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성희 강남구수의사회장 `강남의 환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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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는 반려동물임상이 처한 문제와 앞으로의 전망을 먼저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진료수요도 타지역에 비해 높지만, 그만큼 동물병원과 수의사가 몰려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문제점도 생기고 있습니다.

강남구수의사회 분회장을 맡고 계신 포이동물병원 한성희 원장님을 모시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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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분회장을 맡고 있는 한성희 원장

Q. 언제부터 강남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했나.

수의사가 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지만, 반려동물 임상수의사가 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1996년 2월에 현재 자리에서 포이동물병원을 개원한 후 약 18년이 지났다.

올해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Q. 30년동안 절반 가까이를 반려동물 임상이 아닌 다른 분야에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학교 교수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다 접했던 것 같다.

내가 학교를 졸업했던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물병원은 인기가 별로 없었다.

졸업 직후 경북도청 수의직 공무원이 되려고 면접까지 봤다가 그만두고, 대동물병원에서 잠시 일했다. 당시 종근당이 동물용의약품을 만들겠다며 수의사를 채용했는데, 입사한지 1년이 지나도록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와서 다른 직장을 찾았다.

이후 축산물 수입 등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검역, 수입, 일반 행정절차 등을 다뤘다. 상장회사였고 40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지만, 여기도 사연이 있어서 결국 퇴사하게 됐다.

그 이후 마지막으로 가졌던 꿈이 임상수의사였다. 회사를 퇴직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6개월 정도 LA에 머무르며 한인수의사 동물병원에서 소동물임상을 수련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금 이 자리에 개원했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Q. 개원 초기(90년대말)와 비교해 현재 강남구 반려동물임상 환경이 많이 달라졌나.

무엇보다 동물병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시만 해도 강남구 내에 동물병원은 20개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71개다. 동물병원 2곳이 개원을 앞두고 있어 총 73개라고 보면 된다.

게다가 요즘은 생겼다하면 24시간 동물병원인데, 내가 봐도 좀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동물병원 운영환경도 예전만은 못하다.

한 자리에서 오래 동물병원을 운영하다보니 단골들도 꽤 있는 편이지만, 90년대말~2000년대초에 확 늘어났던 반려견이 이제 대부분 수명을 다했고, 신규반려동물 수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아 진료대상 자체가 줄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만 해도 강남구에만 동물판매업소가 30~40개였고, 한 샵에서 한 달에 최소 100마리 넘게 분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게다가 진료수가 문제도 있다. 비싸다고 말은 많지만, 동물병원을 오래 운영해본 입장에서는 오히려 진료비는 싸졌다.

Q. 강남구 동물병원이면 타지역보다도 진료비가 비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오히려 수가가 예전보다 감소했다는 말인가.

물론 반려동물 임상 기술수준이 올라가면서 새롭게 도입된 수술법이나 진단법, 치료법에서 진료매출이 창출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임상수의사들이 로컬동물병원을 운영하는데 근간이 되는 흔한 진료, 예컨대 예방접종이나 중성화수술, 제왕절개, 파텔라 수술 등의 수가는 많이 내려가거나 정체되어 있다.

제왕절개만 하더라도 100만원씩 받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받을 수 없지 않나. 중성화수술의 보편화로 케이스 자체가 줄기도 했다.

예방접종비가 내가개원했던 당시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물가가 두 배 가량 오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Q. 이런 수가 상의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수가를 올릴 수 있는 동력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동물병원 숫자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과잉경쟁이 시작되어 일부 병원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진료수가를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반려견 여아 중성화수술만 보더라도, 강남구의 높은 고정비 등을 감안하면 여러 수술전 검사와 수술후처치를 합해 50만원 이상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만원 정도를 받는 동물병원도 있다.

또한 과도한 할인을 하는 일부 수의사가 다수의 국민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보호자들의 인식에 한 번 자리 잡으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가가 고착화되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강남구분회나 서울지부 뿐만 아니라 대한수의사회 전체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강남을 바라보는 수의사들은 강남이 타지역보다 동물병원을 개원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의사커뮤니티를 보거나 다른 지역 수의사를 만날 때 상당수가 강남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 외제차 타고 다니고, 밤에는 비싼 양주 먹고 그런다고들 한다.

정말 그렇다면야 얼마나 좋겠나.

