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림] 수의대생이 바라본 수의사 국가시험② 국가시험 컨트롤타워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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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국가시험의 관리 주체인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는 2016년 국정감사에서 수의사 국가시험 관리 미흡 문제를 지적받았다. 당시 지적받은 내용으로는, 매년 연례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등 보다 효율적인 국가시험 관리를 위한 시험관리 개선 노력이 결여됐고, 국가시험 전담 부서와 전담 인력 부재로 인해 전문적인 시험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이었다.

검역본부는 수의사국가시험 운영방식 등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 수의사국가시험 관리를 민간 자격시험 전문기관 등에 위탁하는 방안 검토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검역본부는 국가시험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국회에서는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와 중앙가축방역심의회를 ‘중앙가축방역수의심의회’로 통폐합하는 발의안이 발의됐다. 해당 통폐합안은 2022년에 발의되었으나, 21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임기만료 폐기됐고, 2024년에 다시 발의됐다.

먼저, 두 위원회는 전혀 다른 기능을 가진다. 정부가 통폐합의 근거로 든 위원회 기능 간 유사·중복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두 위원회의 통합은 국가시험 시행의 독립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과거 입법 시도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으며, 개정안에 따르면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구성에 수의사가 포함되긴 하지만,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의 업무 수행과 무관한 축산 단체 등의 위원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전문위원실 또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표 1.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 및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비교

특히,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를 ‘중앙가축방역수의심의회’의 분과로 두는 것은 타 전문직 시험들과 비교해 독립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 약사, 한의사 등 의료인의 국가시험을 운영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위원회’를 구성하여 시험 관련 사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본부를 두어 필기시험 시행 관리, 문항 개발 및 출제 기준 관리 등 국가시험을 위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반면 수의사국가시험은 검역본부에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를 두고, 전담 부서 없이 소수의 담당자가 다른 업무와 함께 국가시험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더불어 수의미래연구소에 따르면,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 예산은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가 목적과 기능이 다른 중앙가축방역심의위원회에 통폐합되면, 수의사 국가시험 운영의 공정성 및 독립성이 저해될 수 있다.

그림 1. 국시원 조직
그림 2. 수의사 국가시험과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의 인력 및 예산 비교

수의사국가시험 운영은 현행 방식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매년 출제위원으로 뽑힌 교수진이 3박 4일 동안 합숙하며 출제하는 방식으로는 치밀한 검토 과정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수의사국가시험 출제 방식보다 체계적이고 뚜렷한 출제 및 검토 과정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수의사국가시험의 평가목표 제시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행 수의사국가시험은 자료집이 발간되어 있지 않아 명확한 평가목표를 학생의 입장에서 알 수 없다. 미국수의사국가시험인 NAVLE 주관사 ICVA는 NAVLE를 통해 무엇을 평가하려는지 공식 자료집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또한, NAVLE 공식 모의시험인 self-assessment를 제공하여 응시생의 평가 목표 이해를 돕는다.

우리나라도 수의사국가시험을 위한 공식 자료집을 만들 수 있다. WOAH에서 제시한 수의학교육졸업역량 모델에 따라 2019년 수의학교육 학습성과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해당 모델에서는 ▲진료역량 분야 학습성과 및 실행학습목표 ▲기본역량 분야 학습성과 및 실행학습목표 ▲전문직업성역량 분야 학습성과 및 실행학습목표를 제시했다. 수의학 교육계에서 규정한 학습성과 및 실행학습목표는 수의사 졸업역량의 배경지식에 해당하는 ‘최종학습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즉, 수의사 졸업역량을 충족하기 위해서 어떤 내용을 알아야 하는가를 이미 다룬 적이 있는 것이다.

