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종의 야생동물이야기⑧] 산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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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녹색교육센터에서 주관하는 ‘Green Job 토크콘서트’에 강사로 초대받아 다녀온 적이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환경과 관련된 직업군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였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 중 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오셔서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필자가 평소 존경하고 있던 환경보호 활동가이신 ‘박그림’ 선생님도 그날 함께 하셨다.

수십 년 동안 자연그대로의 산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오신 그 분의 활동 소식을 접할 때면, 야생동물수의사의 궁극적인 목표와 방향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번 달에는 ‘산양 똥을 먹는 사람’이란 책의 저자이신 박그림 선생님을 떠올리면서 일반인들은 거의 보기 어려운 ‘산양(goral)’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산양, 재래산양, 염소, 흑염소’. 머릿속에 이 동물들의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산양과 염소 등의 단어를 별 구분 없이 사용해 오고 있고 그로 인해 ‘야생동물인 산양’과 ‘가축인 염소’가 같은 동물이라고 오인하는 일도 다반사다. 염소 우유를 ‘산양유’라고 말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염소도 사실은 야생 염소를 가축화하고 품종을 개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르고 있는 염소는 크게 젖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넨종(Saanen) 염소와 고기나 보신제로 이용되는 흑염소(재래산양이라고도 불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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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염소 (왼쪽, 사진 출처: 네이버카페 ‘뷰티팜’) 고기 또는 보양식으로 사육되는 흑염소 (오른쪽,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산양(학명: Naemorhedus caudatus)은 이들 가축 염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동물이다. 우제목 소과 염소아과에 속하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그러나 염소아과를 족(tribe)으로 나누면 크게 사이가족(Saigini), 샤모아족(Rupicaprini), 사향소족(Ovibovini), 염소족(Caprini)의 4가지 무리로 분류할 수 있다. 가축 염소는 염소족에 속하고 산양은 샤모아족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산양(Korean goral)은 Nemorhaedus caudatus raddeanus라는 아종으로 구분된다. 산양 속명(genus name)의 어원은 숲(forest)이라는 라틴어의 ‘Nemus’와 작은 양(a young goat)이라는 ‘haedus’에서 온 것으로 ‘숲속에 사는 작은 양’이라는 뜻이며, 산양의 영명인 ‘Goral’은 인도 동부지역의 토착어(native name)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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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 217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goral)

우리나라에서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의 취약종,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 1에 등재되어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설악산이나 월악산, 태백산과 같은 산림지대에 주로 서식하며 국소적 서식 습성을 가지고 있어 서식지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한번 선택한 지역에서 영구히 살며 크게 이동하는 경향이 없다. 2∼5마리 혹은 대규모의 경우 4~12마리 정도가 모여 군집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새벽과 저녁에 활동하고 도토리, 바위이끼, 잡초, 진달래와 철쭉 등 여러 종류의 푸른 잎과 연한 줄기를 먹는다.

산양은 과거 국내에 많은 수가 서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무분별한 포획과 서식지 파괴, 폭설과 같은 자연 재해로 인해 대규모 개체군이 사라지게 되었다. 2002년도에 환경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서식하는 산양 개체수는 700∼800마리 정도라고 추정만 할 뿐, 현재 그 수가 증가되었는지 감소하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추가적인 개체수 현황 자료가 부족하다.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산양은 현재 강원도 설악산, 오대산과 태백산, 삼척, 영월, 울진 일대 등 동해안을 따라 주로 분포되어 있고 강원도 휴전선 부근이나 인접지역에 작은 집단이 생존해 있다. 충북 월악산에는 복원을 목적으로 방사된 산양개체군이 서식하고 있다.

