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질병명·진료행위 표준코드 8,703개 청사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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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서강문 서울대 교수

동물 질병명과 진료행위에 대한 표준 코드 8,703개가 윤곽을 드러냈다.

대한수의사회로부터 ‘진료 정보 표준화’ 연구용역을 수주한 서울대 서강문 교수팀은 26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공청회를 열고 연구 경과를 소개했다.

 

질병명 3,774개·진료행위 4,929종 표준 명칭·코드 마련

이번 연구는 동물 질병과 진료행위의 명칭을 정하고, 고유한 코드번호를 부여했다. 이날 발표된 초안에는 질병명 3,774개, 진료행위 4,929종에 대한 표준코드가 포함됐다.

연구팀은 사람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건강보험행위급여·비급여목록표를 기반으로 표준코드를 마련했다. 수의·인의에서 공통되는 질병이나 진료행위 코드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수의 분야 고유의 질병·행위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표준코드 초안은 내과, 외과, 산과, 영상의학과, 임상병리과 등 과목별 교수협의회의 자문을 받았다. 영국왕립수의과대학이 개발한 VeNome Codes 등 해외 사례도 참고했다.

이러한 코드체계는 각 동물병원별로, 각 환자별로 흩어져 있는 진료기록을 한데 모아 통계로 만드는데 필수적인 기반으로 꼽힌다.

수십만 건, 수백만 건에 이르는 진료기록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려면 이들 기록을 같은 코드체계 하에서 만드는 것이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가령 암컷 중성화는 일선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중성화수술, 암컷중성화수술, 난소자궁절제술, OHE, 암중 등 다양한 용어와 약칭으로 기록된다. 전국 동물병원에서 연간 몇 건의 암컷 중성화가 실시되는지 통계적으로 파악하려면 이들 기록을 하나의 코드로 모아야 한다.

표준코드 초안은 이를 ‘중성화수술-난소자궁절제술(코드명 R0144)’로 통일했다. 다만 (예방), (예방)-복강경, (질환) 등 중성화수술을 실시한 목적과 수단에 따라 세분화했다.

이 같은 표준코드를 동물병원의 3대 전자차트 프로그램에 모두 탑재하면, 통계를 만들어낼 기초 준비를 갖춘 셈이 된다.

사람에서 가장 많은 수술은 백내장, 반려동물은?

사람에서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암, 반려동물은?

‘표준코드 통한 진료실태 통계, 적정 인력 양성·펫보험 고도화 기반될 것’

사람에서 가장 많이 받는 수술은 백내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한 2020년 주요 수술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백내장 수술이 70만2천여건으로 가장 많았다.

10대는 충수절제술, 20~30대는 제왕절개수술 등 연령별로도 어떤 수술이 가장 흔한 지 알 수 있다.

반면 반려동물에서 가장 흔한 수술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중성화수술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정확히 몇 건이 이뤄지는지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사망 원인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람의 사망 원인은 암, 심장질환, 폐렴 순으로 나타났다(2020년 기준). 이 셋이 전체 사인의 45%를 차지한다. 인구 10만명당 160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반면, 반려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의 발생빈도는 아무도 모른다.

이날 관계자들은 표준코드 적용과 그에 따른 통계 생산이 동물진료업 발전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강문 교수는 “각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행위에 표준화된 코드를 적용하면 통계로 만들어낼 수 있다”며 “진료정보를 공유하는 기반을 일원화하고, 특정 질병에 대한 통계에 기반해 치료제나 의료기기 개발을 본격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의영상의학교수협의회장 최지혜 서울대 교수는 “국내 동물병원에 CT·MRI가 얼마나 도입됐고, CT·MRI 검사가 연간 얼마나 수행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통계가 있어야 영상의학 전문인력도 적절히 양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펫보험도 수혜자가 된다. 손해보험협회 김도균 팀장은 “국내 펫보험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며 “일선에서는 다양한 펫보험 상품을 원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통계가 없어 보험상품도 개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표준코드 적용이 보험업계에 혁신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펫보험이 고도화되면 소비자 부담을 줄이면서 동물진료업이 발전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질적 활용 이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실제로 표준코드 개발이 실질적인 통계 생산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그러려면 표준코드가 동물병원이 사용하는 차트 프로그램에 적용되고, 임상수의사가 코드를 활용해 진료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을 한데 모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엔 심훈섭 본부장은 “질병명과 진료행위를 일관되게 기록할 체계가 마련된다면 동물진료업 발전에 좋은 토대가 될 것”이라면서도 “일선 수의사가 전자차트 안에서 (표준코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차트 프로그램에 표준코드를 도입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익숙치 않은 수의사들이 겪을 혼란에 대응하는 것은 차트 회사 서비스팀의 몫이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정언승 동물병원협회 사무국장도 “표준코드가 필요하긴 하지만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의사들의 반감도 고비다. 진료 표준화 관련 논의가 동물병원 진료비 규제가 입법되는 과정에서 함께 거론됐다 보니, 일선 동물병원에 불이익을 주는 것 같은 반감이 없지 않다.

최지혜 교수는 “일선에서는 수의사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진료비 일원화로 이어질까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진료 표준화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정부가 명확히 밝히고 홍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표준코드를 활용해 진료실태를 파악해봤자 쓸 데가 없다는 회의론도 제기됐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표준코드는) 학술적인 접근 수준으로 보고 있다. 활용도 굉장히 제한적일 것”이라며 “현재 농식품부는 반려동물 질병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 동물의료를 담당할 조직도 없다”고 꼬집었다.

서강문 교수팀은 오는 6월까지 표준코드 개발연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동물 질병명·진료행위 표준코드 8,703개 청사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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