염으로 죽는 사례가 발생한다”며 베트남의 광견병 근절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어 “지난 2024년에는 태풍 ‘야기’ 피해지역에 봉사활동을 진행했지만, 피해 규모가 여전히 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계획 중”이라며 베트남지부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용승 국경없는수의사회 라오스지부장

박용승 라오스지부장은 “라오스의 반려동물 문화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고, 라오스 최초의 수의학과가 설립된 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현지 수의사들의 전문성 강화를 통해 원헬스 개념의 동물복지를 실현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역량 강화 원조가 필요하다”며 “health pets, happy people의 표어 아래 라오스 수의사·수의대생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현재 라오스지부의 큰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캄보디아 왕립농업대학 Keo Sath 교수

캄보디아 지부의 현황은 RUA(Royal University of Agriculture, Cambodia)의 Keo Sath 교수가 전했다. Keo Sath 교수는 “RUA의 수의학과의 시설과 인프라가 아직 매우 부족하다.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실현할 전문가 양성이라는 RUA의 미션을 위해 더 많은 협조가 필요하다”며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수의생명과학대학 Aki Tanaka 박사

일본수의생명과학대학의 Aki Tanaka 박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에 고립된 동물들의 문제와 이를 통해 일본이 얻은 교훈을 소개했다. 당시 UC DAVIS 대학원생이었던 그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Aki Tanaka 박사는 “2011년 일본은 재난 상황에서 동물구호 활동의 매뉴얼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보호소 설치와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을 소개했다. 또한 “보호소가 구조된 동물들에게 스트레스 환경을 주지 않도록 해야 질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보호자에게 구호 절차를 명확히 안내해 혼선을 줄여야 한다”며 “국가적 재난 시 수의학적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국제적 논의와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혹은 전 세계적인 논의와 재난 시 동물구호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이어 국내 전문가들의 강연이 이어졌다.

광견병 전문가인 농림축산검역본부 양동군 박사는 아시아 국가들의 광견병 현황을 소개하며, 광견병 청정화를 위해 ‘아시아 국경없는 수의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양 박사는 “여러 아시아 국가가 인적, 물적 자원 부족으로 광견병 근절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며 “광견병 상재국에서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stray dog)가 광견병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광견병 예방을 위한 ‘포획-백신-방사(TVR)’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 이재명 서기관은 올해 발생한 경북 안동 산불 대응 사례 및 우리나라의 재난 시 동물구조보호 정책을 소개했다. 정부는 지난 2022년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더 구체화된 대응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다.

총회 종료 후 발표된 공동 성명서에는 ▲광견병 청정지역 조성 ▲재난 대응 체계에서의 수의사 역할 강화 ▲원헬스(One Health) 기반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 ▲미래 세대를 위한 수의학 연대 강화의 네 가지 핵심 과제가 담겼다.

이번 국경없는 수의사회 아시아 창립총회는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수의학적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총회에서 공포된 성명서의 내용들처럼 광견병 청정화, 재난 동물 구조, 원헬스 구현이라는 공동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 수의사들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국경없는 수의사회 아시아는 앞으로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국제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수의학 발전을 목표로 나아갈 예정이다. 앞으로 ‘국경없는 수의사회 아시아’가 아시아 지역 수의사 연대의 중심 허브로 성장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5 아시아 국경없는수의사회 총회 공동 성명서 : Veterinarians Without Borders – Asia Branch Joint Declaration]

우리는 2025년 8월 2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국경없는수의사회 아시아 지부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으로서, 국경을 초월한 동물복지 향상과 인수공통전염병 대응, 재난 대응 체계 내 수의사의 역할 확대, 그리고 인간·동물·환경의 통합 건강을 추구하는 One Health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이 공동의 의지를 천명한다.

1. 광견병 청정지역 조성을 위한 공동 협력

우리는 광견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시아를 실현하기 위해, 백신 접종 확대, 유기동물 개체수 조절(TNR), 지역사회 교육 및 인식 제고를 포함한 공동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할 것이다. 특히 농촌 및 저개발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정부 및 민간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감시·보고 체계를 구축할 것을 약속한다.

2. 재난 대응 체계에서의 수의사 역할 강화

우리는 자연재해, 팬데믹, 전쟁 등 재난 상황에서 동물은 종종 구조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재난 대비 및 대응 매뉴얼에 수의사의 역할을 명확히 포함시킬 것을 촉구한다. 각국은 재난 발생 시 신속한 동물 구조·치료·피난·보호소 운영에 대한 수의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위한 공동 훈련과 정책 제안을 추진할 것이다.

3. One Health 구현을 위한 아시아 수의사 네트워크 구축

우리는 인간, 동물, 환경의 건강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며, 원헬스 실현을 위한 아시아 수의사 간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할 것이다. 우리는 공동 연구, 질병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통합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정부·보건기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 가능한 보건 체계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4. 미래 세대를 위한 수의학 연대 구축

우리는 다음 세대 수의사들이 국경없는 수의학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청년 수의사의 교육·현장 경험·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것을 결의한다. 이는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발전과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다.

