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밀어붙인 제도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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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건사 양성기관 평가인증 결과가 발표됐다. 총 20개 학교가 신청한 가운데 14개 학교가 인증을 받았다.

탈락한 6개 학교 중에는 동물보건사 배출을 위해 지역수의사회·동물병원그룹과 협약을 맺고 동물보건사 양성을 준비하던 학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인증을 받은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시험에 응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학교 학생들은 당장 제1회 동물보건사 자격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됐다. 동물보건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공부하고 있었지만, 시험을 볼 수 없게 되면서 ‘애꿎은 학생들만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인증받지 못한 기관에 재심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원서접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재심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재심을 통해 추가 인증을 받는 학교가 나오는 것도 평가단에 부담이다. 기존 검증과정에 의문부호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물보건사 제도 도입 과정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보건사(일명 수의테크니션) 직업군의 제도화가 처음 언급된 것은 지난 2016년 3월 4일이다. 한 일간지에서 ‘미국엔 동물간호사 8만 명…정부가 나서 길 열어줘라’라는 기사에 게재되며 제도 마련의 불씨를 지폈고,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외치며 맞장구쳤다.

당시 정부는 “동물병원 보조인력(3,000명)이 전문인력으로 양성되어, 수준 높은 진료서비스 제공 및 일자리 증가가 예상된다. 미국과 같은 진료환경으로 개선 시 향후 1만 3천명 고용 창출이 추산된다”고 밝혔다.

동물의료계 내부에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하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며 제도 도입을 밀어붙인 것이다.

동물보건사 국가자격화가 정말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지만, 일단 ‘제도부터 도입하고 세부사항은 나중에 정하자’는 정부의 스탠스가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시간을 불과 몇 달 전으로 돌리면, ‘내년 초에 첫 시험이 있는데 시험과목도 모르고, 인증기준도 모르고, 보건사의 세부 업무 범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현장에서는 ‘인증평가가 최소 작년에만 진행됐더라도, 애꿎은 학생들이 시험 볼 기회조차 박탈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년에라도 시험과목이 확정되고 인증평가 기준이 나왔다면, 그에 맞춰서 학과 커리큘럼을 짜고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논의와 합의는 제쳐두고 ‘제도부터 도입하고 세부사항은 나중에 정하자’는 자세가 현장의 혼란과 피해로 이어졌음에도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반려동물행동지도사’를 국가자격화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동물보건사와 마찬가지로 세부 내용은 추후 논의된다.

‘동물진료코드 신설이 선제 되어야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과 ‘너무 성급하다’는 일부 국회의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동물진료비 게시, 예상비용 고지, 진료비 공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의사법 개정안도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통과됐다.

참고로, 문재인 대통령의 반려동물 대선공약 1번은 동물진료비 부담 완화와 관련 있는 ‘동물의료협동조합 등 민간 동물 주치의 사업 활성화’였고, 3번은 ‘반려동물 행동교육 전문인력 육성 지원’이었다.

언제까지 과정보다 결과만 만들면 된다는 ‘밀어붙이기식 제도 도입’을 이어갈까. 높아지는 공약 이행률 속에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의 몫이다.

[사설]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밀어붙인 제도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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