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진료비 공개에만 치우친 규제 논의, 의료접근성·지원체계 고려해야

소비자단체, 진료비 정보 비대칭성 해소해야..’공개 의무화돼도 부담완화 안될 것’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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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진료비 정보공개 강화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27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반려동물 의료서비스 발전방안 토론회에서도 정부와 소비자단체는 수의사법 개정안 통과를 거듭 촉구했다.

반면 수의사회는 의료자원 양성이나 지원에는 ‘민간서비스’ 취급하며 뒷전이다 규제신설에는 ‘공공성’을 내세우는 이중잣대를 지적했다. 규제정책에 앞서 기초통계와 사회적 합의, 정책조직 확충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물보호단체는 진료비 정보공개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취약계층을 위한 진료 바우처 지원 등 의료접근성 보장대책을 함께 제언했다.

허은아 의원은 “반려동물 진료비가 과다하다는 인식이 있다. 비용이 천차만별이라 고민된다”면서도 “단순히 수의사가 문제라고만 여겨서는 해결할 수 없다. 동물진료가 표준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허은아 의원(왼쪽)이 개최한 토론회에는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경선후보(오른쪽)도 방문했다.

소비자단체, ‘가격정보 공개 확대’ 수의사법 개정 촉구

동물보호단체, 의료접근성 살펴야..공개 의무화해도 ‘비싸다’ 불만 해결 어렵다

발제에 나선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소비자가 진료비용을 사전에 예상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비용을 표준화하고 정보제공을 강화해야 한다”며 수의사와 보호자 사이의 진료비 정보 비대칭성 해소에 무게를 뒀다.

동물진료비 사전고지제, 공시제, 진료항목 표준화를 포함해 수의사법을 개정하고 동물병원 진료비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도 국회가 수의사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대표는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은 (동물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영역에서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식 농식품부 방역정책과장은 “동물진료 표준화가 제도로 만들어져야 정부도 재정을 투입하고 관련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며 수의사법 통과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과장은 “(정부입법 개정안은) 현재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에서 공통적으로 다룬 내용이다. 반려동물 진료제도의 첫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팀장은 정보제공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동물들이 의료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진료비 정보공개를 의무화한다고 해서 진료비가 낮아지거나 취약계층 동물의 의료접근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채일택 팀장은 “진료비가 비싸다는 불만의 이면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금액의 청구서를 받게 되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면서 “이는 단순히 진료비를 통제하거나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 동물의료체계 전반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상 민간에만 전가되어 있는 동물 의료서비스에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람처럼 당장 별도의 공공의료기관(보건소)을 통해 공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면 취약계층의 동물을 위해 ‘동물의료 바우처’를 제공하고,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과된 부가가치세 면세를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

지원할 땐 민간서비스 취급, 규제할 땐 공공성 내세워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반려동물 의료서비스를 바라보는 이중잣대를 지적했다.

의료서비스 공급과 발전 측면은 민간영역의 사적서비스로 간주하면서, 진료비 관련 규제에는 공공성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우 사무총장은 “의료자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공공과 민간이 동물의료를 어떻게 분담할지,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단계적으로 접근할지, 정부조직이 어떻게 뒷받침되어야 하는지를 전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수의사가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받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진료비 문제만 다룬다. 수의사들이 정서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 의료서비스 발전을 위한 투자나 체계가 없다는 점도 지목했다.

우 사무총장은 “지금의 반려동물 의료서비스는 수의사와 반려인의 노력과 희생으로 발전해왔다. 정부의 투자는 없었다”면서 “수의과대학 반려동물 임상과목 실습교육비는 학기당 100~200만원에 불과하다. 동물 한 마리 사기 힘든 돈”이라고 꼬집었다.

의료인 양성에 대규모 조직과 예산을 들이는 의학분야와 달리 수의사는 별다른 지원없이 스스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동물병원 개원가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이 거센 현실을 반영한다.

우연철 사무총장은 ▲반려동물 기초통계 및 사회적 합의 확보 ▲VCPR하에서의 권리·의무와 정부 역할 규정 ▲반려동물 의료서비스 담당 조직 확충 등을 과제로 제언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왼쪽),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오른쪽)

동물 진료비 정보 공개하면 진료비가 낮아질까..진료비 공개 ‘하한선 될 수도’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의료서비스는 공산품과 다르다. 같은 항목의 진료라도 비용만으로 충분히 비교할 수 없다”며 “자칫 공개된 진료비 정보가 하한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격정보를 동물병원에 게시하거나 별도의 웹사이트에 공시하더라도, 가격경쟁으로 이어지기 보다 가격 상승의 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9년 폐지된 수가제가 무조건적인 가격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반려동물 의료서비스 발전에 따라 진료비용이 상승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우연철 사무총장도 “동물 진료비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가해지면 폭등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는 반드시 가격저하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진료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가격을 저렴하게 만드는 것만이 소비자 정책의 목적은 아니다. 진료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정책도 펴기 어렵다”면서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 사회적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이를 반려동물 가구와 정부가 일정 정도 부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물 진료비 공개에만 치우친 규제 논의, 의료접근성·지원체계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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