둘째, 수의사 국가시험은 수의사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동시에, 시대적 변화에 따른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국가시험이 이러한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011년부터 10년 동안 임상 수의사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수의사 국가시험의 과목과 문항 수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수의사의 활동 분야별 분포를 살펴보면, 2013년 임상 수의사는 4,939명으로 전체의 43.0%를 차지했으나, 약 10년 뒤인 2022년에는 7,990명으로 증가하여 52.5%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가시험은 지난 2011년, 기존 10개 과목에서 20개 과목으로 확대·재편된 이후, 현재까지 동일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수의사와 학생들은 현재 국가시험에서 임상수의학 과목의 출제 비율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증가하는 임상 수의사 비율과도 맞물린다. 수의사 국가시험 이해관계자(수의과대학생, 수의사, 수의대 교수)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429명 중 46%가 현 국시 제도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응답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국가시험 운영 방식과 관련해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국가시험이 사회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또한, 시험 전반에 대한 평가에서도 ‘시험 내용이 실제 수의사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현재 시험 과목 구성으로는 새롭게 요구되는 수의사의 역할과 역량을 반영할 수 없다’ 등의 의견이 다수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국가시험 문항 구성과 시험 과목이 10년간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림 3. 수의사 활동분야별 분포 비교표
그림 4. 수의사 국가시험에서 임상 과목의 비율에 대한 설문조사

NAVLE는 수의사가 현장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직무 능력을 시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국의 국가시험도 수의사의 직무를 분석하여 시험 문항을 설계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응시자들이 현장에 더욱 적합한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ICVA는 7년 주기로 수의사 직무분석 연구를 수행하며, 이를 통해 수의사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업무의 중요도와 빈도를 평가한다. 문항은 두 가지 주요 기준인 ▲직무능력 ▲동물 종을 기반으로 설계된다. ICVA의 직무분석은 현직에 있는 수의사에게 설문하여 진행되는데, 동물 종을 분석할 때 ‘동물 종 및 진단’ 섹션을 별도로 만들어 진료 빈도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1. 직무 능력(Competencies): 수의사로서 필수적인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문항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질병 진단, 치료 계획 수립, 공중보건 관련 지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

2. 동물 종(Animal Species): 수의사가 다루는 다양한 동물 종에 대한 문항이 포함된다. 소동물, 대동물, 말, 가금류, 돼지 등 다양한 동물 종에 걸쳐 문항이 출제되며, 각 문항에는 해당 동물 종의 특성과 관련된 직무가 반영된다.

그림 5. 직무능력(Competencies)
그림 6. 동물 종(Animal Species)

우리나라는 현재 수의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수의사 신상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수의사 신상신고의 축종 신고를 더 구체화하여 수의사가 접하는 축종의 빈도를 수치화할 수 있다면, 이를 국가시험에 적용하여 NAVLE처럼 현장에 더 걸맞은 국가시험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영역별 문항 수도 일관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수의교육학회의 수의해부학 출제영역별 문항 수 통계를 보면, 매년 문항 수의 편차가 크다. 뼈, 근육, 순환과 같은 일부 영역은 비교적 일정한 편이나, 신경 영역의 경우 최소 2문제에서 최대 8문제까지 출제되어 변동 폭이 크다. 수의전염병학의 경우 편차가 더욱 심하다. 특히 돼지 세균·진균 영역은 2문제에서 7문제까지, 총론 영역은 1문제에서 7문제까지 차이가 나며, 매년 출제 문항 수의 변화가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역별로 일정한 비율의 문항이 출제될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림 7. 수의전염병학 출제 영역(한국수의교육학회)
그림 8. 수의해부학 출제 영역(한국수의교육학회)

수의사 국가시험의 평가 방식이 더 체계적이고 투명해지기 위해서는 ▲평가 자료집 ▲현장과 시대 흐름을 문제에 반영하기 위한 직무분석 ▲출제 영역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NAVLE는 ICVA가 관리하듯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컨트롤타워가 이를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수의사 국가시험에 대해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중앙가축방역심의위원회의 통폐합이 아닌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의 독립 운영과 예산 지원, 국시원과 같은 민간 전문기관 이관을 통한 국가시험 관련 사업의 전문적인 운영 개편이 필요하다.

수의사 국가시험은 수의사 면허 부여와 더불어 우리나라 수의과대학 교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므로, 시험 운영의 투명성, 전문성, 체계성 증진이 시급하다. 앞서 1편에서 다루었던 수의사 국가시험 문항 공개 여부를 포함하여, 국가시험 개선을 위한 방안은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수풀림은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직접 수의계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는 ‘수의대생 연합 편집부’입니다. 수풀림은 빠르게 변화하는 수의계 속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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