강남구 분회장을 두번째 하면서 강남구 내 여러 병원을 다녀 보면 안타까운 상황도 많이 접한다. 대형병원을 동업으로 개원했지만 이것 저것 제하고 나니 한달에 50만원도 못가져간다면서 가족들이 차라리 봉직수의사를 하라고 한다더라는 수의사도 있다. 그 분이라고 개원하면서 빚이 없었겠나. 그만큼 지금 상황이 녹록치 않다.

다른 수의사들은 강남을 가면, 딴 곳보다 반려동물도 많을 것 같고, 좀더 비싼 진료에도 잘 따라와줄 것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따져보면 강남이라는 지역이 그렇게 만들어줄 여건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강남구 인구가 55만명쯤인데 강남구 거주민의 많은 부분이 전세민이다. 60%에 달한다고 하더라. 자녀들 교육 때문에 무리해서 강남구에 비집고 들어와서 살다가, 교육이 끝나면 떠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가족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무슨 여유가 더 있겠나.

강남에 유흥업소가 많아서 동물병원이 그 덕을 본다는 것도 이제는 옛날 얘기다. 강남구가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유흥업이 많이 줄어들었고, 해당 종사자들도 옛날처럼 동물병원에 많이 내원하지는 않는다.

물론 강남구에서 몇몇 돈을 많이 번 동물병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모두가 소위 ‘강남구 특수’ 때문에 성공하신 것은 아니다. 애견샵과 연계한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규모를 키운 병원도 있다.

Q. 어찌됐든 존재하는 환상때문인지 강남구에는 다른 지역보다 유독 동물병원의 밀도가 높다고 들었다.

내가 볼 때 강남구의 적정한 동물병원 숫자는 40개 남짓인데, 현재는 73개다.

그나마도 보통 70여개가 아니라 그 중 절반이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이다.

24시간 동물병원이 차지하는 진료영역이 일반 로컬동물병원 4~5개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렇게 따지면 강남의 동물병원 숫자는 일반 로컬을 기준으로 거의 200여개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24시간 운영 병원, 초대형 동물병원이 많기 때문에 한 병원에 종사하는 수의사의 평균적인 숫자도 많다. 강남에서 일하는 봉직수의사만 400여명 정도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아직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남구 분회 차원에서 조사해보니 강남구에서 일하고 있는 봉직수의사의 70~80%가 자신의 개원지로 강남을 꼽고 있었기 때문이다.

Q. 봉직수의사의 대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업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동물병원 포화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라는 얘기도 있다.

100% 동의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수의선진국에 가보면, 평생을 봉직수의사로 생활하는 수의사도 많다.

다만 그러려면 병원의 재정규모나 매출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 우리나라에 그 정도 수준에 올라선 동물병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보기엔 H동물병원이나 W동물병원 정도인 것 같다.

평생 고용하는 봉직수의사 체계를 갖추기엔 아직 우리나라 동물병원 규모가 부족하다고 본다.

그만큼 병원이 커지려면 법인 체제가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다.

Q. 대기업 자본이 1인 동물병원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리법인 동물병원 개설을 막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봉직수의사 정착을 막아 개원을 늘림으로써 1인 동물병원을 어렵게 만드는 화살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건가.

그러한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쉽사리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다. 영리법인 동물병원 개설을 못하게 한다고 봉직수의사 정착의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볼 수도 없지 않나.

강남에 문을 연 대기업자본 동물병원을 바라보는 시각도 수의사들마다 제각각인 것 같다. 해당 병원이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 수의사들을 고용하면서, 잠재적인 개원 움직임을 줄이고 봉직수의사의 처우가 전체적으로 개선되는데 도움을 줬다고 보는 분들도 있다. 반면 일부 고위급 수의사들을 제외하면 실직적은 대우가 비슷해 결국 영리법인 허용되도 수의사 숫자를 줄이지 않고서는 개원러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Q. 강남구가 특히 포화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수의대 정원조정이라든지 배출되는 수의사 숫자를 줄이는 문제에 많이 공감할 것 같은데.

물론 배출되는 수의사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수의과대학을 줄이자는 얘기가 있었다. 다 통폐합해서 대전에 가칭 한국수의과대학 하나만 남기고, 거기서 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자는 안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변한 건 없지만 말이다.

Q. 수의사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24시간 병원이 많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이렇게 많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이해가 잘 되진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과열된 경쟁 때문 아니겠나.

