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길고양이 TNR 도입 10년,우리가 나아갈 방향/조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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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별 T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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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고양잇과 동물(Felidae)은 단독 생활을 하는데(사자 제외) 고양이(Felis catus)는 몰려다니며 집단(군집, colony)을 이룬다. 이는 고양이의 고유한 특성이라기보다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어서, 집단생활에 적응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도시일수록 고양이집단의 크기가 크고 집단 간의 거리는 좁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혼자 생활하는 고양이도 있다.

고양이는 고양잇과 동물 중 멸종위기를 겪지 않은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은 기특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길고양이의 개체 수 문제는 설치류 사냥꾼의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양이가 그냥 싫고 무서운 사람들에게 이들은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존재이다.

나 역시 ‘도둑고양이’를 길에서 만나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길쭉한 동공이 무서워 뒤통수에 소름이 돋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지내고, 길고양이에 관해 연구하며 고양이와 동고동락하고 있다.

2013년 플로리다 수의과대학에서 보호동물의학(shelter medicine)을 공부하기 위해 방문연구원 신청을 할 즈음, 주변에 수의사 선배는 ‘그런 공부 하러 미국까지 가니. 다녀와서 캣맘되려고?’라고 탐탁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수의학분야에서는 생소하지만, 인간과 동물 관계의 수의학적 접근에 있어서 보호동물의학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배우고 싶었다. 역시 동물보호소 문제뿐만 아니라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에도 다양한 전략과 과학적 접근법을 배울 수 있었다.

다녀와서 2015년 한 지자체 세미나를 통해 미국에서 수행하는 High-quality, High-volume spay/neuter 모델을 적용한 TNR에 대해 소개하였다. HQHVSN 모델은 하루에 많은 수의 길고양이를 중성화 수술하지만 (High-volume) 멸균기구사용, 소독, 의료기록관리, 적절한 마취, 진통의 조절, 표준화된 수술기법사용, 예방접종, 구충 등 수술의 질은 향상시킨 (High-quality) TNR 방식이다.

당시에 돌아오는 것은 ‘저건 미국이니까 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시를 비롯하여 관악구, 용산구, 중랑구 등에서 포획된 길고양이 다수를 하루에 중성화 수술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 동물보호과에서 진행하는 ‘서울시 중성화의 날’은 연간 4회에 걸쳐 임시수술공간에서 캣맘의 포획-회복-방사활동, 수의학 분야의 자원봉사로 구성된 일회성 TNR (mass TNR)이다. 2016년 한국고양이수의사회에서 111마리로 포문을 열어주었고 필자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진행하고 있는 2017~2019년의 기록은 9번 만에 427마리의 길고양이를 중성화 수술하였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이 발전하였다.

1. 캣맘은 최대한 길고양이를 많이 포획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교육하며 포획률을 향상시켰고 수술 후 돌봄에도 노련함이 생겼다.

2. 서울시는 포획과 방사에 필요한 차량을 지원하여, 더욱 많은 수의 길고양이를 중성화 수술현장으로 이동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3. 또한, 서울시는 수술에 필요한 기구, 종합 백신, 광견병, 내외부 구충제 등을 지원하고 행정절차에 대한 책임자 역할을 하였다.

4. 중성화수술 과정에서 멸균된 기구 사용, 표준작업절차(Standard Operating Procedure) 준수, 의료기록지작성, 사전교육을 통해 대량 TNR의 수준을 향상시키며 High-quality, High-volume spay/neuter model을 구현하였다.

5. 의료기록지 작성을 통해 해당 고양이들의 건강상태, 개별적으로 시행한 추가 처치에 대한 데이터를 누적하였고 캣맘에게 고양이 개체별 건강 정보를 공유하며 신뢰를 얻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하면 길고양이 숫자는 줄어들까?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의 뉴버리포트(Newburyport)는 1992년부터 2.5년 동안 300마리의 길고양이를 집중적으로 중성화시키고 관리하였다. 1998년 6마리의 새끼 길고양이가 발견(어미 Miss Witch와 Scarlett)되어 모두 입양시키며 이후 ‘kitten-free’를 선언하였다. 2009년 마지막 길고양이 Zorro(16살 추정, Miss Witch의 자손)를 끝으로 그 지역에 길고양이는 사라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내용은 길고양이 TNR의 효과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그 외에도 여러 연구를 통해 TNR을 통한 개체수 감소 효과를 입증하였다. 이러한 사례의 공통점은 목표지역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수술을 했다는 점이다.

길고양이 관련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산발적으로 시행해왔던 TNR을 최근에는 고양이군집(집단, colony) 단위로 실시하는 것이 개체수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것은 고양이집단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의 중심을 정하여 집중적으로 포획하고 중성화시키는 ‘지역단위 TNR’이다 (표1).

군집단위 TNR을 실시하면 그 집단의 고양이는 외부로 이주하는 경향이 낮아진다. 반면 외부의 길고양이는 번식과 먹이활동을 위해 지속해서 유입되기 때문에 군집단위 TNR을 실시했는데 이상하게 고양이 수가 늘었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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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선택할 때는 큰 길을 구획으로 나누는 것이 좋고 동물보호관리시스템 상에 길고양이가 많이 들어오는 지역(특히, 봄과 가을)을 동 단위에서부터 분석하고, 그중에서도 길고양이와 관련된 민원이 많은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전략에 필수적인 것은 다수의 고양이를 중성화수술을 시킬 수 있는 공간과 캣맘의 협조로 포획한 길고양이를 안전하게 운반해줄 수 있는 운송시스템이다(표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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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수의 고양이를 중성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경험하였고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하루에 40마리 이상을 지속해서 수술하고 안정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서울시 중성화의 날이 진행된 3년간 변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빈 건물을 찾아다니며, 개인차량에 수술기구와 소모품, 약품을 실어나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공간을 ‘길고양이 중성화센터’라고 가칭해본다.

길고양이 중성화센터는 수의사에게 전혀 위협적인 경쟁상대가 아니며,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과 공중보건 향상을 위한 나라의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캣맘을 비롯한 지역 주민이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불신과 논쟁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나아가 중성화수술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지역 동물병원의 중성화수술 증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기획 의도에 맞게 표준절차를 준수하며 참여해준 ‘서울시 중성화의 날’ 자원봉사자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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