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르투에 울려 퍼진 K-수의치과학, EVDF 2026 참가 후기
터닝 포인트가 된 EVDF..학회에서 얻은 배움, 교류, 그리고 새로운 동력 : 박승훈 뿌리동물병원 원장

2026년 유럽수의치과포럼(European Veterinary Dental Forum, EVDF)이 5월 7~9일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에서 개최되었다. 몇 년 전 여행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도 느꼈지만, 포르투는 대서양의 푸른 생동감을 오롯이 품고 있는 도시다. 도우루강이 굽이쳐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수백 년 전 대항해시대의 모습이 눈앞에 오버랩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포르투갈이라는 국호의 기원이 되었을 만큼 깊은 역사를 간직한 이 도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6년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바로 이곳에서 올해 EVDF가 개최되었다.
사실 1인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병원의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해외 학회 참석을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교류하며 많은 도움도 주시는 ‘동물치과병원 메이’의 권대현 원장님이 한국 수의사 최초로 현장 강의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걸 구실삼아 학회 참석을 결심하게 되었다. 학회에서 강의를 듣고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수의 치과 진료를 전문적으로 보는 유럽 수의사들의 열정을 직접 느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2026년 EVDF 참석은 임상 생활에서의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학회장에 도착한 첫날, 접수도 하기 전에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Dr. Morten Hinge. 치과 수술 영상을 고해상도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강의와 치과 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덴마크 출신 수의사다. 매번 메시지로 치과 케이스, 치과 재료나 장비 등등 얘기를 하다가 실제로 만나니 신기했다.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이래서 오프라인 학회에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접수 후엔 포스터 부스를 둘러보았다. 한국에서는 총 세 분이 포스터를 제출하셨는데, 현장에서 뵌 서울대 수의대 김세은 교수님을 비롯해 최규환 원장님(태일치과동물병원)과 김규민 원장님(지동범동물안과치과병원)의 연구가 나란히 게시되어 있었다. 직접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 진료 시간 외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학술적 성과를 도출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과정인지 안다. 그럼에도 꾸준히 결과물을 제출하시는 원장님들을 보며, 그동안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조금은 안일하지 않았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강의 시작 시간이 되어 미리 생각해 둔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와 고양이 치과가 메인이지만, 말(Equine)이나 특수동물(Exotic animal)을 주제로 한 세션이 각 강의실에 배정되어 이틀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혹여 관심 있는 강의가 겹치더라도 추후 녹화 영상과 스크립트가 제공된다는 공지가 있었기에, 놓치는 내용에 대한 아쉬움 없이 선택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들었던 모든 강의 내용을 설명할 건 아니지만, 흥미로운 주제의 강의가 많았다. 임상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겠다 싶은 부분도 있었고, 이 부분은 내 경험(or 생각)과는 조금 다른데 하는 내용도 가끔 있기도 했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특히, PM4 파절 신경치료 강의에서 소개된 논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치근단병변이 있다고 해서 유의미하게 치료 성공률이 떨어지지 않는다는(But only 4.16% failures) 내용은 권대현 원장님의 논문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강의가 다수 있었지만, 일정상 듣지 못한 것들이 있어 추후 녹화 강의를 통해 들어볼 예정이다.

권대현 원장님의 강의 내용은 이전에 한국에서 진행하셨던 Emdogain 강의와 큰 틀에서는 맞닿아 있었지만, 더욱 내용이 완성되어 있었다.
단순히 ‘어느 책, 어느 논문에서는 이렇다더라’라는 이론 나열식 강의도 아니었고, ‘내가 해보니 이렇더라’ 식으로 본인 케이스만 늘어놓는 강의도 아니었다. 엠도게인의 탄생 배경부터 치주 조직의 해부학적 특징, 그리고 실제 임상에서 얻은 깊이 있는 고찰까지. 이것들이 논리 구조 위에서 유기적으로 짜여 있었다. 근거와 임상이 균형을 이룬 강의라고 생각되었고, 이번 학회의 연자 중 가장 완성도 있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건, 강의 곳곳에 박혀 있던 위트였다.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권 원장님 특유의 위트 있는 장치들이 강의 중간중간 있었다. 한국에서 권 원장님 강의를 들어본 수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청중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환호성을 유도하는 특유의 오프닝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게 신기했다. 솔직히 속으로 의심했다. ‘저게 영어로, 그것도 서양인들에게 과연 통할까?’. 하지만 통했다.
강의가 끝나니 훌륭한 강의였던 것을 인정하듯이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미국수의치과전문의는 다음 미국수의치과학회에서도 강의를 맡아달라며 직접 제안을 건넸다. 미국의 까다로운 전문의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강의지 않았나 싶다.
한 분야의 정점에 선 전문가가 전 세계의 동료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인사이트를 나누는 일-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나는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보고 느꼈다.



