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농장 동물복지 30분이면 자가진단’ 복지 개선 관심∙실천 계기로

어웨어, 돼지 복지평가 위한 농장 자가진단 도구 개발..간편하게 활용하면서 동물복지 관심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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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도가 돼지에서 시행된지 10년이 됐지만, 국내 인증농가는 아직 0.3%에 불과하다. 사육돼지의 동물복지 수준을 높이려면 나머지 99.7% 일반 농장에서의 개선이 중요하다.

개별 농장이 동물복지를 개선하려면 이를 평가할 지표가 필요하다. 가령 ‘현재 우리 농장의 동물복지는 60점인데, 전등을 OO개 더 달아주면 70점이 될 것이다’라는 판단이 서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돼지농장이 복지 수준을 자가진단하기 위한 평가도구(이하 복지평가도구)를 개발했다. 지난해 9개 농장을 대상으로 시범 적용한 결과를 16일 국회토론회에서 발표했다.

연구진은 “30분이면 점수가 나온다. 농장분들이 직접 하시면 더 빠르게 끝날 것”이라고 전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평가하면서, 농장 스스로가 동물복지를 주체적으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돼지 복지평가도구 구성 – 육성·비육돈
(자료 :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먹이∙환경∙건강∙행동 4대 원칙 26개 척도로 평가

실내 조도 40럭스 넘으면 만점, 장난감 있으면 만점

연구진의 최태규 수의사는 “농장이 매일 돼지가 어떤 지 보긴 하지만, 표준화된 지표 없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셈”이라며 “객관적 지표를 통해 평가하고 자료를 만들어야 (동물복지 개선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동의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복지평가도구는 EU에서 개발한 동물복지평가도구 ‘Welfare Quality®’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Welfare Quality® 원본은 평가에 수 시간이 소요되는데, 국내 육성∙비육돈 복지를 현장에서 쉽게 평가할 수 있도록 간소화했다.

그러면서도 복지평가의 4대 원칙은 유지했다. ▲적절한 먹이 ▲적절한 사육환경 ▲양호한 건강 상태 ▲적절한 행동을 바탕으로 10개 기준, 26개 척도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돼지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바닥형태, 깔짚 제공 여부, 조도, 암모니아 가스 농도를 살핀다. 깔짚 베딩이 깨끗하게 있다면 100점, 베딩이 있지만 반 이상 젖어 있다면 50점, 베딩이 없으면 0점으로 채점하는 식이다.

동물복지 수준이 매우 높아야만 점수를 얻을 수 있게 설계하지도 않았다.

가령 조도 항목에서는 현행 동물보호법상 최소 조명도인 40럭스(lux)만 넘으면 100점 만점이다. 일반가정의 실내 조도가 500럭스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혹한 기준이라고는 볼 수 없다.

연구진의 강혜진 박사는 “사실 40럭스는 굉장히 어두운 상태인데 이 마저도 지키지 않는 농가가 많을 것”이라며 우선 농장에서 많이 사용하도록 유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16일 국회토론회에서 복지평가도구 개발·적용 결과를 소개한
어웨어 이형주 대표, 강혜진 박사, 최태규 수의사

9개 농장(일관2, 비육7)에 시범 적용

평균 점수 66.4점

연구진은 지난해 9개 돼지농장을 대상으로 복지평가도구를 시범 적용했다. 일관사육농장이 2곳, 비육농장이 7곳이다. 기존 동물복지인증농가도 1곳 포함됐다.

연구진의 방문평가는 2022년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됐다. 농가당 1~2개의 돈사를, 돈사당 평균 3개의 돈방을 표본으로 뽑아 평가했다.

돈방 평가에 15분가량이 소요됐는데, 돈방 면적이나 개체수 등을 이미 알고 있는 농장이 직접 실시한다면 시간은 더 단축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들 9개 농장의 평균 점수는 66.4점으로 나타났다. 최고점(79.3)과 최저점(57.7)의 차이는 21.6점이다. 최고점은 기존 동물복지인증농가가 획득했다.

복지평가도구를 시범적용한 돼지농장 9개소의 총점
(자료 :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시범평가 점수표에서는 돼지의 복지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령 파행과 꼬리(귀)물기 척도로 평가하는 ‘부상이 없는 상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두 농장은 ‘질병이 없는 상태’에서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들 농장이 깔아준 톱밥이 꼬리(귀)물기를 줄이는데 도움을 줬지만, 먼지로 인한 결막염 발생은 늘린 탓으로 추정됐다.

거세(중성화), 단미, 견치 절치에 마취제나 진통제를 사용하는 농가는 한 곳도 없었다. 다만 농가별로 ‘관리로 인한 통증의 부재’ 점수에 편차가 있었는데, 견치 절치를 아예 하지 않은 농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방에 장난감을 배치한 농장에서는 ‘긍정적 행동’ 기준에서 큰 점수를 받았다. ‘장난감 제공’ 항목에서는 장난감이 있으면 100점, 없으면 0점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긍정적 행동을 장난감 제공 여부로만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시야를 좁힌 것”이라면서도 농장 스스로 긴 시간을 들여 탐색, 먹이질, 놀이행동 등 돼지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직관적인 평가항목만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 농장 안에서도 항목별로 점수에 편차가 있었다. 바꿔 말하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어느 항목 점수가 낮은지)를 알 수 있는 셈이다.

돼지농장이 동물복지를 손쉽게 자가진단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 형태의 복지평가도구를 무료로 배포할 방침이다.

복지는 결국 농장 스스로에 달렸다

자가진단 경험이 복지 문제 관심 유도

지난해 11월 어웨어가 국내 축산업 종사자 1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생산자가 농장동물의 인도적 관리의 책임 주체라는 응답이 87.6%에 달했다. 결국 농장 스스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복지평가도구 스마트폰 앱을 제공한다면 자가진단에 사용해볼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67.6%였다.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복지평가도구 어플리케이션은 양돈농가를 대상으로 무료 배포할 예정”이라며 “자가진단하면 점수와 함께 전체 참여농장 중 몇 위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점수를 높일 수 있을지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자가진단을 해보는 경험 자체가 동물복지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기대했다. 농장 경영을 위협하는 규제가 아니라 작은 실천으로도 개선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돼지농장 동물복지 30분이면 자가진단’ 복지 개선 관심∙실천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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