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물병원 설치법 초안 윤곽 ‘진료·교육 인프라 예산 지원 근거 만든다’
독립 법인으로 분리, 진료·전문의 양성·방역 지원 역할..이르면 4월 제정안 발의 목표
한국수의임상교육협의회(회장 이기창)가 2월 24일(화) 서울대 수의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대학동물병원을 중심으로 한 임상교육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임시총회에서는 한국수의과대학협회(한수협) TF팀이 준비 중인 가칭 대학동물병원설치법 제정 초안이 공개됐다. 현재 대학 본부의 부속수입기관인 대학동물병원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고, 수의사·전문의 양성과 공공적인 동물 진료를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형태다.
이는 사람의학의 대학병원, 대학치과병원과 비슷한 방식이다. 법안의 골격도 ‘국립대학병원 설치법’에서 따왔다.

학생을 수의사로, 수의사를 전문의로 잘 양성하려면..
케이스도 교육자도 많아야
대학동물병원이 핵심 창구
예산 지원, 간접비 절감 호소 잇따라
이날 발제에 나선 조제열 서울대 수의대 학장은 “수의과대학은 실무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길러내는 ‘Professional School’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이과계통 전공 대학의 단순 실습에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학생들에게 임상경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그 핵심 창구는 대학동물병원이다. 임상술기를 익히기 위한 시뮬레이션 실습도 필요하지만, 결국 실제 환자를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수의학계가 대학동물병원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법제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동물병원을 통해 학생을 수의사로, 수의사를 전문의로 잘 양성하려면 그만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임상 케이스도 많고, 교육자도 많아야 한다.
하지만 국내 수의과대학과 대학동물병원의 환경은 열악하다. 미국 수의과대학의 교원이 평균 160명인데 반해 한국은 32명에 그친다.
소규모 단과대학인 수의과대학에서 전임교원을 늘리기는 어렵다. 대학동물병원이 진료 규모를 키우고, 교육병원으로서 교육할 여유를 확보하려면 임상교수나 전임의(clinical fellow)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수의대 교원이 아닌 대학동물병원 임상교원을 별도로 둔 곳은 국립대 수의대 동물병원 9개소 중 3개소(서울대·충북대·경북대)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도합 7명에 그친다. 서울대를 제외하면 연매출이 20억원 안팎에 그치는데다, 본부에 내야 할 간접비 부담도 크다는 점도 한계다.
전국대학동물병원장협의회장 연성찬 교수는 국내 대학동물병원의 간접비 부담이 2~35%로 편차가 크다는 점을 지목했다. 특히 대학회계에 속한 병원의 경우 20~35%의 높은 부담을 진다.
연 교수는 “대학동물병원이 담당해야 할 교육 역할을 감안하면 보조를 해줘도 모자랄 판인데, 간접비 비율을 조정하려 하면 본부는 극도의 거부감을 표출한다”며 “대학동물병원의 간접비는 표준화를 넘어 면제해야 한다. 독립법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제열 학장은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동물병원은 간접비 부담은커녕 주 정부의 예산 보조를 받는다.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병원이기 때문”이라며 “열악한 현재의 국내 대학동물병원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국고 지원 필요하다. 임상교수, 전임의의 인건비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근거법령으로서 ‘대학동물병원 설치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상국립대 동물병원장 이성민 교수는 “수의사 양성 측면에서도 대학동물병원이 외부 대형병원에 뒤쳐지지 않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면서 예산 지원 필요성을 호소했다.
경상국립대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부산 동물병원을 건립하고 있지만, 건물만 생길 뿐 기자재 등 운영 관련 예산 지원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성민 교수는 “동물병원을 신축하고 있는 경북대, 충남대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며 “개별 대학과 병원에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학동물병원 역할은 동물 진료, 학부생·전공의 교육, 방역·진단 지원
국가·지자체 예산 지원 근거 마련
한수협 TF팀은 지난해 12월 열린 수의학교육 국회토론회 후속 작업으로 대학동물병원 설치법 제정을 위한 초안을 준비해왔다. 법제연구원 검토를 거친 초안을 이날 공개했다.
