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처럼 동물진료 표준수가제 도입하자?독일도 힘들다

등록 : 2018.03.13 12:55:46   수정 : 2018.04.25 13:23:50 이학범 기자 dvmlee@dailyvet.co.kr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고, 동물병원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지적과 함께 ‘동물진료 표준수가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그리고 이미 동물진료 수가제를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든다.

하지만 1940년대부터 수가제를 정착시켜왔고 다양한 사회정책 분야에서 사회적 연대와 합의가 이뤄져있는 독일조차 수가 인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럽연합으로부터 ‘자유경쟁제한’이라는 이유로 수가제 폐지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과 함께 수가제를 실시했던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경우 EU의 압박으로 동물진료 수가제를 폐지했으며, 중국에서도 ‘시장의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는 원칙아래 동물진료 수가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영국은 수가제를 아예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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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제는 각 서비스 항목별로 고정된 가격(혹은 고정된 범위의 가격)을 부과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 동물진료 수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이며, 그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독일의 수가제(GOT)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처럼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동물진료 가격이 결정된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에는 동물진료 표준수가제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독일을 직접 방문하여 ‘독일 연방수의사회’, ‘독일 동물병원’, ‘독일 농림부’와 미팅을 했다.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독일의 동물진료 수가제에 대해 살펴보자.

독일 수가제 GOT – Gebührenordnung für Tierärzte: 수의사를 위한 요금 규정

이미 1940년대부터 동물진료 수가제를 시행한 독일

독일의 동물진료비 수가제는 GOT로 불린다. 1940년 11월 30일 조례 형태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에는 독일 전역에서 약 120개 진료 항목에 대해 적용됐다. 

Reichstierärztekammer(나치정권의 제국수의사회)와 축산관련 협회들과 협력을 통해 수가가 결정된 것으로 추측된다.

GOT가 처음으로 채택된 계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수의사들이 ‘식품위생’, ‘가축전염병 예방’, ‘인수공통전염병 방역’ 등 공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역할이 요구되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971년, 서독 전체에 적용되는 진료수가법 제정

철저한 사전 준비와 ‘사회적 합의’ 선행

31년 뒤인 1971년 GOT가 확대 시행됐다.

1971년 11월 2일 연방주마다 다르게 시행되고 있던 GOT를 통합하여 하나의 규제 하에서 서독 전체에 적용되는 GOT가 만들어졌으며, 총 390개 진료 항목에 대해 시행된 것.

각 주마다 독립적으로 수가법이 운영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 때문에 수가를 일관되게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독일 전역’에 적용되는 진료수가법이 만들어졌다.

법으로 GOT를 공식채택하기 전,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공식 절차가 진행됐다.

농림부, 경제부 등 관련 정부부처와 수의사회, 농축산 관련 종사자 협회, 동물보호단체들 간에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집중적인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이후 각 서비스 기술에 대해 새로이 가치를 매기는 방식으로 수가의 많은 부분들이 결정됐다.

현재는 약 800개 정도의 개별 동물의료 서비스에 대해 GOT가 적용된다.

수가의 3배 범위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

독일의 동물진료 수가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수가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됐다는 점이다.

즉, 서비스의 난이도, 소요되는 시간, 출장 진료 여부, 동물의 가격, 지역별 상황, 물가, 생활수준 등 ‘각 사례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여 수가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책정한 것이다.

1~3배 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얻은 긍정적 효과

독일의 수가제가 1~3배 사이 범위에서 수의사의 판단에 따라 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함에 따라 3배를 초과한 금액을 받는 것도 불법이지만, 수가 미만의 금액을 청구하는 것도 불법이다.

범위로 수가를 정하면서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생겼다.

우선, 최저수가를 설정함으로써 동물병원 간 과다경쟁을 방지할 수 있고, 저가의 서비스로 경쟁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를 통해 수의사의 자격조건과 동물의료의 최소한의 질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일명 ‘덤핑’을 예방하게 된 것이다.

최고 수가의 제한을 통해서는 부당하게 과다한 서비스 가격이 지불되는 것을 막아냄으로써 반려동물 보호자 및 축주들을 보호하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물론 수가제의 기본적인 장점인 ‘진료비 흥정이 필요 없어짐으로써 지체되는 시간 없이 즉각적으로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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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으로부터 동물진료 수가제 폐지 압력을 받는 독일

독일에는 현재 17개 주 수의사회가 있으며, GOT의 최저 혹은 최고가격을 벗어나서 금액을 부당하게 청구하는 경우에 대해 조사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업무를 수의사회에서 담당한다.