2025년 8월 24일 대한민국 서울

국경없는수의사회 아시아 지부 일동

이한희 기자 hansoncall911@gmail.com

파푸아뉴기니로 떠난 해군 수의장교

“배를 타고 해외 임무를 떠난 것도, 파푸아뉴기니도 처음이었습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퍼시픽 파트너십’에 참여한 해군 수의장교 최규빈 대위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 태평양함대가 주관하는 ‘퍼시픽 파트너십’은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과 재난대응 역량 향상에 초점을 맞춘 다국적 연합 훈련이다. 한국군을 비롯해 미국, 영국, 캐나다 등 7개국이 참여한다.

올해 퍼시픽 파트너십은 7월 26일(토)부터 8월 8일(금)까지 2주간 파푸아뉴기니 일대에서 진행됐다. 우리 해군은 지난해에 이어 상륙함 일출봉함을 투입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포함해 170여명으로 훈련단대를 꾸렸다.

기동함대사령부 제주기지전대에서 복무 중인 3년차 수의장교 최규빈 대위는 훈련단대 유일의 수의장교로 참여했다.

최 대위는 “퍼시픽 파트너십이 아니면 배를 타고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할 기회가 거의 없다”면서 “여행이 아닌 임무로 떠나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일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2023년과 2024년의 퍼시픽 파트너십은 보다 친숙한 필리핀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 훈련지인 파푸아뉴기니는 훨씬 멀고 생소한 곳이다.

퍼시픽 파트너십 훈련 첫날 의무·수의 일정을 조율하는 한국군과 미군

일출봉함은 태풍 예보를 피해 예정보다 이른 7월 13일 진해 군항을 출발했다. 파푸아뉴기니 라에항을 향해 11일간 항해하면서 미군과 한국군 사이의 의무팀 일정 조율을 담당했다.

라에항에 도착한 직후에는 사용할 물에 대한 수질검사와 함께, 모기매개 질병이 많은 파푸아뉴기니 환경에 맞춘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모두 수의장교의 업무에 해당한다.

의무팀 일원으로서 의무활동에도 종사했다. 현지인들의 선교 쉼터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실시하거나, 여성 안전 및 재난 상황 대처법 교육을 위한 심포지엄, 지역건강박람회 등에도 참여했다. 일출봉함에서 한미 연합으로 함상 응급수술 및 후송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응급처치, 재난대응 등을 교육하고(왼쪽),
함상 응급수술 한미 연합훈련(오른쪽)에도 참여했다.

수의활동도 병행했다. 훈련단대 수의장교는 최 대위 1명이다 보니 현지 주민들을 위한 수의활동은 주로 미군 수의팀과 손발을 맞췄다.

파푸아뉴기니 검역본부를 방문해 개 신체검사를 교육하고, 열대 환경인 파푸아뉴기니 현지의 동물원을 방문해 행동풍부화나 동물 사양관리 등을 알렸다. 전문적으로 악어를 양식하는 농장을 방문해 인수공통감염병을 치료하고 관련 예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현지 동물원(왼쪽), 검역당국(오른쪽)을 방문해 수의 활동을 벌였다.

최규빈 대위는 “무척 더운 날씨와 불안한 치안으로 인해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며 “파푸아뉴기니 현지인들도 퍼시픽 파트너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보여 인상깊었다. 변화의 계기를 줄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 대위는 “임무를 위해 먼 해외로 떠나는 것 자체가 희귀한 경험”이라며 “기회를 살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임했다”고 덧붙였다.

[위클리이슈] 자일라진 마약류 지정 제외+반려견 렙토스피라증 경고

지난주 수의계 이슈를 빠르게 돌아보는 ‘위클리이슈’입니다. 2025년 8월 넷째주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https://www.dailyvet.co.kr/news/policy/254395

https://www.dailyvet.co.kr/news/prevention-hygiene/254543

https://www.dailyvet.co.kr/news/association/254650

https://www.dailyvet.co.kr/news/college/254815

https://www.dailyvet.co.kr/news/policy/254899

https://www.dailyvet.co.kr/news/association/254863

“에스트로겐 : 유방암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전남대 수의대 해외석학 초청 특강 개최

전남대학교 동물병원(원장 이봉주)이 20일(수) 전남대동물병원 박남용홀에서 해외 석학 초청 특강을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에스트로겐 : 유방암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주제로 열렸으며,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의과대학의 김재연 교수가 특별 강연자로 나섰다.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출신의 김재연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베일러대학교를 거쳐 현재 인디애나대 의대(IUSM) Department of Biochemistry, Molecular Biology and Pharmacology에 재직 중이다.

전남대 수의대 교수진과 학생들이 함께한 가운데,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에스트로겐과 유방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짚고, 에스트로겐 치료가 지니는 의학적 이점을 소개했다. 또한 미국 생활에 관심을 가진 학부생들의 고민을 듣고 이에 대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김재연 교수는 우선 “에스트로겐이 유방암의 위험을 높이고, 나아가 유방암에 의한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이라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소개했다.

폐경기 여성들은 감소된 에스트로겐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HRT(hormone replacement therapy, 호르몬 대체 요법)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에스트로겐이 유방암 및 다른 질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에스트로겐 처치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도 유방암 발병률과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오히려 증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김 교수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끝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menstrual hormone(월경 관련 호르몬)과 유방암은 분명 연관성이 있으나, 에스트로겐 단독으로는 유방암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었다. 김재연 교수는 연구를 통해 “오히려 에스트로겐은 유방암을 예방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실제로 유방암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은 프로게스테론일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했다.