탈진 또는 사고를 당해서 다쳐도 사람이 발견하기 힘든 이유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지대에 서식하고 그 개체수 자체도 적으며 지리적 분포가 넓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산양이 구조되어 오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내가 산양을 실제로 처음 접한 시기는 강원도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있을 때였다.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새끼 산양이었는데 배수로에 빠져 탈진해 있던 녀석을 주변을 순찰 중이던 군인이 발견하여 구조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였지만 새끼라서 다시 자연으로 바로 보낼 수 없기에 양구 산양증식복원센터로 보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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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에 빠져 탈진한 상태의 새끼 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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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을 회복한 새끼 산양

산양은 주로 동해안을 따라 위치한 높은 산에 서식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만나볼 수가 없다. 그러나 가끔 산양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몇 달 전 경북 울진에서 산양을 구조한 뒤 이송 중 폐사한 사건을 듣게 되었다.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한 뒤 이송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구조 정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좀 들어보니 안타까운 죽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포획을 위한 마취와 구조 체계 때문이다.

야생동물을 구조할 때 마취 총을 쏘거나 마취제를 주사하는 일은 사실 매우 드물다. 야생동물 종마다 알맞은 마취제와 용량을 잘 모를뿐더러 사람에게 발견되어 도망도 못가고 붙잡힌 상태라면 마취 부작용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 마취를 하지 않고는 절대 접근 할 수 없는 종 즉, 곰이나 멧돼지 같은 매우 위협적인 동물은 마취가 필수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주사마취가 필요할 때가 있다. 지난여름 어느 공장 창고 옆 시설물(곡물을 저장 및 발효하기 위해 사방이 5미터 정도 높이로 막혀져 있는 공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던 고라니를 구조한 적이 있었다. 배수로 같은 상황이라면 2∼3명이 그물이나 포획망을 이용해 구조했을 테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사람이 들어가서 발버둥 치는 고라니를 들고 올라올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 마취를 한 뒤 구조하는 것이 몹시 흥분해서 다칠 수도 있는 고라니에게 더욱 안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고라니는 안전하게 블로우 건을 이용해 마취한 후 구조하여 단순 찰과상 상태였기에 바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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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막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고라니(왼쪽)
마취제 주사 후 기다리는 과정(오른쪽)

그러나 마취로 인해 이송 중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119 구조대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에게 마취제를 주사한 뒤 센터로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이미 고라니는 숨을 멈춘 상태였다. 상황을 물어보니 일어서서 걷지도 못하는 상태의 고라니였다는데, 왜 그 상황에서 마취를 하신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조대원 분에게는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주사마취로 인해 이송 중 고라니가 죽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다음에는 주의하시라고 일러주었다.

다시 경북 울진에서 구조 뒤 이송 중 죽은 산양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산양은 같은 공간에서 한 달 정도 계속 목격되었다고 한다. 사고 원인이나 산양의 상태 같은 정황은 이야기로만 들어서 잘 알 수 없었지만, 마취를 한 뒤 구조해서 이송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가까운 동물병원이나 야생동물구조센터로 가지 못하고 강원도 양구까지 이송을 한 상황이었다.

누가 마취를 하셨냐고 물으니 양구에서 야생동물 마취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오셔서 했단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 마취를 했던 사람은 나도 알고 있던 분이었다. 그 분은 오랫동안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포획하는 일을 하고 계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수의사가 아니다. ‘야생동물 전문 사냥꾼’ 정도가 그 분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기에 적당할 것 같다.

구조 당시 사용했던 마취제로 인해서 산양이 이송 중 죽게 되었는지 장담할 순 없다. 또한 수의사가 아닌 사람이라고 해서 마취제에 대해 무지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이 산양의 죽음은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상태로 종결되었지만 ‘마취를 하지 않고 구조를 했다면, 가까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신속히 이송되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생명이든 동등한 가치를 지니겠지만, 살아있었던 상태에서 구조가 되었던 멸종위기종 산양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다행히 현재 양구군, 민간단체, 국리공원관리공단 등에서 산양을 대상으로 다양한 복원 사업과 보전 노력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순조롭게 구조되지 못하고 죽은 산양이 있는 것처럼 아직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구조 체계는 갈 길이 먼 듯하다.

 

[김희종의 야생동물이야기⑧] 산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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