법안은 대학동물병원의 설립·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 대학동물병원은 독립 법인으로 두고, 해당 대학 총장이 법인 이사장을 맡는다. 대학동물병원장과 수의과대학장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한다.
대학동물병원의 역할은 ▲동물 진료 ▲수의학 교육을 위한 임상실습 및 교육 지원 ▲전공의 수련 및 전문수의사 양성 ▲가축전염병예방법 등 관계 법령에 따른 방역·진단 지원 등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대학동물병원 설립, 교육·연구·공공기능 수행에 필요한 시설·장비 구축 및 운영, 진료·교육 인력 인건비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기존 대학동물병원이 법인화될 수 있도록 관련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양여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했다.

진료하는 교수에 대한 제도적 정비 필요
美대학동물병원의 Primary Care Center처럼..1차 진료 경험 쌓아야
제도 정비 필요성도 지목됐다.
정만복 전남대 교수는 “해외 대학병원은 꼭 최첨단 장비가 없어도 우수한 수의사를 배출한다. 그 바탕에는 전문의 중심 교육이 있다”면서 “꼭 PhD가 아니라도 경력을 갖춘 전문의가 교수로서 진료·교육할 수 있다면 임상교육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 제도를 확립하고, 수의과대학의 교원 자격을 유연화하면서 미국 등 해외처럼 인건비를 지원해준다면 수의사·전문의 양성의 중심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상섭 건국대 교수는 “현재 임상과목 교원은 교육, 진료, 병원 및 학교의 행정 업무까지 떠안는다”며 “해외처럼 교수로 임용될 때부터 교육·연구·진료·행정의 비율을 책정하고, 진료실적 관련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 대신 진료 실적을 인정해주거나, 대학동물병원의 진료시간과 수의대 교육 시간을 조절하는 등의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전남대 동물병원장 이봉주 교수는 “임상교수진은 물론 대학원생에게도 정당한 보상이 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생들에게는 대학동물병원에 의뢰되는 고난도 진료보다 1차 진료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거듭됐다.
정만복 교수는 “수의대생들의 머리는 최첨단 기술로 차있지만, 신체검사를 시켜보면 잘 못한다. 임상교육 자체가 와전되어 있다”며 “병력청취, 신체검사를 거쳐 감별진단목록을 수립하는 기본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대학동물병원법 제정에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충남대 동물병원장 김대현 교수는 “1차 진료 기능이 학생들을 위해 필요하지만,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함께 돌아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별도 구축 필요성을 언급했다.
미국 대학동물병원이 고난도 의뢰진료 기능과 별개로 학생들이 1차 진료를 직접 수행하는 Primary Care Center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본지 2025년 12월 8일자 ‘코넬대 동물병원의 ‘Spectrum of Care’ 동물·보호자·수의사의 복지 높이며 임상교육 강화로’ 참고).
대학동물병원법안 이르면 4월 발의 목표
대학별 환경 편차 우려도
나기정 충북대 교수는 “개인적으로 대학동물병원 법인화에 찬성한다. 1년여전 충북대 동물병원의 법인화를 고민하면서 가능하다는 판단도 들었다”면서도 함께 고려해야 할 우려점을 제시했다.
규모가 작거나 본부 구성에 따라 불안정성이 있긴 하지만, 현재 체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예산 지원이 있는 반면 법인으로 독립할 경우 농식품부나 교육부로부터 별도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많이 필요해질 것이란 얘기다.
서강문 서울대 교수는 대학동물병원이 연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인화할 경우 병원 유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교육환경이나 병원 개선 등 대학동물병원이 내는 간접비에 상응하는 지원을 요구하는 편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제열 학장은 “여건도 중요하지만 의지가 더 중요하다. 대학동물병원법이 제정되면 제도적, 재정적 지원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는 3월초까지 전국 수의과대학과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법안 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이르면 4월 국회에서 의원입법을 통해 대학동물병원 설치법 제정안을 발의하는 것이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