실제로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에스트로겐 생산량이 평소보다 2~16배 증가하지만, 프로게스테론은 분비되지 않는다. 기존 가설대로라면 이 경우 유방암 위험이 커져야 하지만, 연구에서는 오히려 보호 효과가 확인됐다. 또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여성이 시험관 시술을 받는 경우에도 재발률과 사망률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반대로, 프로게스테론을 주성분으로 하는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들에게서는 유방암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유방암 치료제인 tamoxifen(타목시펜)의 항암효과 기전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개와 고양이에서 중성화수술로 에스트로겐 농도가 감소했을 때 발생하는 신체적, 행동적 변화를 언급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에스트로겐 처치를 했을 때 기대되는 잠재적 효과를 소개했다. 이어, 사람의 연구 결과와 연계해 설명하면서 해당 분야에서 수의학과 의학 간 협력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번 세미나는 최신 의학 연구 동향을 공유하고, 수의학과 의학 간 융합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로 평가됐다.

박연우 기자 pyw2196@naver.com

인디애나대 의대 김재연 교수 “연구는 호기심과 끈기, 인내 위에서 자랍니다”

연구자의 길은 언제나 치열한 고민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끝없는 실험과 실패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죠. 김재연 미국 인디아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사진) 역시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온 인물입니다. 전남대 수의과대학 학부와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석·박사, 베일러대학교 의대 포닥 과정을 거쳐 현재는 인디애나대 의대에서 난소암·유방암의 발생 및 진행에 관여하는 분자적 기전을 연구하는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쌓아온 그의 여정은 후배 수의사·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수의학을 시작으로 다양한 학문을 이어온 과정, 해외 유학과 연구실 선택의 고민, 그리고 긴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들은 후배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김 교수는 여러 학회에서 발표상을 수상할 만큼 연구 성과와 발표력을 인정 받았는데요, 여기에는 그만의 노하우와 꾸준한 자기 관리가 숨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교인 전남대 수의대를 찾아 전공의와 학부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열고, 자신이 걸어온 연구자의 길을 공유했습니다. 데일리벳이 김재연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주어진 공부를 그냥 따라서 충실히 하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요. 당시에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암기에 집중했고, 실제로 성적도 어느 정도 잘 나왔지만, 비판적 사고라든지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내향적이면서 깊이 탐구하는 성정이 있어서 조용히 깊이 파고드는 연구가 제 성향에 더 맞겠다는 막연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동물병원 개업보다는 자연스럽게 연구직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연구자의 길은 특정 사건이나 누군가의 권유보다는 제 성격과 성향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원 학위과정을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연구가 단순히 실험실에서 파이펫을 들고 실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초창기에는 연구 주제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나 방향 없이 그저 주어진 연구를 수행했는데, 주제에 대해 깊이 파는 과정을 통해 차츰 연구자로서의 훈련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 주제 선택은 아무래도 학위과정이었기에, ‘내가 어떤 분야를 꼭 하고 싶다’라는 구체적인 계획보다 지도 교수님의 지시와 또 논의를 통해 주어진 과제를 깊이 파고드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호르몬 연구 역시 우연히 시작된 것이었고, 실험을 통해 기존 개념과는 다르게 에스트로젠이 아니라 프로게스테론이 암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점점 확장된 것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 호기심과 경험을 기반으로 연구의 주제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연구는 결국 지속적인 호기심과 끈기, 인내 위에서 방향이 정립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연 교수가 박사 과정을 밟았던 일리노이대학(UIUC)의 전경

이 연구를 시작한 배경은 순전히 호기심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마우스 모델에서 난소암이 발생하는 것을 관찰했는데, 그 발생 기원이 난소가 아니라 난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흥미로운 단서를 얻게 되었죠. 이후 실험을 통해 프로게스테론이 난소암과 유방암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에스트로겐이 유방암 발생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저희 연구는 에스트로겐이 아니라 프로게스테론이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또 BRCA1 변이가 있는 여성에게서 난소암과 유방암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프로게스테론 신호가 관련될 수 있다는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성과들은 난소암과 유방암의 호르몬적 원인을 새롭게 정립한 연구로, 기존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유학을 준비하던 1990년대에는 지금처럼 인터넷 정보가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미국 유학 관련 책자를 보거나 서점에서 자료를 찾아보며 필요한 조건들을 확인했고, TOEFL이나 GRE 시험 준비를 통해 기본 자격을 갖췄습니다. 지금은 학교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학생을 선발하지만, 당시에는 교수 개인이 직접 뽑는 경우가 많아, 편지를 보내며 컨텍했습니다.

