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의직공무원이 심리상담을 시작한 이유는? 손덕화 수의사의 도전
검역 공무원·심리상담사·번역가..수의사의 경계를 넘는 커리어

수의사의 역할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요?
손덕화 수의사는 수의직공무원으로 공항에서 동물검역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임상심리사·전문상담사로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상담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국가사역견의 트라우마 치료에 EMDR을 적용하는 연구를 준비하며, 수의학과 심리학을 잇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공직에서 마주한 민원과 압박 속에서 시작한 심리상담 공부는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고, 그 배움은 다시 타인의 회복을 돕는 힘으로 확장됐습니다. 공항만 국경 검역, 심리상담, 번역과 소설 창작, 그리고 반려동물 정신의학이라는 미개척 분야까지 도전한 손덕화 수의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수의사 공통 질문입니다. 어떻게 수의사가 되셨나요?
아버지의 권유로 수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치와와 ‘하나’가 보이지 않아 정신없이 찾으러 멀리까지 갔다가, 과속하는 트럭에 치이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남동생들이 데리고 나갔던 치와와 ‘하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나’ 이전에 ‘민아’라는 치와와를 잃어버린 적이 있어‘하나’마저 잃게 될까 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사고 이후 뇌진탕으로 한 달 반 만에 깨어났지만, 사고 전의 일상을 찾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건은 제 인생의 큰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동물에 저의 대한 간절한 마음과, 직업의 전문성을 보고 수의학과 진학을 권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설득으로 수의대에 입학한 것에 현재 만족합니다.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 시절 소원도 검역본부 입사 후 방송통신대에 입학하며 이루었습니다.
Q. 현재 수의직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시는데, 수의대생 시절부터 공무원이 되고 싶으셨나요? 졸업 후 공직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수의대 시절엔 전공보다 영어 회화 동아리 활동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졸업할 즈음인 1997년 IMF로 나라 경제가 꽁꽁 얼어붙게 되어, 1998년 졸업 당시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대학시절 공부했던 영어 실력으로 비씨카드 국제승인실에서 6개월간 일을 하다 ‘98년 8월에 수의과학검역원에 입사했습니다. 수의직 공무원을 꿈꾸었던 적은 없었지만, 필연처럼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수의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현재 하는 일을 소개해 주신다면?
김해공항사무소 동물검역팀장으로 사무소 업무 전반과 동물검역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사무소의 동물검역 업무는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오가는 동축산물 검역, 축산관계자 출입국 신고, 부산국제우체국 우편물 검역 등입니다.
Q. 수의사로서 특이하게 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심리학사에 임상심리사, 전문상담사 자격도 있습니다. 수의직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데, 왜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하셨나요?
신설과였던 동물약품관리과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저는 동물용의약외품 소독제와 동물용개체인식장치 등 동물용의료기기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민원이 정말 거세었습니다. 업무적인 걱정으로 잠을 못 자는 날도 많았고, 자꾸만 위축되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일을 겪고도 훌훌 털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동료도 보였습니다. 어떤 차이일지 고민하다 ‘내 아이는 나와 다르게 자신을 믿고, 용기 있게 전진했으면’하는 바람으로 2011년 상담심리를 전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대학 부설 상담소에서 심리검사와 상담을 받으며 저 자신을 이해하고, 미해결된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비로소 ‘나’로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행복을 ‘찰나의 느낌’이라고 여겼습니다.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금세 증발해 버려 아쉬웠다면 심리상담을 공부한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이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Q. 주로 상담하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또한 선생님께 상담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울, 공황장애, 불안, 대인관계의 어려움, 상실, 애도 등 전반적인 심리적 어려움을 다룹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 애도 상담 수요도 많습니다. 저는 임상심리사 자격이 있어 대부분의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담 전 심리검사 결과를 분석하고 상담에 활용합니다. 현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외상기억, 결핍 등을 정신역동치료와 EMDR 트라우마 치료로 해소하고 현실치료상담으로 현재의 전반적인 기능을 개선하여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EMDR(안구운동민감소실재처리요법)은 프랜신 사피로 박사가 개발한 트라우마 치료법으로 과학적 근거가 명확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기억은 안전하게 처리되어 뇌신경망에 안전하게 통합되나, 편도체와 해마에 있는 신경 경로에 저장된 트라우마 기억은 적응적인 기억망에 통합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 치료법은 양측성 자극과 트라우마 목표기억 연상을 통해 기억을 재처리합니다. EMDR은 단일외상을 3~6회기내 치료하며, 복합외상 시 12회기내 안정적으로 처리합니다.
2020년부터 공무원 겸직허가를 득하여 근무 외 시간에 심리상담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3년에 걸친 학교폭력 트라우마로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 20대 초반의 트라우마 사건으로 20여 년간 정신과와 상담치료를 받았으나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내담자를 각각 EMDR 7회기, 10회기내 치료한 경험이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손덕화’를 검색하거나, 숨고에서 ‘손덕화’를 검색해 지정 상담을 요청하시면 되며, 숨고 프로필에서 그동안 실시했던 상담 활동에 대한 리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책도 여러 권 번역하셨습니다. 번역하신 책들을 소개해 주세요.
