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의 국제적 역할 키워야` 베르나 발라 OIE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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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3회 OIE 표준실험실 및 협력연구센터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베르나 발라(Bernard Vallat) OIE 사무총장이 내한했습니다.

2001년 OIE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발라 총장은 2번의 연임을 거쳐 13년 동안 OIE를 이끌어왔습니다.

데일리벳이 발라 총장을 만나 OIE 표준센터의 역할과 OIE 운영지표를 묻고, 악성 동물 질병이 연이어 재발하는 한국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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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만난 베르나 발라 OIE 사무총장

Q. 2011년 OIE 광견병 국제컨퍼런스 이후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소감이 어떠한 지.

한국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5년 첫 방문 이후 10여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에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한국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가 활발한 국가다. 이는 수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젊은 수의사들이 사회에 나와 매우 활동적으로 각자의 역할에 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열정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Q. 사무총장 임기 중에 OIE 표준실험실 및 협력연구센터(이하 표준센터) 회의를 창설했다. 어떤 목적으로 열리는 행사인가.

전세계의 OIE 표준센터 관계자를 모두 모으기로 결정한 것은 역대 OIE 사무총장 중 내가 처음이었다.

2006년 브라질에서 첫 번째 OIE 표준센터 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회의에 모인 참가자들은 전세계 최고 수준의 수의과학자들과 한 자리에서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크게 만족스러워 했다.

그래서 표준센터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국제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OIE 관련 업무의 변경사항에 대한 업데이트 기회로 삼기로 했다.

처음 목표는 3년 주기로 개최하는 것이었지만, 여러 사항을 고려해 4년 주기가 채택됐다.

OIE의 예산이 여타 UN 산하기구 등과는 달리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국제회의를 주관해줄 회원국을 모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3차 회의 개최에도 한국의 역할이 컸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회의를 개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국제 회의 개최뿐만 아니라 OIE의 많은 활동에는 각 회원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OIE 표준센터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최초 75개에서 지금은 296개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전문가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관련 정보와 과학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중요성도 커졌다.

4년마다 개최되는 회의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회의에서의 만남과 토론이 계기가 되어 표준센터가 보다 효율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선되고, 국제적인 협력이 보다 공고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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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제3차 OIE 표준센터 회의에서 발표 중인 발라 총장

Q. 올해로 OIE 사무총장을 역임한 지 13년째다. 그 동안 어떠한 가치를 중점으로 OIE를 이끌어 왔나.

수의전문성이 첫 번째다. OIE의 모든 활동은 수의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물과 동물질병에 대한 수의학적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OIE는 보다 많은 수의과학자와 함께 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기구로서 OIE를 운영하는 것에는 경영 역량도 필요했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많은 일을 하려면 운영상 효율성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 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도 중요하다. OIE에 가입된 세계 180개국은 나라마다 동물과 사람간의 관계, 문화가 모두 다르다. 이들 모두를 하나의 기준에 입각해 평가할 수는 없다. 모두 존중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함께 일을 해나가야 한다.

OIE 사무총장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역할은 동물질병 방역이나 수의기술이 뒤쳐진 개발도상국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수의기술이 높고 동물질병 대응체계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개발도상국이 단절되어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끼리만 블록화된다면 동물질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나가있는 국가들이 문제를 겪고 있는 회원국을 적극적으로 돕고, 그들의 기술수준이 보다 올라오도록 이끌어야 한다.

OIE는 이러한 지원을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 한 자리에 모인 전 세계 OIE 표준센터들도 그러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 OIE 표준센터의 지정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타 회원국 및 시설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표준센터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 이미 얻은 표준센터 자격이 정지되거나 박탈당할 수도 있다.

OIE는 앞으로도 지역적 지원활동을 담당할 표준센터를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Q. 국제기구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축은 유럽이나 북미지역의 선진국에게 있지만, 정작 동물질병 문제는 수의서비스의 수준이 부족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더 심각하다.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사실 선진국들이 국제기구에서 중점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역사적인 이유가 크다.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된 후 1950, 60년대 여러 국제기구들이 태동했고 그 중심에는 승전국들의 리더 격인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여러 국제기구의 본부를 주로 미국 본토나 서유럽에 위치시켰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이탈리아 로마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다. 물론 OIE는 UN이 결성되기도 전인 1924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국제기구의 구성원 대부분이 본부가 위치한 북미나 유럽 지역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는 OIE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IE는 보다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수의사들이 OIE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애초에 타국으로 건너와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전문성이 높고 자격이 출중한 수의사들은 고국에서도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국제기구에 합류한다고 해도 평생을 머무르려고는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또 다른 해결책은 각 지역에서 OIE 역할을 수행할 지역본부(Regional Offices)들을 보다 활성화하는 것이다.

OIE는 전세계적으로 13개의 지역본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아시아에도 일본 도쿄와 태국 방콕에 지역본부를 두었다. 앞으로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지역본부는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에게 접근성도 좋고, 각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동물질병에 대한 국제협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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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발라 총장(왼쪽)과 통역을 도운 OIE 박민경 수의사(오른쪽)

Q. 우리나라에서는 고병원성 AI나 구제역 등 악성 동물전염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

한국이 이러한 주요 동물질병에 대응하는 자세는 훌륭하다고 본다. 한국은 질병이 발생하면 신속히 대응에 나서며, 방역체계도 잘 정비되어 있다.

다만 고병원성 AI나 구제역 등 주요 질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에는 지정학적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는 국제 교류가 증가하면서 동물 질병의 전파 위험도 높아졌다. 한국의 주변국에 이러한 동물질병 등이 만성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그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한국 내에서만 접근하는 방법으로는 동물질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한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동물질병 대응수준도 함께 올라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주변 국가의 동물질병 문제 해결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OIE 등 국제기구를 통하거나, 아니면 자체적인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주변국의 동물질병 대응을 도와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이 동물질병 방역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도록 정치적 압력도 행사해야 한다.

Q. OIE나 FAO 등 국제기구 활동을 꿈꾸는 아시아지역 젊은 수의사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은 언어 능력이다.

국제 통용어인 영어는 필수조건이다.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나 불어, 러시아어 등 2개 이상의 외국어를 하는 것이 좋다.

학생시기나 젊을 때 여러 국가를 방문해보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다만 1, 2개월이라도 다른 나라를 방문해서 그들의 문화를 접하고 견문을 넓혀라. 그럼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보다 열린 자세를 가지게 될 수 있다.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려면 다른 이를, 다른 국가를 도우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자기중심적인 관점에만 머물지 말라. 다른 이를 돕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돕는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길 바란다.

     

<편집자주> 본 인터뷰가 성사될 수 있도록 OIE 공보부서와의 협의 및 통역을 도와주신 OIE 박민경 수의사 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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