자비로 유학을 갈만한 경제적 형편이 아니어서 장학금이 필요했는데, 운 좋게 조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 프로그램에 합격하면 학비와 생활비가 제공되지만, 당시에는 직접 많은 편지를 보내고 발품을 팔며 기회를 얻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미국 대학이 박사과정 입학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학부 성적과 연구 경험, 논문 같은 연구 실적입니다. 미국 대학의 박사 과정에 지원할 때 석사학위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외국 지원자들은 대부분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영어가 외국어인 지원자들의 경우에는 영어능력 검정시험인 TOEFL이나 IELTS 점수를 제출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GRE 점수를 제출해야 했지만, 지금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뀌어서 꼭 제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학부 성적이 우수하지 않다면 좋은 GRE 점수를 제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화상 인터뷰를 하고 결과를 종합하여 입학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특히 주립대학의 경우는 외국 학생들을 자국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뽑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입학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재연 교수가 박사 과정을 밟았던 일리노이대학(UIUC)의 전경

Illinois, Baylor, Indiana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그 당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연구실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제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주제보다 지도교수’입니다. 연구 주제는 어디에서든 가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따라서, 지도교수가 학생을 잘 지도하고 성향이 맞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지도 교수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연구 주제가 매력적이어도 학위 과정이 매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에게 연구실을 고를 때는 연구 주제뿐 아니라 지도교수의 성향과 지도 방식, 그리고 본인과의 궁합을 가장 먼저 고려하라고 조언합니다.

예전에는 미국의 연구 환경이 훨씬 앞서 있었지만, 최근에는 한국도 연구비와 인프라 측면에서 크게 발전했다고 느낍니다. 한국은 GDP 대비 연구 투자 수준이 높고, 과거에 비해 연구 환경이 매우 좋아져 해외 유학이 필수적이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교수가 되려면 외국에서 박사나 포닥 경험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충분한 연구 성과를 내면 교수로 임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모두,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가 주요한 연구비 원천입니다. 다만 미국은 개인 재단이나 단체에서 주는 연구비가 좀 더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 방향에 있어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트렌디한 주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한 혁신과 중요한 발견은 호기심 기반의 오리지널한 연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영어 발표에서 영어가 유창하면 좋은 발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쓴다고 해서 발표가 곧잘 이해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어 발표도 유창함보다 중요한 것은 발표의 목적, 즉 청중이 내용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영어의 유창함은 우리가 뛰어넘기 어려운 한계일 수 있지만, 그것은 발표의 본질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논리적이고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슬라이드를 통해 청중이 쉽게 따라가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를 위해 평소에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읽으며 훈련해야 하고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이가 발표할 때도 청중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의 유창함이 아니라 메시지의 명확성과 전달력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가 주는 어려움과 장벽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성인이 되어 미국 같은 영어권의 나라에 유학하는 경우, 특히 대학원 유학을 하는 경우 시간이 지나도 영어는 생각만큼 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초중고, 대학까지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지만 실제 미국에 가면 서바이벌 영어를 넘어서지 못하는 큰 이유는 영어가 우리말과 근본적으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유학생의 경우 ‘내가 영어권의 나라에 사니 시간이 지나면 좀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한국인에게 영어는 어디에 있든지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늘지 않습니다. 영어는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야 조금씩 향상됩니다.

김재연 교수가 현재 재직 중인 인디애나대 의대(IUSM)의 실험실

연구는 본질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고,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과정은 실패와 지연의 연속이기 때문에 번아웃이 오기 쉽습니다. 연구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으면 좌절하기도 하고, 10년을 해도 눈에 띄는 결과가 없을 때 지치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어떤 이는 여행을 가기도 하고, 요가나 산책, 음악 감상 같은 휴식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독서와 또 조깅을 통해 몸과 마음과 감정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잘 지탱할 수 있습니다. 멘탈이 강하다고 과신하기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육체적·정신적·감정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번아웃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수의사라는 배경이 아무래도 임상을 배운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관점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보통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포나 분자 수준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동물이라는 개체에서 생각하다 보니 좀 더 임상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작은 단위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큰 문제에서 출발해서 그걸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점이 강점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연구를 통해 환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많이 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난소암과 유방암 연구에서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 것처럼, 과학적 발견이 임상적 치료 전략으로 이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들에게 수술 대신 약물적인 예방법을 마련하는 게 제 바람 중 하나입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구 성과를 통해 과학적 기여를 하고, 그걸 널리 전파해서 환자들의 삶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에스트로젠이 유방암을 일으킨다는 두려움에 대한 인식을 바꿔서 에스트로젠이 특히 갱년기 여성들의 건강과 웰빙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부분 수의대에 들어올 때는 병원 개원을 꿈꾸잖아요. 근데 사실 졸업하고 면허를 따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개원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젊을 때는 하고 싶었던 일들, 새로운 경험을 좀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결국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잠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느냐를 좌우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이 젊을 때 도전하면서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 가능성을 더 크게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젊을 때는 모험적인 도전을 해보는 게,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남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어떤 새로운 지식이나 현상을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로 중요한 발견일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던 걸 내가 알게 됐다’라는 그 느낌이 있거든요. 그게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올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연구자로서 그런 순간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데 영향을 준 책을 떠올려 보면 몇 권이 생각나요. 먼저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이 있는데, 원제는 『Thinking, Fast and Slow』예요. 저자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라는 심리학자인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분이죠. 우리가 생각할 때는 늘 논리적으로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편견에 휘둘리는지를 잘 설명한 책이에요. 과학이란 게 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줬던 좋은 책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라는 책이에요. 원제는 『The Emperor of All Maladies』인데, 저자는 싯다르타 무케르지(Siddhartha Mukherjee)라는 의사이자 과학자예요. 이 책은 미국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책으로, 암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암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이 연구를 할 때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줬어요. 그래서 제 연구 인생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재연 교수는 현재 인디애나대 의대(IUSM) Department of Biochemistry, Molecular Biology and Pharmacology에 재직 중이다.

