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예비 수의사 1,600명이 국회 앞에 집결했다

수업까지 뒤로 한 채 수의사법 개정안 재검토 촉구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보다 선결과제 해결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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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면허도, 동물병원도, 수입도 없는 수의대생들이 국회 앞에 섰다. 향후 동물의료 현장을 책임질 예비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제도적 위험을 지적하면서다.

9월 2일(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동물의료 말살정책 저지 투쟁 선포식’에는 전국 10개 수의과대학 학생들 1,611명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구호를 선창하고 자유발언에 나서며 수의사법 개정안의 재검토와 함께 동물용의약품 유통체계 및 자가진료 문제의 선결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수의대생은 학교별로 ▲강원대학교 51명 ▲건국대학교 220명 ▲경북대학교 213명 ▲경상국립대학교 225명 ▲서울대학교 204명 ▲전남대학교 41명 ▲전북대학교 217명 ▲제주대학교 70명 ▲충남대학교 145명 ▲충북대학교 225명으로 집계됐다.

김석 경상국립대 수의대 학장, 조제열 서울대 수의대 학장 등 수의대 교수진도 참여했다.

9월 개강 직후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각 대학에서 상당수 학생들이 수업을 결석하고 집회에 참여했다. 특히 제주대학교 학생 70명은 제주에서 국회의사당까지 500km가 넘는 거리를 비행기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향후 동물의료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우려에 초점을 맞췄다. 진료기록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용의약품의 유통과 자가진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진료정보 공개를 확대한다면 동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에서도 거리가 멀다.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로 동물병원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현직 수의사와 달리 수의대생들에게는 아직 수의사 면허도, 운영하는 동물병원의 영업권도, 수입도 없다.

발언하는 제주대 수의대 서경훈 학생회장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 신재연 회장은 전국 10개 수의과대학 3,300여 명의 수의학도를 대표해 자유발언에 나섰다.

건국대 수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신재연 회장은 현재 국내 동물용의약품 유통구조의 문제를 먼저 지적했다.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됐지만 전체 동물용의약품의 약 94%가 수의사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예외조항(약사법 제85조 제7항)이 대표적이다.

신 회장은 이러한 구조적 허점을 그대로 둔 채 진료기록을 공개할 경우 진단명과 처방 정보가 자가진료와 약물 오남용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기형적 제도가 해소되지 않은 채 진료기록이 무방비하게 공개되면, 무분별한 약물 투약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자가투약은 농장동물에서 항생제 오남용과 내성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신 회장은 “국민의 식탁과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가장 멀리서 집회 현장을 찾은 제주대 수의대 서경훈 학생회장도 자유발언을 통해 학생들의 주장을 전했다. 보호자의 알 권리나 진료의 투명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는 ‘순서’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자가진료 문제와 잘못된 의약품 유통구조를 먼저 개선하고, 진료정보가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공개 범위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발언 말미에 단상에 오른 강원대 수의대 채성민 학생회장은 ‘미래 동물의료를 짊어질 당사자로서의 책임감’을 역설했다.

수대협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채성민 회장은 “우리가 아직 수의사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왔겠느냐”고 반문하며 “지금 만들어지는 정책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고 평생 책임져야 할 대한민국 동물의료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자가진료, 수의사 처방 없는 약품 구매라는 제도적 허점을 그대로 둔 채 진단·처방 정보부터 공개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약물 오남용과 자가진료의 위험은 대체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단순히 선배 수의사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책임 있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과 앞으로 치료하게 될 동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끝으로 “정책의 속도보다 안전을, 규제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자가진료와 유통·처방 체계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함께 해결해 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강력히 요구했다.

발언하는 수대협 신재연 회장

수의대생들은 이날 단순히 집회에 참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직접 구호를 선창하고, 학생 대표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수의학적·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킬 동물병원도, 수입도, 면허도 없는 학생들은 앞으로 수의사가 되었을 때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동물의 생명과 동물의료체계에 관한 문제라는 데 공감했다.

수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진료기록을 단순한 행정자료로 보지 않는다. 동물의 병력과 진단, 치료 과정, 처방에 이르는 수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축적된 기록이다. 이 정보의 공개 여부보다 실제 동물의료체계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안전장치와 제도적 기반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날 투쟁 선포식을 시작으로 수의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알리고, 자가진료와 동물용의약품 유통체계 개선 등 선결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앞에 선 수대협

손하나 기자 gksk8734@naver.com

김주영 기자 laminay@naver.com

최제현 기자 Choijehyeon01@gmail.com

전국 예비 수의사 1,600명이 국회 앞에 집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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