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9 ― 임동주 수의사

등록 : 2018.01.31 15:17:20   수정 : 2018.02.12 17:08:47 데일리벳 관리자

[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임동주 수의사

9. 말, 교통과 전쟁의 혁명을 가져온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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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로부터 받는 여러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면, 오늘날의 화려한 문명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문명이 동물과 함께 만들어졌던 만큼, 동물이 인류 문명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동물을 꼽자면 단연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말의 조상은 숲 속에서 나뭇잎을 먹고 살았던 작고 겁 많은 동물이었다. 말을 최초로 사육한 것은 B.C. 4천 년경 유라시아 초원지대와 바빌로니아 일대로 여겨지고 있다. B.C. 3천 년대에 수레를 발명한 수메르인들은 말로 하여금 수레를 끌도록 했다. 이때는 아직 말이 크지 못해서 사람을 태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수레를 끌거나 짐을 옮기고, 때로는 농사에도 사용되는 말의 가치는 대단히 커서, 말을 다루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게 된다. 사람들이 말 위에 직접 올라타게 된 것은 B.C. 1천 년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유전자 변이와 의도적인 교배에 의해 큰 말이 생산되면서부터이다. 이전까지 말은 힘이 세지 않아 덩치가 작은 사람이 타도 말의 허리가 아닌 엉덩이 쪽으로 타야 했다. 기동력과 체력도 현재의 말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말을 탔고, 가장 즐겨 탄 사람들은 유목민들이다. 사람이 양을 걸어서 돌보면 혼자서 겨우 150~200마리 정도밖에 돌보지 못하지만, 말을 타면 1,000마리까지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면 양떼를 노리는 늑대를 쉽게 쫓아낼 수도 있다. 광활한 초원지대는 말이 자라던 곳이고, 말을 타기도 좋은 곳이다. 유목민들에게 말은 생활의 동반자로, 가장 소중한 가축이 되었다.

말은 시속 60〜70㎞로 자동차보다는 느리지만, 사람에 비하면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는 42㎞ 거리를 시속 20㎞ 정도로 달릴 수 있지만, 그 속도로 계속 달릴 수는 없다. 1,000m를 전속력으로 달리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심장이 터질 듯 한 고통을 호소할 것이다. 하지만 말은 몇몇 짐승들보다는 단거리에서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장거리에서는 오래도록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을 갖고 있다. 이것이 말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말 위에 탄 사람은 자신의 발로 달리는 것이 아닌 만큼, 말이 지치면 조선시대 파발마처럼 다른 말로 갈아타고 하루에도 많은 거리를 주파할 수 있다. 이처럼 말은 속도와 거리 혁명을 가져왔다.

인간은 말을 타게 됨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좌견천리, 입견만리(坐見千里, 立見萬里)라는 말이 있다. 앉아서 천리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일어설 경우에는 만리 밖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을 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말이 귀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3개월을 걸어서 명나라와 청나라의 수도였던 북경에 오고 갔다. 조선 사람들이 본 세상은 중국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다녔던 고구려 사람들은 초원길을 달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까지 달려가, 동서 교역을 주도했던 소그드왕국과 외교 교섭을 했다. 고구려인이 바라본 세계는 광활한 아시아 대륙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온 세상을 다니는 요즘 사람들과, 해금(海禁)정책 탓에 넓은 바다로 나가지 못했던 조선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말은 자동차, 비행기 등이 발명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던 소중한 친구였다.

인간은 말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먼 거리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원길, 실크로드와 같이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인류 문명을 더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말 덕분에 소식을 더 빨리 전달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물자들을 더 신속하게 옮길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인간의 행동반경은 크게 넓어졌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인간이 말을 타게 됨에 따라, 사냥의 효율도 크게 높아졌다. 빨리 달리는 사슴을 사냥할 수도 있게 되었고, 호랑이와 같은 맹수 사냥도 좀 더 안전해졌다. 화살이 떨어졌을 때에도 말이 있으면 빨리 도망갈 수 있었다. 사냥터도 넓어졌고, 더 많은 짐승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을 타고 사냥하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냥감을 잡을 수 있게 되어 수렵민의 삶도 나아졌다. 

