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주 수의사
(사)한국보호동물의학연구원 대표
VIP동물의료센터 연구소장
한국에서 시작된 Shelter Medicine의 움직임
최근 동물보호시설의 보호동물 의료와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Shelter medicine이라는 새로운 수의학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이 분야는 단순히 구조·보호동물의 치료에 머무르지 않고, 동물보호시설과 지역사회 내 보호대상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체계적으로 개선하려는 수의학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Shelter medicine에서 무엇을 배우고, 보호동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글 명칭의 선택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이 학문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정체성과 철학으로 자리 잡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ASV 가이드라인의 한글판 출간
2025년 10월, Association of Shelter Veterinarians(ASV)의 『Guidelines for Standards of Care in Animal Shelters (2nd Edition, 2022)』이 한글로 번역·게시되었다(가이드라인 보러가기).
이번 번역은 필자(조윤주)가 대표로 있는 한국보호동물의학연구원(Korean Institute of Shelter Medicine)에서 주도하여 진행하였으며, ASV의 공식 승인과 함께 공개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보호동물의 전문적 관리와 복지 향상을 위한 기준이 보다 널리, 그리고 쉽게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ASV는 가이드라인 한글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The care of shelter animals requires a distinct expertise that differs from traditional clinical veterinary practice. Attention to animal behavior, medical needs, and population management make the difference between a good outcome and protracted animal suffering.”
보호시설의 동물 진료는 행동, 의학적 필요, 그리고 개체군 관리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요구되는 분야로, 이는 일반 임상수의학과 구별되는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ASV는 한국의 상황이 미국과 다르더라도 “모든 동물은 좋은 복지를 누릴 자격이 있다(every animal deserves good welfare)”는 철학은 보편적이며, 한국에서도 이 가이드라인이 지역적 상황에 맞게 적용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현재 공개된 번역본은 ‘초판’으로, 이후 전문가 및 현장 의견을 반영해 보완 개정할 예정이다.

Shelter Medicine 용어에 대한 고민
Shelter Medicine은 2014년 AVMA(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에서 ABVP(American Board of Veterinary Practitioners) 산하의 세부 전문분야로 공식 승인되었으며, ‘Shelter Medicine Practice’라는 명칭으로 인증이 부여된다.
하지만 실제 학문적 범위는 수의공중보건, 수의역학, 동물복지, 공공 진료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다.
한국 수의학의 세부 전공명은 보통 해부학적 구조나 진료 접근법에 따라 명명한다. 예를 들어 내과학, 외과학, 실험동물의학처럼 진료의 범위나 대상동물을 중심으로 한다. 이에 비해 Shelter medicine은 ‘시설(shelter)’이라는 공간을 중심 개념으로 하고 있어, 학문 명칭으로는 다소 예외적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Shelter medicine이라는 용어가 처음 명명될 때부터 어떤 의도를 담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에 대해 ASV Guidelines의 공동편집자이자 코넬대 수의과대학 교수인 Lena DeTar, DVM, DACVPM, DABVP-SMP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답변은 다음과 같다.
“The shelter medicine community in the US is also currently struggling with the term ‘shelter.’ Many of us work with community animals whose care aligns with shelter practice but who are not from shelters. In the beginning, shelters rarely did community outreach, but in the last 25 years, everything has changed. Personally, I prefer Shelter and Community Animal Medicine.… If in Korean, the term ‘protected’ incorporates animals more broadly cared for by the community, I think it’s a great way to broaden the understanding, scope and philosophy.”
DeTar 박사는 “현재 미국에서도 ‘shelter’라는 단어가 우리의 활동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며 “Shelter and Community Animal Medicine이라는 표현이 철학과 범위를 더 잘 반영한다”고 답했다.
또한 한글의 ‘보호(protected)’ 개념이 지역사회 내 보호대상 동물까지 포함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JSMCAH의 등장과 학문적 확장
이러한 변화는 학술 영역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2022년, ASV는 『Journal of Shelter Medicine and Community Animal Health (JSMCAH)』를 창간했다.
이는 보호소 및 지역사회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세계 최초의 학회지로, 학계와 실무의 경계를 넘는 개방된 연구를 지향한다.
JSMCAH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Shelter and community animal medicine의 발전을 도모하고, 임상가와 연구자 모두에게 핵심 자료를 제공한다. 진료, 개체군 관리, 저비용 진료, HQHVSN(high-quality, high-volume spay/neuter), 행동학, 수의공중보건 등 One Health–One Welfare 관점을 포괄한다.”
이는 Shelter medicine을 더 이상 ‘시설 내 진료’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사회 전체의 공공의 동물보건(Community Animal Health) 체계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글 명칭 제안 “보호동물의학”
한글에서 ‘보호(保護)’는 “위험이나 곤란이 미치지 않도록 잘 보살펴 돌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Shelter’나 ‘Facility of Protection’을 모두 내포하며, 지역사회가 보호해야 할 동물이라는 넓은 개념을 포괄할 수 있다.
이에 필자는 Shelter and Community Animal Medicine을 한글로 “보호동물의학”으로 명명하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명칭은 보호시설에 수용된 동물뿐 아니라 임시보호 동물, 길고양이, 피학대동물, 저소득층 반려동물 등 사회적 보호의 대상이 되는 모든 동물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름이 방향을 결정한다
Shelter medicine은 이제 단순한 ‘시설 진료’가 아니라, 공중보건과 지역사회 복지를 함께 다루는 통합 수의학 분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 분야를 제도화하고 교육 과정에 포함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철학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명칭의 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동물의학”이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가 동물을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동체가 책임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ASV 가이드라인이 강조하는 핵심 가치인 “Every animal deserves good welfare.”와도 일치한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보호동물의학이 학문, 임상, 정책, 지역사회 전반에 잘 정착하여 보호동물의 복지와 공공의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의 정서 함양에도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