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림] 수의대생이 바라본 수의사 국가시험 ① 문항공개 행정소송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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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0일 제69회 수의사 국가시험이 실시되었다. 이번 시험에 합격한 540명은 2월 중에 수의사 면허증을 발급받아 수의사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수의사 국가시험은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의학사 학위를 취득했거나, 6개월 이내에 취득 예정인 사람이 응시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정부가 인정하는 외국 대학을 졸업한 경우, 수의학사 학위와 해당 국가의 수의사 면허를 보유하면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수의사 면허 부여라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 수의사 국가시험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수의미래연구소(이하 수미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 시험은 농림축산검역본부(이하 검역본부) 기획조정과 국시평가계에 소속된 수의직 공무원 1명이 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러한 수의사 국가시험은 2023년부터 법정 공방을 거치며 국가시험의 체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흔들리고 있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는 2023년 4월 검역본부에 제기한 제67회 수의사 국가시험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가 거부된 이후, 해당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치열한 법정 공방을 이어왔다.

수대협은 수의사의 역할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에 국가시험의 관리 체계가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문항과 정답의 공개가 수의사 직업군의 사회적 인식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국가시험의 현행 출제 방식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도 지적했다. 매년 40여 명의 교수진이 시험 직전 3박 4일 동안 합숙하며 그해 시험에 나올 350문항을 제한 시간 내에 한정된 인원으로 출제하다 보니 치밀한 검토 과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가 비공개이기에 출제 오류의 시정 가능성과 국가시험 행정의 투명성 확보 또한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재판부는 문항 공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성급히 공개할 경우, 시험 운영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기출문제가 수년간 반복적으로 공개되면 변별력 있는 문제를 구성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고, 중복 출제를 피하기 위해 출제 범위가 제한되며, 지엽적인 내용에서 문제가 출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수대협은 해당 시험이 변별력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니라 수의사로서의 기본 역량을 평가하는 절대평가 시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매 회차마다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상당 부분 출제되는 것이 오히려 국가시험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문항 공개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통해 다양한 문항을 축적하는 문제은행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새로운 출제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상당히 큰 상황이다.

비록 이번 국가시험 문항 공개 소송의 결과는 패소이지만, 소송 제기 과정 자체가 수의과대학 학생들과 수의사들이 국가시험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수의사 국가시험 운영 예산과 담당 인력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이번 소송은 국가기관의 주목을 끌고, 정책적 개선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행정소송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더 나은 국가시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발판이 된 의미 있는 행보로 평가된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보건의료인 주요 직종 국가시험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수의사와 다른 점을 많이 갖고 있다. 시험 주관기관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으로, 운영 인력, 예산 모두 수의사 국가시험보다 많다.

의사와 치과의사 국가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의사와 간호사 국가시험은 필기시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기시험은 문제은행 방식으로 출제되며 절대평가로, 매해 국시원 홈페이지에 문항이 공개되고 있다.

수의사 국가시험과 보건의료인 주요 국가시험 운영 현황 비교 관련 기사 : https://www.dailyvet.co.kr/news/college/188430

국시원은 문항개발부터 출제, 결과분석 및 평가에 이르는 체계적인 흐름도를 갖추고 있다. 국시원은 ‘좋은 문항’을 ▲시의성, 객관성, 신뢰성 ▲실제 임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이해력, 사고력, 응용력 조건을 충족하는, 시험문항으로서 타당성이 있는 문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시원은 매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국가시험의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 분석 결과는 크게 시행 결과(예: 과목별 문항 수 등)와 문항 분석 결과(예: 과목별 난이도, 변별력 지수 등)로 나뉘어 제공되며, 시험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의·치·한 국가시험의 문항 공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거의 매년 복수정답 처리된 문제를 공개하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2009년 의사 국가시험의 복수정답 처리 문항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피고였던 국시원은 문제은행 기반 출제 방식을 이유로 문항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문항 공개 시 이후 문제 출제 및 응용이 어려워지며, 공개하지 않았을 때의 장점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2년에 시행된 제76회 의사 국가시험부터 기출문제를 한시적으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일부 응시자들이 기출문제를 조직적으로 복원하여 출판하는 등 사실상 문제가 공개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항 공개로 인한 난이도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우려되었으며, 실제로 응시자들 사이에서는 체감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4년, 시범적인 필기시험 문항 공개 운영을 중단한 뒤, 문항 공개의 필요성과 문제점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필요성 측면에서는 ▲문항 유출 사고의 원천 차단 ▲이의신청 제도 운영을 통한 시험 운영의 투명성 제고 ▲수험생의 알 권리 충족 등의 의견이 제기되었다. 반면, 문제점으로는 ▲문제은행식 출제 방식의 한계로 인한 문제 고갈 ▲출제 작업 기피 현상 ▲문제 공개로 인한 운영 비용 증가 ▲출제 난이도 상승 등의 우려가 나왔다.

이후 국시원은 기출문항 공개의 타당성 연구를 진행하였고, 현재까지 필기시험 기출문항을 공개하고 있다.

한편, 국시원은 2016년 국정감사에서 의사 국가시험 외 다른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의 기출문항 공개 요청을 거부한 점에 대해 지적받았다(같은 해 검역본부는 수의사 국가시험 관리 미흡 문제로 국정감사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국시원은 이에 대응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직종별 시험위원회를 개최하고, 2018년 6월 필기시험 문제 공개 추진계획안을 수립하였다. 그 결과, 2019년부터 한의사, 약사, 간호사, 치과의사의 필기시험 문항 공개를 시작했다. 반면, 검역본부는 현재까지도 수의사 국가시험의 문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필기시험 문제 공개 추진계획안 일부 발췌

수의사 국가시험 문제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의는 시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이 쟁점은 단순히 문제 공개 여부를 넘어서 국가시험의 운영 방식 전반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어지는 2편에서는 현재 국가시험 운영방식과 문제점,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수풀림은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직접 수의계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는 ‘수의대생 연합 편집부’입니다. 수풀림은 빠르게 변화하는 수의계 속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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