B.C. 480년경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은 『마술(馬術) 입문』에서 말을 타는 방법을 포함해 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말에 대한 관심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순임금에게는 가축을 관리하는 ‘백예’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가 말을 잘 번식시키자, 순임금은 그를 제후로 봉하고 성씨를 내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B.C. 9세기 주나라 효왕도 말과 가축을 좋아했는데, 그의 곁에 말 사육과 번식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비자(非子)라는 인물이 있었다. 비자가 왕의 말을 대량으로 번식시키자, 왕은 그를 한 지역의 제후로 삼았다. 이런 기록들은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랑받는 동물이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말을 안전하게 타려면 말을 조종하는 고삐와 함께, 등자라는 발걸이와 편하게 탈 수 있는 안장이 있어야 한다. 이 가운데 고삐가 가장 먼저 등장했고, 안장이 그다음, 마지막으로 등자가 등장한다. 최초의 안장은 B.C. 5세기경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에서 등장했다. 처음에는 두 개의 긴 가죽방석을 엮어, 그 속에 건초나 털을 넣고 나무로 된 고리를 달았다. 그리스인들은 안장 없이 말을 타거나, 천에 가죽 띠를 묶어서 사용했다. 그러다가 서기 1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로마에서 안장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등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대체로 3〜4세기에 고구려와 북중국, 몽골일대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현대인들이 승마를 배울 때, 등자 없이 말을 타기가 어렵지만, 어린 시절부터 말과 가깝게 지낸 몽골인들은 아이들에게 승마를 가르칠 때, 등자 없이 타게 한다. 용맹한 초원의 전사로 키우기 위해 일부러 악조건을 감내시키는 것이다. 등자는 말을 탈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보다 쉽게 말을 탈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유용한 발걸이 도구다. 이렇게 다양한 승마용 마구가 개발되면서 말은 가장 사랑받는 교통수단이 되었다. 

말은 전쟁 양상을 크게 바꾼 동물이기도 했다. 말을 탄 기병의 등장은 전쟁사를 바꾼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말을 탄 기병은 보병에 비해 3~10배의 위력을 발휘한다. 사람이 말을 타는 순간, 위력은 엄청나게 강해진다. 사람은 말을 키우고 활용함으로써,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었다. 더 빨리 이동하고, 더 많은 짐을 옮기고, 더 강한 전투력을 갖게 되었다. B.C. 1천 년 무렵부터 보이기 시작한 기병은 말이 끄는 전차보다 빠르며, 순간 회전이 자유롭고 좁은 길에서도 운신이 가능하다. 또 2명 이상이 타야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전차와 달리 혼자서도 전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속도가 느린 값비싼 전차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다. 전차에 비해 기병은 유지비용도 적다. 마르고 평탄한 대지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전차와 달리, 기병은 산길 등 다양한 지형에서도 활용될 수 있어 운신의 폭이 넓다. 또한 실전에서도 빠른 속도로 전차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고, 다양한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도 있어 기병은 전차병보다 효과적인 병종이다. 기병이 전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자 전차는 역사 속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기병의 등장과 함께 유목민들은 농경민에 비해 군사적으로 월등한 우위를 갖게 된다. 말을 타는 것이 일상이 된 유목민의 기마술은 농경민에 비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스키타이를 시작으로 흉노, 훈, 돌궐, 거란, 몽골 등 유목제국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병 때문이었다. 만약 칭기즈칸이 말을 탈 줄 몰랐던 평범한 농부였다면, 그토록 거대한 제국을 결코 건설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총과 세균과 철제무기가 거론된다. 여기에 하나 더 승리의 요인을 든다면 말이라고 하겠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말을 탄 유럽인들을 괴물이나 신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쟁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부가 갈렸던 것이다.

값비싼 말을 소유한 기병은 보병보다 여러모로 우월한 자들이다. 또한 전투력에서도 보병보다 앞섰기 때문에 기병은 대체로 상급 군인의 신분을 누렸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 아래에 기사라고 하는 전문 군인이 등장해, 서민들의 지배계급으로 군림했다. 그러다 기병은 장갑차와 탱크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진다. 하지만 기병이 수천 년간 세계 전쟁사를 바꿔왔고,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주역의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말은 초식동물이며 겁이 많은 동물이다. 함부로 상대를 공격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런데 말이 호랑이를 추격하기도 하고, 포탄이 날리는 전쟁터를 누비기도 한다. 말이 혼자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은 말을 탄 사람과의 신뢰와 교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말을 잘 다루려면 정서적 교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승마 경기도 그렇다. 사람이 말에게 믿음을 주면, 말도 사람을 신뢰한다. 그래서 말도 사람을 믿고, 심지어 무서운 맹수를 추격할 수 있다.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면 무서울 것이 없는 천하무적의 생명체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말을 타는 유목민인 스키타이 사람들을 보고 크게 놀라, 반인반마(半人半馬)인 켄타우로스 종족을 상상해냈던 것이다. 당시 그리스에는 말이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난폭한 자들이라고 불렀지만,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케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난 영웅들의 대부분을 제자로 둘 만큼, 사냥, 의술, 음악, 예언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인물로 전해오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케이론의 경우처럼 배울 바가 많은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다. 말은 인류에게 엄청나게 소중한 동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의학의 역사도 인간에게 오랫동안 가장 소중한 가축이었던 말을 치료하는 마의(馬醫)로부터 시작했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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