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늘어나는 동물병원 규제…수의사는 적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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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 수의사법 개정안, 동물진료비 표준수가제 도입 수의사법 개정안,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고지제 및 공시제 도입 수의사법 개정안, 동물진료항목 표준화 및 동물병원 진료비용 의무 고지 수의사법 개정안. 최근 1년간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이다. 모두 직접적으로 동물병원 진료비 정책에 영향을 주는 법안이다.

부가세를 부과하며 ‘동물병원 진료에는 공공재적인 성격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정부가 이제는 오히려 동물병원 진료비에 규제를 가하려고 한다. 규제가 철폐되기는커녕 오히려 규제가 늘어간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진료부 발급 요청 시 거부할 수 없는 수의사법 개정안, 수의사의 진료부 또는 검안부의 보존 의무를 강화하는 수의사법 개정안도 발의되어 논의를 앞두고 있다.

동물 미용과 호텔링 서비스를 하는 동물병원은 작년부터 ‘동물미용업’과 ‘동물위탁관리업’이라는 별도의 영업 등록을 하고 시설 기준을 갖춰야 한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관련 시설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반려동물 관련 영업자에 대한 보수교육 규정까지 신설(매년 1회 3시간)되어 보수교육까지 이수해야 한다. 기존 수의사 연수교육(연간 10시간)에 추가적인 교육 이수가 의무화된 것이다.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가 지역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인체용의약품 수불대장’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동물병원에서 동물 진료를 위해 사용하는 인체용의약품은 의약품도매상이 아닌 약국(소매상)에서 구입해야 한다. 수의계에서는 예전부터 “이러한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동물병원에서도 인체용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도매상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2014년에는 청와대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 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이 문제가 직접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국민체감형 규제개혁 내용’ 20가지 중 인체용의약품 동물병원 공급 문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관련 약사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수의계는 여전히 이 규제 개선을 원하고 있다. 인체용의약품을 도매상이 아닌 약국에서 사는 데에는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규제를 풀면, 유통 경로도 단순해지고, 의약품 공급도 개선되며, 그에 대한 이익은 동물과 동물보호자가 얻게 된다.

2017년에도 관련 건의가 보건복지부에 전달됐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는 ‘인체용의약품 수불대장’ 파악을 농식품부에 요구했다. 동물병원에서 얼마나 인체용의약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라지만, 사용현황 파악과 공급경로 개선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약국에서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동물병원 개설자에게 판매한 의약품 관리대장’을 조사함으로써 현황 파악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체용의약품 공급경로 개선이라는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더니, 수불대장 자료 요구라는 또 다른 규제가 오고 말았다. 일선 동물병원에선 현실성이 떨어지는 요구에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

농식품부는 조만간 동물병원 현황을 전국적으로 실시간 파악하는 ‘동물병원 정보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매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동물병원 현황에 대한 일제 조사를 하고 있지만 실시간 현황이나 폐업정보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시스템이 도입되면 각 동물병원의 수의사법 위반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현재 정부는 동물병원 정보를 현행화하는 한편 과태료나 행정처분 등 수의사법 위반 이력을 등록하고 있다. 수의사법 위반 이력까지 파악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의사를 감시의 대상으로 보는가”라는 불멘소리가 나온다.

20년도 아닌, 딱 2년 전과 비교해보자.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관련 규제도 계속 신설되고 있다.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높아진 기준에 따라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당연한 의무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정부는 수의사를 전문가로서 바라보고 있는가? 전혀 아닌 것 같다. ‘구제역 백신접종업 도입’ 같은 수의사 고유의 권한을 침범하는 제도를 추진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필요할 때는 수의사 동원령까지 발동해서 수의사를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개인 사업에 일절 지원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과도한 규제로 수의사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이쯤 되면 현 정부가 수의사를 전문가 집단으로 생각하는지, 적폐세력으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 수의계 관계자의 한탄이다.

정부는 과연 수의사를 동물보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규제를 통해서 제압해야 할 적폐세력으로 보고 있는가.

[사설] 늘어나는 동물병원 규제…수의사는 적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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