Morten뿐만 아니라 논문이나 책에서만 보던 이름의 여러 전문의들을 학회 중간중간 만날 수 있었는데 이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3년 전 아시아수의치과포럼 때 강의차 한국에 오셨을 때 만났던 미국 UC Davis 수의대의 Boaz Arzi 교수님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 저널의 에디터이기도 함)과 짧게 이야기도 하고, 호주의 치과의사이면서 수의치과전문의인 Dr. Anthony와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한국에 와서도 여러 전문의와 의견 교환을 할 수 있게 메일주소도 받아왔다는 부분이 이번 학회의 수확 중 하나다.
미국수의치과전문의이자 작년 아시아수의치과포럼에 강의 오셨을 때 뵈었던 Dabin Lee 선생님도 우연히 학회장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되어 한국에서 참석한 원장님들, 교수님과 다 같이 점심 식사까지 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평소 한국에서도 뵙는 분들이지만, 머나먼 유럽 땅 포르투갈에서 함께 담소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틀간의 짧지만 인상 깊었던 내 첫 해외 학회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번 유럽 학회는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채우는 시간을 넘어, 끊임없이 정진하는 세계의 다른 수의사들과 선배 원장님들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또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한국 수의학의 발전을 확인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 느낀 다른 수의사들의 열정을 동력 삼아, 내년에는 미국수의치과학회에 참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미국 학회는 더 규모가 크다고 들었기에, 이곳에서 느낀 신선함을 내년에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년 뒤엔 지금보다 임상적으로나 학술적으로 한층 더 발전되어 있기를, 그리고 조금은 더 당당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다시 일상에서 노력하려 한다.

아래는 함께 학회에 참석했던 원장님들의 소감이다.
권대현 (동물치과병원 메이): 아시아 수의사 중 유일하게, 그리고 한국 수의사로는 최초로 2026 EVDF(European Veterinary Dental Forum) 정규 강사로 운 좋게 연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포르투의 그 강의실에 서기까지의 시간들이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마음 한편이 무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내가 유럽과 전 세계의 동료들 앞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강의가 끝나고 받은 질문들과 따뜻한 반응들 속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쌓아온 임상과 연구가 결코 국제 무대에서 작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자리는 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한국수의치과협회 회원 선생님들이 국제 학술지에 연이어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만들어 온 흐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묵묵히 임상을 다지고, 밤을 새워 논문을 쓰고, 까다로운 리뷰어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 나가는 동료들의 노력이 모여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전 세계가 K-culture에 주목하듯, 저는 발전하는 ‘K-수의치과학’ 역시 충분히 세계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미국수의치과학회(AVDF) 강사에도 도전해 보려 합니다. 욕심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만들어 온 것을 더 넓은 무대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설레고, 또 한편으로는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믿고 함께해 주신 협회 회원 선생님들과 동료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겸손하게,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포르투의 바람과 도루강을 떠올리며.
김재경 (한결동물병원 광주): 5월의 포르투갈은 먼 나라 여행에 큰 흥미가 없던 내게 마법 같은 반전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EVDF 학회에서 만난 구강종양관리와 해부학, 그리고 TMJ 세션은 한국의 실용 임상 중심 트렌드와는 또 다른 깊이를 보여주어 무척 신선했습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멋지게 강의를 펼친 권대현 원장님의 제안 덕분에 이토록 값진 학술적 자극을 마주할 수 있어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학회장 밖에서 마주한 포르투갈의 풍광은 장거리 여정의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도우루강을 수놓은 포르투의 반짝이는 날씨와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휴식이 되었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대륙의 끝에서 대서양의 웅장함을 마주했던 신트라 호카곶의 바람과, 마지막으로 찾아간 파티마 대성당의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는 마음 깊은 곳까지 평온한 위로를 채워주었습니다. 낯선 발걸음으로 시작해 학술적 영감과 정신적 치유를 모두 얻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최고의 리프레시 여정이었습니다.
이성혁 (오복동물치과병원): 이번 포르투에서 열린 European Veterinary Dental Forum (EVDF)에 참석하며 다시 한번 해외 학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외 학회는 단순히 최신 지식을 접하는 자리를 넘어, 각국의 수의치과 전문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늘 설레는 경험입니다. 전시 부스에서도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살펴볼 수 있었고, 여러 강의와 교류를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 뵈었던 여러 원장님을 해외에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권대현 원장님께서 메인 홀 강연자로 나서신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끊임없는 학술적 열정으로 국제 무대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들었고, 언젠가는 나 역시 저런 자리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EVDF는 학회 종료 후 강의들을 온라인으로 제공해 일정상 놓쳤던 강연까지 다시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현장과 온라인의 장점을 함께 누릴 수 있었던 만큼 학회에서 얻은 배움과 경험을 앞으로의 진료에 잘 녹여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