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종필 제주대 수의대 말 임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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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11년 9월 ‘말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2012년 7월 ‘말산업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말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습니다.

계획에는 현재 3개인 경마장을 4개로 늘리고, 승마장을 300개에서 500개로 확대하며, 승마인구를 2만5천명에서 5만명으로, 말 두수를 3만두에서 5만두로 늘린다는 목표가 담겼습니다.

한편, 제주도의 말 사육두수는 2만두 이상으로 국내 말 사육두수의 67%를 차지하고 있으며, 승마시설 또한 50개 이상 존재합니다. 정부는 지난해 초 제주도를 말 산업특구로 지정하고, 2020년까지 제주도 말 사육두수를 5만두로 늘리는 등 제주도를 말 산업 전진기지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서종필 ‘말 임상학’ 교수가 새로 임용됐습니다. 제주대 수의대 측은 서종필 교수를 통해 말임상을 강화하는 한편, 말 전문 동물병원 설립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데일리벳에서 서종필 교수님을 만나 수의사가 된 계기부터 국내 말산업, 말 수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 그리고 말 수의사로서의 마음가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수의사로의 진로는 언제부터 생각하게 된 것인가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의사가 꿈이었기 때문에 나는 꿈을 이뤘다. (웃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꿈이 수의사이다.

그 당시의 시골에서는 소 직장 검사 이미지만 있어서 수의사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시골 이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가 직접 분유먹이고 돌보면서 동물을 기르기도 했다.

어렸을 적 기억에 동물을 정말 좋아해서 커서 뭘 하면 좋을까 했는데 그때 누나가 ‘수의사’나 ‘동물박사’가 되면 된다고 했고, 지금은 ‘수의학 박사’가 되었다. (웃음)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수의사가 되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도 장래희망은 늘 수의사였다. 처음엔 공부를 잘 못했지만, 수의대에 가려고 계속 점수를 높여서 수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Q. 수의대 학부생일 때부터 말에 관심을 가지고 말 임상을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왜 말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사실 어렸을 때는 시골에 살아서 본과1학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직접 말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예과 2학년 때, 같은 과 형이 승마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에 승마부가 새로 생겼다고 했는데, 들어보니 생각보다 비용이 많지 않아서 나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2003년 1월, 본과 1학년이 되기 직전 겨울방학 때, 일산의 한 카페 옆 텃밭에 조그맣게 승마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에서 승마를 처음 배우게 되었다. 그게 내가 처음 말을 본 때였다.

처음에 말을 탈 때는 말을 타고 달리는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신기하고 멋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실수했다’고 느꼈다. (웃음)

그런데 회비도 다 내고, 장비도 이미 다 샀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 1달만 있다가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했다. 본과 1학년 1학기 때는 바빠서 말을 거의 탈 수 없었다. 그러다 여름방학 때 승마장에서 혹시 말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있냐고 해서, 여름방학 때부터 그 승마장에 가서 말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곳에 있는 교관님에게 무료로 승마를 배웠다. 제대로 배우다 보니 처음과 다르게 재미있더라.

이처럼 처음에는 말에 대한 수의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그저 말을 타고 관리하는 게 좋았다. 그런 게 좋아 방학 때나 학기 중에나 거의 맨날 승마장에 있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말 수의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말 수의사가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말 수의사가 된)계기가 된 것은 본과 3학년 때였다. 내가 맨날 말과 관련된 동영상만 보고 있으니까 친구 하나가 ‘자기가 외국의 익스턴십을 하나 알아봤는데 가보라’고 권했다. 미국에 있는 말 병원에 한 달 정도 다녀와서 말 수의사의 길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이랑 계속 같이 하다 보니까, 인연도 닿아서 대학원도 가게 됐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승마 때문에 시작 된 것 같다.

Q. 말 임상을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했는지 알려주세요.

일단은 ‘꼭 말 수의사가 되어야지’ 하는 것보다는, 그저 말 타는 게 재밌어서 계속 말 옆에 있던 것이 자연스럽게 나를 그 길로 이끌었다. 익스턴십으로 다녀온 미국의 말 병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 최고 수준의 말 병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말 진료가, 알고 보니 세계최고 수준의 말 진료였던 거다.

미국으로 익스턴십을 한 달 동안 다녀오고 나서 그 다음 학기에는 서울 마사회 실습도 갔었다.
학부생 시절 거의 맨날 승마장에 살았던 것도 말 임상실습에 도움이 된 것 같다.

학부졸업을 하고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 서울대 수의대 이인형 교수님(대동물외과/마취)을 만났다. 거기서 석사를 마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교수님께서 공부했던 오비히로 대학교로 박사과정(문부성)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박사학위를 끝내고는 일본에서 큰 병원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직접 보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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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인 서종필 교수(오른쪽)

Q. 국내에는 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 외국에는 어떤 교육과정이 있는지,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는 말 의학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은 한 달 연수만 다녀왔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다.

일본에는 15개의 수의과대학이 있지만, 그 중에서 말 실습을 직접 하는 곳은 한두 곳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대동물 기피 현상이 생겼는데, 나라에서 대동물 산업 육성을 위해 전국에서 1-2명 모집해 연수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연수는 일주일동안 먹고 자고 하면서 임상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하는 과정이다. 신체검사, 보정 및 채혈, 주사 놓는 방법, 수술까지 다 배운다.

이런 실습은 말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있었던 오비히로 대학교와 미국에서 공부했던 교수님이 오신 아자부 대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이렇게 2곳의 학교에서 소위 ‘말 과정’이라고 부르는 말 임상 실습을 배울 수 있다.