김재연 교수의 길은 한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호기심과 끈기의 축적이었습니다. 평범한 수의대생으로 출발해 세계적인 연구자가 되기까지,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난소암과 유방암 연구에서 기존의 통념을 바꾼 성과는 그 여정의 결실이자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후배들에게 전합니다.

“젊을 때는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경험이야말로 잠재력을 발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김민규 기자 mingyu040102@naver.com

세계 최초 반려견 흑색종 백신 온셉 주, 국내 출시 확정

세계 최초의 반려견 흑색종 백신인 온셉 주(Oncept™)가 곧 국내에 출시된다. 2010년 온셉 주가 미국에서 처음 승인받은 지 15년 만이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은 “국내 인허가 절차를 마무리하고 온셉 주를 내년 중으로 우리나라에 정식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온셉은 개 전이성 구강 흑색종(Canine Oral Melanoma) 치료에 사용되는 DNA 기반 치료용 백신이다. 현재까지 동물 암 치료제 중 유일하게 미국 농무부(USDA) 승인을 받은 혁신적인 항암 면역치료제로 평가받는다. 2기~3기 구강 흑색종 병변에 대한 보조 치료용으로 허가되어 있다.

온셉은 사람의 티로시나제(tyrosinase) 유전자를 삽입한 플라스미드 DNA 백신이다. 멜라닌 생성에 관여하는 티로시나제 효소를 표적으로 삼아, 개의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온셉은 그동안 국내 수의사들로부터 정식 수입 요청이 많았던 대표적인 의약품이다. 수술, 항암치료(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와 병행했을 때 환자의 생존 기간을 유의미하게 연장하고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지만, 국내에 정식 유통되지 않아 흑색종 환자 치료에 제한이 있었다.

정부가 지난 2023년 미허가 동물용의약품 수요 조사를 했을 때 팔라디아(Palladia), 소렌시아(Solensia), 리브렐라(Librela) 등과 함께 조사 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동안 온셉이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았던 이유로는 ‘작은 시장’이 꼽힌다. 국내 동물의료 및 수의종양학 시장이 선진국 대비 크게 작기 때문이다.

실제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도 온셉의 국내 정 출시에 따른 비용을 고려했을 때 적자가 예상되지만, 국내 반려견 암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출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동물병원협회(KAHA)의 역할도 컸다.

한국동물병원협회가 ‘반려동물 흑색종 치료 백신 Oncept 국내 출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는데, 이러한 요청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동물병원협회는 “흑색종은 전이가 빠르고 예후가 불량한 악성종양으로, 보호자와 환자 모두에게 매우 큰 부담을 주는 질환이다. 이에 따라, 온셉 주(Oncept)의 국내 도입은 시급히 필요한 임상적 과제”라고 전했다.

이어 “관련 규제기관과의 협의, 시장 수요 조사, 학술 세미나 및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온셉 주의 한국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동물병원협회는 “온셉의 국내 공식 출시로 수의종양학 진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반려동물 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한 단계 도약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한국동물병원협회(KAHA)는 병원경영혁신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내 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의 정식 출시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온셉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전용 조혈촉진제 Varenzin™-CA1, 반려견 식욕촉진 및 체중감소 개선 치료제 Entyce®, 림프종 치료제 Larvedia®, Mirtazapine 성분의 국소 크림 제제 Mirataz® 등의 국내 출시를 공식 요청했다.

허찬 KAHA 병원경영혁신위원장은 “온셉 주의 국내 공식 출시 결정을 환영하고, KAHA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신 베링거인겔하임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국내 반려동물의 복지 증진을 위해 국내 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이 정식 출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의대생은 커리큘럼 표준화, 전문성 강화 학제 개편 원한다

국내 수의과대학 학생들은 교육 커리큘럼 표준화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제 개편에도 관심이 높았는데 마지막 학년의 심화 과정, 외부 기관에서의 로테이션 도입 등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편에 크게 동의했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 회장 이은찬)가 베트윈과 함께 실시한 ‘수의학 교육 커리큘럼 및 학제 개편’ 설문조사 결과를 24일(일) 발표했다.

4월 14일부터 5월 14일까지 진행된 이번 온라인 설문에는 전국 10개 수의과대학에서 예1~본4에 걸쳐 수의대생 171명이 참여했다.

이번 조사는 개정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예2+본4로 고정됐던 수의과대학 학제에 자율이 부과됨에 따라, 이에 대한 학생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미 전북대와 충북대가 올해 신입생부터 학제를 예1+본5로 개편한 바 있다.

설문 결과 학생들은 수의대 교육과정의 체계적 개선과 현장 중심 실습 확대에 대해 강한 요구와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학생들은 ‘모든 수의과대학의 교육 커리큘럼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통일되어야 한다’는 문항에 8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매우 긍정적+긍정적).