물론 임상적인 목적에서 24시간 체제를 도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 만으로는 좁은 지역에 몇십개나 되는 24시간 병원 숫자를 설명할 수 없다. 옆에 있는 병원이 24시간 여니 밀리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24시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필요하다. 24시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의 수의사를 고용하고 유지하려면 그에 걸맞는 진료케이스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과잉경쟁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무리해서 24시간 운영하는 경우가 늘다보니 수의사의 삶의 질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핑퐁처럼 하루 쉬고 24시간 일하는 식으로 생활하는 원장도 있을 정도니, 얼마나 힘들겠나. 수명을 깎아 먹으면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24시간 운영하지 않는)일반 로컬병원도 덩달아 어려워지긴 마찬가지다. 24시간 병원이 많아지다 보니 그들끼리 경쟁하기도 하지만 일반 로컬병원과도 진료파이를 다투기 때문이다. 수술은 물론이고 단순 호텔까지도 24시간 운영 병원과 경쟁해야 하다보니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동물병원이 과포화되면서 1차진료파이를 놓고 로컬병원과 24시간 혹은 대형병원이 경쟁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하다. 리퍼를 보내면 회귀율이 50%도 안되다보니 로컬병원은 강남구 내 대형병원으로 리퍼를 보내길 꺼려한다. 결국 강남구의 대형병원이 응당 가져가야할 2차진료파이를 대학병원이나 타지역으로 유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대형병원들이 더 1차진료를 많이 하게 되고. 점점 악순환이다.

Q. 24시간 병원의 숫자를 줄이거나 표준진료시간제를 정착시키는 것과 같은 해결방법은 없나. 어차피 있는 반려동물이고 진료숫자는 한정된 상황에서 24시간 운영을 줄이는 쪽이 수의사 개개인에게 돌다가는 파이조각이 커지지 않겠나.

24시간 병원이 지금처럼 과도하게 증가되는 현상은 조만간 정상화되는 쪽으로 조정될 것이라고 본다. 곪았던 부작용이 언제 터지기 시작할지 올해와 내년에 걸쳐 추세를 지켜봐야 겠지만 어쨌든 조정이 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표준진료시간 문제는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도 서울시수의사회 차원에서 몇 번 시도했지만 지키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강남구는 절반이 24시간 운영하는 현재로선 표준진료시간을 도입하기 더더욱 어렵다.

결국 얼마나 각 임상수의사들이 서로 공감하고 단합하느냐의 문제인데, 각자의 이해가 다른 이 같은 문제는 참 힘들다.

Q. 하다보니 부정적인 이야기만 오고 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남구 분회가 어떻게 노력하고 있나.

물론 과도한 경쟁으로 강남구 내 곳곳이 멍들어 있다. 수의사들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기 일쑤다. 분회장으로서 중재를 하려고 해도 당사자가 ‘옆 병원이 더 심하게 이러저러 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며 분회와 담을 쌓으려 할 때면 참 안타깝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분회 임원진과 함께 정기적으로 여러 병원을 돌며 설득해나갈 생각이다.

모든 일이 100%가 없지 않나. 분회원의 60%만 잘 뭉쳐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수의사회 일을 해보니 결국 해답은 ‘소통’에 있다. 수의사와 수의사가 마음이 통해야 일이 진행된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공감이 없는 상태에다 대고 소리질러 봤자 공허할 뿐이다.

서로 마음을 합치고 어려움을 나누자는게 올해 강남구 분회의 모토다.

구체적으로는 대수 회비도 분회에서 직접 받고, 분회 자체적으로 연수교육을 실시해서 안나오는 분회원의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 5년전에 했다가 중단되었다가, 작년에 다시 부활시켰다. 이번 서수회장 선거에도 양쪽 후보 모두 분회로의 연수교육이수권을 주겠다는 공약이 포함됐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공식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정적인 얘기만 해서 강남구 분회원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웃음)

30~40대 원장을 만나보면 놀랄 정도로 수의사로서 자부심도 있고, 단합에도 적극적인 훌륭한 후배수의사들이 많이 있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일부 수의사들이 경제적인 관점에만 충실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수의사는 師(스승 사)자를 쓰는 직업 아니냐. 돈도 돈이지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전문직으로서, 동물병원에 있는 수의사 개개인이 ‘윤리적인 경영’에 대해 고민하면서 함께 롱런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인터뷰]한성희 강남구수의사회장 `강남의 환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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