학부생들이 연수를 갈 수 있는 곳은 학교뿐만이 아니다. 규모가 큰 말 동물병원인 히다카 노사이(Hidaka Nosai) 공제병원, 샤다이 말 동물병원(Shadai horse clinic) 등에 연수를 가는 것도 나라에서 지원해준다. 이런 연수과정은 학부생을 대상으로 방학기간에 진행되는데,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자기소개서, 신청서를 잘 써서 선발기준을 통과하면 지원비가 나온다. 물론 경쟁은 치열하다. 이렇게 말 과정을 하는 학생들 중에서 해마다 꼭 말 수의사가 몇 명 나온다.

Q. 일본은 말 수의사를 체계적으로 양산하는 느낌이네요.

일본에는 1년에 많아야 두세 명의 말 수의사가 배출된다. 임상 쪽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일본은 말 임상보다 말 연구 분야가 훨씬 잘 되어있다.

예컨대, JRA는 자체 수의사만 약 300명이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연구 주제도 다양하다. 말발굽 연구만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망아지 분만에 대한 조사만 하는 사람도 있고, 풀에 대한 조사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자체 연구발표회도 연다. 그래서 일본의 말 관련 데이터가 어마어마하다.

결국 일본의 말 임상분야 발전은 말 연구 분야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이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본사람들은 문화적으로 경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경마로 돈이 많이 모이니까 JRA에서는 수의사를 많이 뽑아서 연구도 많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Q. 학부를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말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말 수의사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의외로 도처에 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한국 내에도 말 전공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또, 지식이나 경험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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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말 임상수의사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말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방법에는) 일본처럼 경마를 키우는 방법이 있고, 유럽처럼 승마를 키우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경마를 키우는 방법이 될 것 같다.

현실적으로 비판 여론이 많아서 힘들지만, 경마장이 한두 곳만 더 생겨도 말 산업은 지금보다는 커질 것이다.

앞으로 승마산업이 ‘잘’ 클지는 모르겠지만 부피는 반드시 커질 것이다. 그런데 거기엔 질적으로 유럽처럼 될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있다. 일본은 유럽처럼 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현재 한국에서 말 산업이 성장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일본보다도 빠른 것 같다. 따라서 잘 되면 유럽처럼 승마 문화가 발달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과도기쯤 될 듯하다. 한국에서 승용마는 이제 시작단계이다. 나라에서 승용마에 관심을 가진 것이 불과 4-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승용마가 제대로 자리 잡히면, 진료 수의사의 수요도 늘 것이다.

(편집자 주 : 2014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말산업은 경마산업이 93%를 차지하고 있고, 승마 및 기타 말 산업은 7%에 불과합니다)

Q. 말 수의사의 전망이 전반적으로 밝은가요?

전망이 아주 밝다고는 하기 어렵다.

솔직히 졸업을 앞둔 학부생이 나를 찾아와서 ‘말 수의사로 밝은 비전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장 밝은 비전이 있다고는 못하겠다. 제주는 말 두수가 많지만 로컬 대동물 병원에서 이미 충분히 진료를 담당하고 있고, 육지는 말 두수가 많지 않다. 또 연구 쪽으로 가기엔 연구하는 곳도 많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당장은 쉽지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 제주대 수의대에 말 전문 동물병원이 설립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말 병원 설립 및 서종필 교수님의 개인적인 계획/목표를 알려주세요.

14-15년 전에는 일본에서 JRA의 말 동물병원이 최고로 권위 있는 병원이었다.

현재 한국도 일본과 똑같은 시스템이다. 기업에서는 큰 규모의 경마 주최와 관련된 일이 많다보니 수의사가 계속 진료만 할 수 없다. 지금 KRA도 진료뿐만 아니라 행정․ 교육․ 관리까지 일이 엄청 많다.

이 때문에 진료의 전문성을 잡기 어려워지면서, 일본에서는 외부에 있는 병원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양대 산맥이 샤다이 홀스 클리닉과 히다카 노사이 공제병원(가축병원)이다. 이 두 병원은 JRA보다 규모는 작지만 진료수준은 높아서 Referral hospital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도 옛날에는 JRA로 최종의뢰가 갔는데, 요즘에는 JRA에서 샤다이 같은 병원으로 의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곳의 진료를 보면서 제주도의 말 동물병원도 2,3차 병원으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마사회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 제주도의 병원으로도 의뢰가 올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1차 진료를 하시는 분들이 편하게 의뢰 할 수 있는, 한국의 샤다이 클리닉 같은 병원을 만드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다.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5년 내에 수술실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 목표이고, 조금 더 장기적으로는 10년 정도 안에 병원 윤곽을 꽤 잡는 것이 목표이다.

Q. 그렇게 되면 정말 ‘말은 제주로’ 올 수 있겠네요.

일본에서는 홋카이도가 그렇다.

도쿄의 말이 배를 타고 홋카이도로 가서 수술을 받고, 휴식을 취한 후 다 나으면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 한국도 똑같은 상황이다. 홋카이도도 제주도와 똑같이 섬이고 말 생산지이다. 수술하고 쉬어야 하는데 도시에는 쉴 곳이 없으니, 일본의 홋카이도의 경우처럼 제주도에 와서 쉬면 좋지 않을까.

Q. 말 수의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단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수의사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수의학의 어느 분야든 똑같은 것 같다. 생명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갖고 살리고 싶어 하는 마음. 수의학은 잘하지만 동물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끝까지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말을 좋아하는 것. 자신이 진료하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끝까지 계속할 수 있다. 말을 좋아하지 않으면 재미없을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말 수의사들은 말을 좋아한다.

그 다음으로 항상 다치지 않게 조심하기.

나는 아직까지 운이 좋게 다쳐보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많이 다친다. 심지어 방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터뷰] 서종필 제주대 수의대 말 임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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