수대협은 “이는 대학별 교육 내용과 실습 방식의 편차를 줄이고, 수의사로서의 기본 역량을 공통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라고 지목했다.

학생들은 교육 커리큘럼 통일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이 수의사로서의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준비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충분히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46%에 불과했다.

학제 개편에 대해서는 73% 이상이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선호하는 학제는 예1+본5로 50%의 응답률을 보였다. 예1.5+본4.5(19%), 통합 6년제(17%), 현행 유지(10%) 순으로 이어졌다.

학제 개편을 해외 수의학교육 인증 획득의 동력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90%가 찬성했다. 충북대 수의대가 올해 예1+본5 학제를 도입하면서 유럽수의학교육인증(EAEVE) 추진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수대협은 “학제 개편이 단순한 연한 조정이 아니라 국제 기준과 연계된 교육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예1+본5를 도입한 충북대와 전북대 모두 학제 개편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임상교육 강화를 꼽았다. 예과 한 학년을 줄인 시간으로 본과 이론 교육을 내려 보내고, 덕분에 확보한 시간에는 로테이션 중심의 임상실습과 선택교육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기초수의학·예방수의학 수강 시기를 앞당겨 본3부터 로테이션 등 실무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91%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마지막 학년인 본과 4학년에 진로별 ‘선택 트랙’ 심화 과정을 운영하는 방안에는 96%가 찬성했다.

앞당겨진 로테이션으로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고, 희망하는 진로가 구체화된 학생들이 마지막 학년에는 맞춤형 심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기관(동물병원, 국가기관, 기업 등)과 자매결연을 맺어 학기 중 로테이션 실습을 하는 방안에도 91%가 찬성했다. 타 대학 동물병원에서의 로테이션도 비슷한 지지를 받았다.

그만큼 학생들은 자기 대학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경험을 하길 원하는 셈이다.

자유 의견에서는 예과 과정 단축, 임상 교육 강화, 교수진 확충, 설문 결과 공개 및 수의과대학의 신속한 반영 등 다양한 개선 요구가 제시되었다.

특히 학제 및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학생 참여형 공청회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수대협 유채현 교육정책국장은 “이번 설문은 학교 간 교육 편차가 존재하는 현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체감한 문제를 바탕으로 제시한 교육 개편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교육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이 수의학 교육과정 발전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근필 칼럼] 지쳐갔던 마음, 번아웃과 공감 피로

원장으로 제 병원을 운영하던 시절, 하루가 끝날 때면 몸보다 마음이 더 무겁게 내려앉곤 했습니다. 단순히 바쁜 일정에 지친 게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고통, 보호자의 불안과 분노를 함께 떠안으면서 제 안의 에너지가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좋은 수의사란 환자와 보호자에게 최대한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아픈 동물이 오면 제 일처럼 마음을 졸였고, 보호자가 불안해하면 제가 대신 짊어지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 신호가 찾아왔습니다. 늘 웃으며 환자를 맞던 얼굴이 굳어 있었고,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졌습니다. 어떤 때는 환자를 대하면서도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무감각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병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게 바로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였다는 것을요. 돌봄 직군에서 흔히 나타난다고 하지만, 저에겐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정의를 읽어보는 순간 곧장 제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환자의 아픔을 지나치게 내 일처럼 받아들이고, 보호자의 감정에 깊이 공감할수록 제 마음은 더 쉽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스며들었습니다. 오늘은 단순히 피곤한 것 같아 넘겼지만, 그 피로는 내일도 이어졌고, 모레도 똑같이 반복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고, 전화벨 소리조차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이 시작되면서 저는 이미 번아웃의 초입에 들어서 있었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좋은 수의사’가 되고자 했던 제 열정이 오히려 저를 더 빨리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감이 깊을수록 피로도 깊어지고, 책임감이 클수록 탈진도 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수의사는 본질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감정에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 시절 저는 무작정 버티려 했습니다. 하루라도 진료를 빼먹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퇴근 후에도 집까지 환자 걱정을 데리고 와 일상이 무너져 버렸죠. 이 방식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은 이미 닳아버려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병원을 정리하면서 저는 비로소 제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끝내 돌보지 못했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제 자신이었습니다.

*   *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금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혹시 요즘 병원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진료가 끝난 뒤에도 머리가 멍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게으름이나 단순 피곤함이 아니라 번아웃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마음을 많이 썼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은 대형 병원에서 진료수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번아웃은 분명 힘든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저를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 마음을 더 빨리 살피고 알아차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다시 수의사로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번아웃과 공감 피로는 아마도 우리 직업이 가진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무게를 홀로 감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이 힘들면 가족이나 친구, 지인, 동료들과 함께 나누세요. 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상황이 심각하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고요.

