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의사 처방제 약국예외조항,다시 한 번 위험성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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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메리알코리아에 대해 “메리알이 심장사상충예방약 ‘하트가드’를 총판인 에스틴에 공급하면서 동물병원에만 유통하라는 조건을 단 행위는 ‘구속조건부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며 시정명령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정명령은 메리알코리아가 에스틴의 거래상대방을 구속하는 조건으로 거래한 ‘구속조건부 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메리알이 계약을 통해 에스틴의 거래처를 제한했다는 뜻이다. 즉, 메리알과 에스틴 사이의 계약에 대한 시정 명령일 뿐이므로 확대 해석은 삼가야 한다.(이미 2015년 8월 이후로 메리알코리아는 에스틴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하트가드를 동물병원에 직접 공급중이다)

이번 시정명령을 통해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의사 처방제의 약국예외조항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심의에서 논란이 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약의 판매처’였다.

피심인(메리알코리아) 측은 “하트가드 제품은 수의사의 검사와 진단이 요구되는 약품으로,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방지를 예방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한정하여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심사에 참여한 한 수의과대학 기생충학 교수 역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 위험성을 수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심사관 측과 일부 심사위원들은 “심장사상충 예방약 성분은 주무부처(농식품부)에서 오남용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품에서 제외시킨 것 아니냐”, “수의사 처방대상 약품으로 포함되면, 피심인이 걱정하는 오남용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 오남용이 걱정된다면, 수의사가 진료를 한 뒤 처방전을 발급하면 되는 것이지, 약의 판매처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닌가(꼭 동물병원에서만 팔아야 하는가)” 등의 발언과 질문을 했다.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수의사 처방대상 약품으로 포함시키면, 약국에서 팔아도 오남용을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충 발언을 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피심인측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이미 감염이 된 동물에게 진단 없이 예방약을 먹여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약을 수의사 처방에 포함시키는 것을 함께 권고해 달라”고 심사위원들에게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행 수의사 처방제에는 약국예외조항이 있기 때문에,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처방대상 약품에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약국에서는 지금과 똑같이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을 ‘그냥’ 판매할 수 있다.

따라서 심사관과 일부 심사위원, 그리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은 모두 실효성을 거둘 수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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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처방제는 2013년 8월 2일 ‘동물용 의약품의 오·남용에 따른 내성균 출현과 동물·축산물에 약품의 잔류 등을 예방하여 축산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2017년까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원칙아래, 2013년 8월 처음 도입 당시에는 97개 성분 1,100여 품목의 동물용의약품(판매액 대비 전체 동물용의약품의 15%에 해당)만 처방대상약품으로 지정됐다. 심장사상충 예방약 성분은 이 97개 성분에 포함되지 않았다.

곧 2단계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성분 확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예정인데, 심장사상충 예방약 성분도 2차 처방대상 성분에 포함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심장사상충 예방약 성분은 주무부처(농식품부)에서 오남용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품에서 제외시킨 것”이라는 심사관의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이 심사관은 심지어 “하트가드는 단순한 구충제이고, 피심인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비전문적 발언도 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동물약국을 개설한 약사는 주사용 항생제와 주사용 생물학적 제제만 제외하면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수의사 처방 없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 약사법 제85조 제7항에 ‘약국개설자는 제6항(수의사 처방제) 각 호에 따른 동물용 의약품을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는 약국예외조항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동물용마취제와 호르몬제도 약국에서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다. 이미 동물약국을 통해 구입한 마취제가 범죄에 악용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전체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중 약 80%에 해당하는 약품이 약국예외조항에 의해 약국에서는 수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수의사처방제에 커다란 구멍이 바로 동물약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동물용의약품의 오남용을 막고 국민보건을 지키기 위해 수의사 처방제를 시행했다. 그런데 전체 처방대상 약품의 80%를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의사처방제가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까? 

공정위 심사위원들과 심사관 측은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으로 지정하면, 오남용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약의 판매처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처방대상 약품으로 지정하더라도, 약국에서는 그냥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수의사 처방제의 실효성 자체에 위협을 가하는 약국예외조항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독소 조항이다. 약국예외조항에 어떠한 명분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번 공정위 시정명령이 수의사처방제 약국예외조항의 불합리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설] 수의사 처방제 약국예외조항,다시 한 번 위험성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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