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의견청취를 전문가 자문회의로 둔갑시킨 농식품부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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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7월 1일 시행되는 반려동물의 자가진료 금지를 앞두고 ‘진료허용범위 지침’ 마련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지침(안)에 ▲동물의 피하(피부 아래)에 약을 주사하는 행위 ▲수의사의 진료 후 처방과 지도에 따라 행하는 투약행위(근육 주사 등)가 담긴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지침을 만드는 이유는 “자가진료가 금지되면 우리 집 강아지에게 약도 먹일 수 없나요?”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자가진료 금지 이후에도 가능한 통상 행위를 지침으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침(안)에 담긴 ‘약을 먹이거나 연고 등을 바르는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사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피하주사의 경우 수의사의 처방·지도라는 표현이 없이 동물에 대한 모든 피하 주사를 허용하는 내용이라 문제가 심각하다. 

농식품부 담당 공무원은 “관계전문가(서울대 등 4개 수의과대학 교수)자문회의(5월 11일~12일)를 거쳐 지침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침(안) 마련 근거 중 하나가 수의과대학 교수들의 자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수의과대학 교수들은 자문회의에서 이번 지침(안)에 동의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자문회의는 열린 적도 없으며, 농식품부 담당 공무원이 교수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의견을 물었을 뿐이다. 또한 본지가 확인한 최소 5명의 교수가 우려 또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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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확인 결과, 농식품부 담당자는 5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4개 수의과대학을 방문하여 최소 5명의 수의과대학 교수를 만났다. 본지에서 직접 5명의 수의과대학 교수들과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A 교수 “피하 주사는 절대 안 된다. 내 이름 넣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 

담당자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며 “절대 내 이름을 넣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A 교수는 “일반적인 자문 과정은 사전에 미리 자료를 보내고 교수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주는데, 이번 경우에는 미리 자료도 주지 않고 개인적으로 찾아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피하주사 이야기를 꺼내 길래 피하주사는 절대 허용하면 안 된다고 했고, 인슐린 등 일부 예외 사항에 대해 수의사의 지시 아래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A 교수에 따르면, 농식품부 담당자는 “왜 교수님만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시냐. 미국에서도 허용되어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교수는 미국에 살았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무슨 소리냐, 미국에서는 주사기 하나 구할 수 없다. 미국에 있는 동안 동물 자가접종은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고 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 수의사가 왕진을 와서 주사를 놓는 경우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A교수는 “절대 내 이름을 넣지 말라”고 당부하며 농식품부 담당자를 돌려보냈다.
 

B교수 “인슐린 등 특수한 경우에 대해 수의사의 처방 및 지시에 따라 해도 된다고 말한 것” 

B 교수는 “농식품부 담당 공무원 2명이 찾아와서 관련 자료를 제시했는데, 해당 자료에 ‘수의사의 관리감독 아래’라는 내용이 있어서 동의했다”고 말했다. B 교수는 “자문회의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공무원과 만난 것이었으며, 인슐린 등 특수한 경우 때문에 수의사의 관리감독 아래 피하주사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즉, 모든 동물보호자의 무분별한 피하주사 행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B교수는 “이렇게 되면 약 사다가 직접 주사 놓는 강아지공장 같은 곳에서도 자가접종이 문제가 되지 않냐?”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담당 공무원은 “그것은 이것과 또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B교수는 “질문을 하면 피해가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C교수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설득하는 식이었다” 

C교수는 “자문회의 형식이 아니라 방문 이틀 전에 연락을 하고 찾아온 경우였다. 농식품부가 생각하고 있는 안이나 관련 자료를 사전에 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설득하는 식”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C교수는 “담당 공무원이 가지고 온 자료 중에 정맥주사-근육주사-피하주사 순으로 위험성이 줄어든다는 자료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피하주사도 감염, 봉와직염 등의 위험성이 분명이 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C교수는 또한 “담당 공무원이 의료법에서는 사람의 자가 피하주사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어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기에, 동물만 그러지 않게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허망하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C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농식품부 담당 공무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강력하게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은 “사람은 자가 피하주사 행위를 인정하지만, 전문의약품으로 약물을 관리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을 살 수 없을 뿐”이라고 설명했고 이에 C교수가 “그렇다면 수의사 처방제에 피하주사제를 포함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하자 공무원은 “그것은 따로 다룰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은 농식품부 방역총괄과가 담당하고 있고, 수의사 처방제는 방역관리과가 담당하고 있다. 

C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동물에 대한 피하주사 전면허용에 100% 반대한다”며 “수의사 처방과 지도에 따라 근육주사를 허용하는 것도 반대”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슐린 등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피하주사는 수의사 처방에 의해 불가피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정리하거나, 일반인의 피하주사 허용 전에 모든 피하주사제를 수의사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D교수 “자문회의가 아니라 의견청취였다. 이용당한 느낌이라 기분이 나쁘다” 

D교수는 “개인적으로 연락해 단순히 의견만 듣겠다고 찾아온 것이었는데, (자문회의를 했다고 하니) 이용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본인이 자문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거절했었지만 큰 문제될 게 없는 의견청취라고만 하더라. 찾아와서는 피하주사를 허용해도 수의사 처방제를 통해 주사제를 처방대상약품으로 관리하면 괜찮다고 설명했고, 근육주사 얘기는 아예 없었다”고 전했다.

D교수는 “개인적으로 대한수의사회가 관련 문제를 담당해 진행한 것으로 알고, 내 찬반의견이 무슨 영향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으며, 면담도 30분 정도 만에 끝났다. 공식적인 전문가 검토라고 볼 수 없는 형태였다”고 덧붙였다.

D교수 역시 피하주사 및 자가접종 허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D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피하주사도 자가접종을 허용하는 것도 반대”라며 “당신 아이라면 약국에서 백신을 사다 놓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더 위험한 근육주사는 말할 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농식품부가 자문회의를 했다는 교수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농식품부가 마련한 지침(안)에 대해 동의하는 교수는 한 명도 없었으며, 모든 교수가 피하주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피하주사에 대해 동의한 경우도 인슐린 등 특수한 경우에 한 해 수의사의 처방과 지도에 따라 수행하는 경우에 한 해 동의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런 의견을 듣고도 “관계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쳤다”, “전문가 검토를 받았다”고 지침(안) 마련 근거를 설명했다. 한 마디로 ‘답정너’식 의견청취를 한 뒤 “자문회의를 했다”고 발표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이에 대한 농식품부 담당자의 의견을 듣기위해 농식품부로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는 자리에 없었고 “외부 출장 중이며 저녁 늦게 돌아올 예정”이라는 설명만 들을 수 있었다.

개별 의견청취를 전문가 자문회의로 둔갑시킨 농식품부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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