끝으로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환자를 돌보고 보호자를 챙기고 다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돌봄이 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건강하고 바로 서야 진료가 있고 병원 운영이 있고 그 외의 것들이 있습니다. 나부터 챙기고 돌보세요. 항상 내가 먼저입니다. 나는 지금 괜찮은지, 이대로 계속 가도 좋은지 수시로 점검하세요. 그래야 우리는 오래도록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의사결정 피로와 자기 의심을 조명하는 2부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일본으로 반려동물 데려갈 때 필요한 광견병 항체 검사, 국내에서도 가능해졌다

일본에 개·고양이를 데려가기 위해 필요한 광견병 항체 검사가 국내에서도 가능해졌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서울지역본부(전염병검사과)가 일본 농림수산성으로부터 광견병 항체 검사기관으로 지정 받았다. 8월 21일(목)부터 효력이 발휘됐다.

광견병 예방접종과 그에 따른 항체가는 개·고양이를 외국으로 데려갈 때 검역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요 항목 중 하나다. 백신 접종 후 일정 수준 이상의 항체가 형성됐는지를 확인해 수출 검역증에 해당 내용을 적시해야 한다.

특히 일본으로 반려동물을 데려가려면 일본 농림수산성이 지정한 검사 기관에서 항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기존에는 혈액 샘플을 일본의 검사기관으로 보내야 했다.

그로 인해 검역증 발급, 국제 우편 운송 및 항체 검사 등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이 소요되고, 검사 기간도 대략 4주 정도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 검역본부 서울지역본부가 검사기관으로 지정되면서 굳이 일본에 보낼 필요 없이 모든 절차를 국내에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검역본부 실험실을 이용할 경우 비용도 크게 감소하고, 검사기간은 대략 2주 정도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대일본 반려동물 혈액샘플 수출검역은 2022년 196건에서 2024년 408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농식품부는 증가 추세를 감안해 지난해 4월 일본 농림수산성에 검사기관 지정을 신청했다. 일본측의 신속한 평가와 지정을 위해 요구 자료를 즉시 제공하고, 고위급 면담 등에서 지속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 정혜련 국제협력관은 “광견병 항체 검사를 의뢰하기 위해 일본으로 혈액 샘플을 보내는 건수가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한 것을 고려할 때, 금번 검사기관 지정으로 반려인들의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케팅부터 학술·BD·PV, 신약개발까지..‘제약회사를 알려 Dream’

비임상 진로를 꿈꾸는 수의사와 수의대생을 위한 ‘비임상 수의사 진로 세미나’가 4회째를 맞이했다.

8월 23일(토) 동탄 우정바이오신약클러스터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는 ‘제약회사를 알려 Dream’을 주제로 개최됐다. 인체용의약품 업계에서 일하는 수의사 6명이 연자로 나서 신약개발부터 학술, BD, PV,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제약회사 업무 전반을 소개했다.

첫 연자로 나선 HK이노엔 정운하 학술팀장(사진)은 제약회사 내의 학술팀 주요 업무를 소개했다.

충남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약리독성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정 팀장은 동물병원 임상과 제약업계를 오갔다. 일동제약을 거쳐 현재의 HK이노엔에 이르기까지 학술업무를 주로 맡았다.

정 팀장은 “학술팀은 의약학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회사 내·외부의 이해 당사자들에게 학술정보와 교육을 제공한다”며 “궁극적으로 의약품이 올바르고 정확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학술팀의 업무를 크게 ▲의학정보제공(medical information service) ▲학술자료 제작 ▲학회 및 심포지엄 지원 ▲내부 교육 ▲판촉자료 검토 등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의약품과 관련한 논문·가이드라인·학회 연구 등이 계속 쏟아지는 만큼 호기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하면서도, 주변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팀장은 “수의사로서 의약품 자체뿐만 아니라 질환의 전반적인 진단·치료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면서도 “수의사라는 전문성은 인정받지만, 겸손함과 협업 자세가 뒷받침될 때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정운하 팀장과 일동제약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던 심유정 수의사(사진)는 현재 의약품 품질보증·약물감시 기업인 QVIS에서 약물감시(Pharmacovigilance, PV)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건국대 수의대 졸업 직후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를 경험한 심유정 수의사는 일동제약 학술팀과 건국대 IACUC, 대웅펫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심유정 수의사는 PV를 ‘의약품의 부작용 및 안전성 정보를 지속적으로 탐색·평가·보고하는 활동’으로 소개했다. 의약품이 허가 받기 전에 대규모 임상을 거친다 해도 제한된 조건 내에서 많아야 수천명, 길어야 2~3년을 탐색하는 만큼 출시 이후에도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심유정 수의사는 “글로벌적으로 PV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우리나라도 글로벌 수준의 규제조화에 나서면서 (PV 관련) 보고의무가 굉장히 강화됐다”며 “의약품이 살아있는 한 PV는 계속되고, 관련 규제도 점점 강화되는 만큼 PV 인력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무적으로는 ▲영어 문서 검토와 보고 ▲국내외 규제 준수 ▲기한 엄수의 중요성 등을 특성으로 꼽았다. “지원 부서 성격이 강해 눈에 띄는 성과는 적지만, 제약사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제약회사가 아닌 CRO의 경우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고, PV 업무의 경우 재택근무 등 유연한 업무 환경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세 번째 연자로 나선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의 정다슬 수의사(사진)는 Business Development(BD, 사업개발) 직무를 소개했다.