그런데,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독일의 동물진료 수가제조차 유럽연합(EU)으로부터 현재 폐지 압력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 중 오스트리아, 불가리아는 독일처럼 현재도 동물 진료에 대한 수가법이 운영되고 있지만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포함한 일부 국가의 경우 수가제를 시행했다가 유럽연합의 압력으로 폐지했다.

유럽의회와 위원회 ‘수가제의 담합에 대한 문제 제기’

동물진료 수가제는 “자유경제체제를 위반하고 담합의 여지를 만든다”

“각 국가가 각자의 국민을 보장해주는 의료보험·의료수가와는 달라…의료수가는 자유거래 대상 아니야”

유럽 의회(parliamnet)와 위원회(council)는 2006년 12월 6일 Directive 2006/123/EC를 마련하여 수가제의 담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동물의료뿐만 아니라 변호사, 건축가 등 전문직종의 수가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되었는데, 의료수가는 각 국가가 각자의 국민을 보장해주는 형태였기 때문에 자유거래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담합문제에서 제외됐다.

그나마 독일의 GOT는 경우에 따라 3배의 범위까지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경제체제를 많이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여 EU의 압력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상황이다.

중국에서도 “수의업계는 자유경쟁을 보장받는 시장…수가제 의무화는 시장경제 발전에 역행하는 행위”

중국에서는 수가제 대신 ‘권장소비자 가격 명시’

수가제가 자유경쟁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은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나온다.

3천만명의 인구와 1800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해의 경우, 몇 년 전 동물병원 수가제도입을 시도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제도도입이 무산됐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가격의 차이에 합당한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통일된 가격규정은 시장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경도 마찬가지다.

현 북경 소동물임상수의사협회 회장인 XIA 교수는 “동물병원 수가제 관련 공식적 법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것을 의무화하는 것은 시장경제 발전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시장의 흐름에 크게 벗어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안하는 곳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기 마련이고, 소비자들 또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비교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결국은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북경시는 ‘권장가격 공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법적 효력이 있는 정책은 아니며, 상해와 광동지역에서는 ‘권장소비자 가격 명시’가 의무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영국도 수가제 금지

“수의사는 고정된 비용의 효과를 갖는 어떠한 합의, 협정도 하지 말아야 한다”

영국의 경우에도 수가제 혹은 수가제와 동등한 효력을 지니는 고정된 가격 정책을 법으로 아예 금지하고 있다.

‘수의사 혹은 수의사그룹은 고정된 비용의 효과를 가지는 어떠한 합의 혹은 협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영국 왕립수의과대학에서 제시하는 행동규칙 내용이다.

‘수가 인상’ 문제도 간과 할 수 없어

독일에서도 ‘물가상승률에 못 미치는 수가인상률’

동물진료 표준수가제 도입의 또 다른 걸림돌은 바로 ‘수가 인상’이다. 

독일의 경우 1977년, 1988년, 1999년, 2008년에 이어 9년 만에 지난해 7월 12%의 수가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수가인상 논의가 항상 어렵기 때문에 수가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형편이다.

독일 농림부 측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적어도 2년에 한 번 정도 물가상승 보전을 위한 인상과 같이 자동 수가인상 기전이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9년에 한 번 수가인상을 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매년 수가협상 때마다 의사협회와 정부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우리나라 의료계 상황을 비춰봤을 때, 과연 우리나라에서 동물진료 수가제가 도입됐을 경우 수가인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일 수가제 “다양한 사회정책 분야에서 강한 사회적 연대와 전문가집단의 양보를 기반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연구용역을 진행한 연구진은 “독일의 경우 이미 1940년대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수가제가 정착이 되어 왔고, 수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정책 분야에서 강한 사회적 연대와 전문가 집단의 양보를 기반으로 하는 분배적 정책이 굳게 자리 잡은 국가적 맥락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같이 한국과는 다른 국가적 배경과 맥락을 무시하고 외국 정책을 그대로 이식하였을 때 많은 부작용과 비순응성이 뒤따를 것으로 예측되며 이러한 점들을 극복하고서라도 수가제를 시행할 만큼 정책의 혜택이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구진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동물 진료비 자체를 통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과도한 금액을 청구하거나 낮은 가격으로만 소비자를 유인하는 양 극단이 적절한 경쟁시장으로 편입되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동물진료 수가제 보다는 공시제(공시제 형태 중에서도 개별병원 진료비 공시제)시행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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