번역을 따로 공부한 적은 없으나, 전문상담사 필요 요건인 연구실적 충족을 위해 번역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위기와 기회 사이(뇌과학에서 찾은 청소년기의 비밀)’는 청소년기 뇌의 특성과 부모로서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청소년기 뇌는 분명하게 성인의 뇌와 다르며, 영유아기와 비슷한 가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몸이 성장하듯 뇌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사회에서는 성인의 몸을 가졌다고 하여 성인의 시각으로 청소년을 바라보고 처벌할 것이 아니라, 이 시기 성장하고 변화하는 뇌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양육과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무자비한 여자들(최고의 쌍년을 찾아라)’은 소설책으로 출판사에서 요청하여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퇴물 취급을 받는 오육십 대 여배우들이 다시 무대로 나오며 벌어지는 해프닝에 대한 책입니다. 무척 야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소설을 번역하며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은 꿈을 일부 실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삶이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고 뭔가 빠져있다면(마음을 치유할 심리치료사의 핵심 아이디어)’은 심리학 이론 전반에 대한 교양서로 심리학의 역사와 현대인의 불안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 MBTI를 소개한 선구자이며, 서강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하신 김정택 신부님께서 감수하셨고 정교하고 읽기 쉽게 잘 번역되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100여 명의 심리학자의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했습니다. 가장 애정하는 책입니다. 유튜브 채널 [책한민국]에 소개되기도 했죠.
Q. 공부에 대한 열정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건국대학교 응용임상수의학과 대학원에 합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서울대 수의대에서 수의학석사(수의공중보건학) 학위를 취득하셨는데, 응용임상수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항에 근무하며, 탐지견 중 한 마리가 탐지 활동 중 트라우마로 업무에 다시 복귀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도태되는 사건을 목격하였습니다. 당시 한국EMDR협회에서 EMDR 기본과정 수련 중이어서 한양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김석현 교수님께 이 치료가 반려동물에 적용 가능한지 여쭤보았고, ‘쥐’를 대상으로 그 효과를 검증한 실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가적인 논문 조사를 통해 말에서도 EMDR이 적용된 사례를 찾았습니다. 수의사로서의 경력과 심리상담전문가로서의 경력을 통합하고 싶은 열망을 오래전부터 키워왔는데, 동물에서 EMDR을 적용한다면, 반려동물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MDR을 공부한 이후, 반려동물에게 적용하기 위해 논문 조사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이며, 어느 곳에서 학위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건국대학교 응용임상수의학과가 이 과제를 연구할 수 있는 전공이라 여겨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내 가족이 트라우마로 고생한다면,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일상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나의 반려동물이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면, 행동 교정에 앞서, 원인 치료인 트라우마 치료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국가 예산으로 양성된 국가사역견이 트라우마로 별 조치 없이 현장에서 도태된다면 큰 손실입니다. EMDR 적용으로 회복시켜 현장에 다시 복귀시킨다면, 국가에도, 국가사역견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Q. ‘국가사역견 트라우마 치료 모델 개발 및 보급’이라는 연구 과제로 인사혁신처 석사(야간)과정에 선발되었습니다. 반려동물도 EMDR 치료가 가능한 걸까요?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려동물에게 트라우마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의 단서가 되는 자극에 과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보호자 또는 핸들러와 인터뷰를 통해 목표기억을 탐색하고, 양측성 자극과 목표기억에 동시에 노출시켜 트라우마 기억이 적응적인 기억망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쥐와 말에서 EMDR의 효과가 보고된 것으로 보아, 뇌에서 기억의 처리 방식은 사람과 동물에서 유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반려동물에서도 EMDR 치료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쥐와 말보다 실험설계는 더 용이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Q. 수의사로서 정말 드문 커리어를 갖고 있습니다. 혹시 진로 고민이 많은 젊은 수의사나 수의대생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여러 가지 공부(수의학 학사, 수의공중보건학 석사, 영어영문학, 상담심리학, 문예창작학)를 해보니 모든 학문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다른 분야에서도 긍정적 영향이 따라옵니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거나 멍때리는 시간, 생각이 흘러가는 곳을 바라보십시오. 가장 창의적인 순간입니다. 내가 가장 즐거울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가슴 뛰는 일을 하다 보면, 그것과 연결된 나의 일상에도 리듬이 흐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막연히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2020년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한 이후, 대일 수출돈육 도축검사를 소재로 쓴 소설 ‘이분도체, 큰 칼’이 교내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2022년도에는 HPAI 역학 시료 채취 출장을 소재로 쓴 소설이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등단 소설가의 꿈을 위해 활동 중인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소설동아리 지도교수인 김종광 소설가와 문우들은 도축장, 닭, 오리 농장, 저수지, 철새도래지, 가금 중계상인 등이 등장하는 제 소설을 매우 흥미로워합니다. 특히 HPAI 역학조사와 시료채취 업무를 다룬 소설을 읽고서는, ‘수의사가 이렇게 고생하는지 몰랐다’라고 말합니다. 수의직 공무원의 처우와 생활을 반영하고, 더 나아가 생명을 다루는 핍진성 있는 소설을 써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이 가장 간절한 소망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현재 하고 있는 일인 공무원수의사, 심리상담, 소설가 도전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2018년부터 블로그에 감사일기를 포스트 하기 시작하며, 수의직 공무원의 일상, 상담학회 수련, 시험정보 등을 나누었습니다. 블로그로 연락해 주신 분 중에는 수의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심리상담에도 관심이 있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단기 목표는 1급 전문상담사가 되는 것이며, 퇴직 후에 수의사를 대상으로 상담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연수기관을 운영하고자 하는 포부가 있습니다. 또한 미개척 분야인 반려동물 EMDR 치료 모델을 개발하고, 임상에 활용하고자 하며, 수의사, 가축방역 종사자, 반려동물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상담모델도 개발, 활용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반려동물 보호자 대상 상실, 애도 상담과 반려동물과의 관계에 연계한 자기 이해 집단상담 등을 운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