정다슬 수의사는 안국약품, 한독, 한국먼디파마를 거쳐 LG화학에서 전략 제휴 및 라이센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 수의사는 BD 직무의 성격을 “새로운 기술·제품을 도입하고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회사의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로 정의했다. 영업, 마케팅과 함께 제약사의 매출과 직결되는 분야 중 하나로서 부각될 수 있는 직역이라는 점도 지목했다.

BD 업무는 자사 의약품 포트폴리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거나 공동 프로모션, 투자 및 기술 협력 등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기획·협상한다.

정다슬 수의사는 “BD는 매출로 연결되는 계약 성사 여부가 성과를 좌우하기 때문에 긴 호흡과 논리적 사고, 도전적인 성향이 필요하다면서 “수의사로서 의료·생명과학적 배경이 직접적으로 요구되지는 않지만, 빠르게 배우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능력이 큰 장점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MSD 정동원 상무는 16년간 마케팅 분야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수의대 졸업 직후 MBA를 취득한 정동원 수의사는 컨설팅업체와 소비재 회사를 거쳐 제약업계로 진출했다.

진통소염제인 ‘스트렙실’의 국내 출시, HPV 백신 ‘가다실9’의 매출 반등을 이끈 경험을 소개하며 마케팅의 본질을 설명했다.

가다실9을 성(性) 관련 백신이 아닌 ‘암 예방 백신’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전략이 마케팅적 성과를 얻은 사례를 전하면서 “마케팅은 단순히 광고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것, 그 전략적 조율이 바로 마케팅”이라고 지목했다.

정동원 상무는 “수의사라는 면허가 마케팅 분야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커머셜 분야는 야망과 목표 의식을 요구한다”며 도전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김대근 수의사(대웅제약 연구소 독성연구 파트)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수의사는 독성 연구와 동물실험 전문가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상국립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연구 경력을 시작한 김대근 수의사는 바이오톡스텍을 거쳐 대웅제약에서 독성연구를 맡았다. 독성평가뿐만 아니라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항당뇨제, 엑소좀 등 동물용의약품 개발을 총괄하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현지 수의과대학과 협력 하에 영장류 연구소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김대근 수의사는 “제약회사에서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일들”이라며 수의사가 신약개발의 긴 여정에서 독성 연구, 병리 평가 등에서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의사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업무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연구기획, 연구행정을 담당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며 동물용의약품 분야에서도 신약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는만큼 수의사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대근 수의사는 “생리·약리·병리를 모두 배우는 드문 전문가로서 사람 신약 개발과 동물용의약품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은 후배들이 이 길에 들어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연자로 나선 유한양행의 오세웅 부사장은 30여년간 제약 연구개발 분야를 걸어온 ‘연구형 수의사’다.

중외제약을 거쳐 유한양행에 터를 잡은 오세웅 부사장은 항암제·항염증제 연구에 주로 참여했다. 유한양행이 개발한 대표 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개발 스토리를 소개하며 수의사의 가능성을 지목했다.

오세웅 부사장은 “제약바이오 산업은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영역 중 중요한 분야”라며 “반려동물 시장의 30배에 달하는 보건의료산업인만큼 할 일도, 활약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동물을 바탕으로 공부했지만 생리·병리·약리를 모두 이해하는 수의사가 (의료인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없다”며 “수의사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사람의 제약바이오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세션에서는 비임상 분야를 선택했던 계기를 시작으로 현실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연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답하며, 후배 수의사들이 진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조언을 전했다.

제약업계에 오기전 동물병원 임상수의사로 일했던 정운하 팀장은 “임상이 싫거나 재미없지 않았다”면서도 “남은 인생이 2칸 진료실 안에서 끝나는데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나중에 경험하기는 위험할 것 같은 생각에 31살에 도전을 택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서의 중요 역량으로는 소통과 설득을 거듭 지목했다. 오세웅 부사장은 “결국 혼자 하는 일은 없다. PV와 같이 일부 독자적 성격의 업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팀으로서 일한다”며 “그만큼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동원 상무는 “같이 일할 사람이나,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내 기준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그러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러한 지가 명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비임상 분야 진출에서의 학위별 차이, 임상수의사에서 비임상 분야로 전환할 때 고려해야 할 연령·경력 문제, MBA의 효능감 등 구체적인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날 세미나에는 수의대생과 현업 수의사 각각 70여명씩 총 150여명이 참석했다. 세미나와 이어진 뒷풀이 모임을 통해 비임상 진로를 꿈꾸는 수의대생뿐만 아니라 현업 수의사들의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한국비임상시험연구회와 우정바이오, 바이오톡스텍, 차온, 네슬레코리아가 이번 세미나를 후원했다.

세미나 운영진인 GC녹십자 RED본부 김소라 수의사는 “한국비임상시험연구회에는 현업 비임상 수의사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면서 “매년 상·하반기 워크숍을 통해 제약바이오 연구 분야를 좀 더 깊게 파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비임상 효력, 독성시험을 수행하는 CRO기관인 바이오톡스텍, 차온 등 기관의 대표가 수의사 출신”이라며 “우정바이오도 올해 작고하신 故 천병년 회장님의 관심과 지지를 이어 지속적으로 수의사 모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혜수 기자 studyid08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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