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킴 힐러스] 미국수의전문의가 한국에 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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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수의내과전문의(DACVIM, oncology)인 킴 힐러스 수의사(사진)는 몇 달 전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미국수의전문의가 왜 한국에 온 걸까요? 데일리벳에서 킴 힐러스 수의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수의사 인터뷰 공통질문이다. 왜 수의사가 되었나?

어릴 때 항상 동물을 좋아했다. 수의사라는 영어 단어(Veterinarian)가 꽤 어렵지 않나?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의사라는 단어 철자를 정확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Q. 수의대 입학 전 예술(art)과 생물학(biology)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예술 전공의 경우 수의학과 큰 연관이 없을 것 같은데, 예술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고 점차 상태가 악화되셨다. 당시 생물학 전공을 하고 있을 때인데, 과학으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점을 깨달으며 한계를 느꼈다. 그렇게 생물학 전공을 하면서 동시에 예술 과목을 조금씩 들었다. 과학은 좀 딱딱한 과목이었지만, 예술 과목은 달랐던 것 같다.

어머니가 더 아파질수록 점점 예술 과목 수업을 더 많이 듣게 됐고,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예술(drawing and painting) 과목을 복수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생물학과 예술 전공을 모두 했다.

예술 전공과 수의학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약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성공한 수의사 중에는 창조적인 사람이 많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새로운 치료를 시도해보는 분들이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는 뜻이다. 예술 전공이 그런 쪽(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Q. 미국수의전문의와 관련된 질문이다. 미국수의전문의 과정에 관심을 갖는 한국 수의사와 수의대 학생들이 여럿이다. 미국수의내과전문의(oncology)로서 미국수의전문의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다들 알겠지만, 미국에서 수의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4년간 기초전공을 해야 한다. 그 뒤 수의대에 입학하여 4년간 수의대를 다녀야 한다. 수의대 졸업 후 수의사가 되면, 바로 필드에 나가서 일하는 경우와 인턴십을 하는 경우로 나뉜다.

인턴을 하기로 결정하면, 수의과대학 동물병원과 일부 대형 리퍼 동물병원에서 1년간 인턴쉽을 하게 되는데 수의대 졸업생 중 정식 인턴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이미 수의대를 졸업하는 동안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약 2억 정도의 대출을 갖게 되므로 빨리 필드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갚기 위함이다. 또한, 인턴십 과정 자체도 너무 어렵고 힘들다. 일을 많이 하므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다. 과정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동물의 죽음도 자주 경험한다. 응급상황도 많이 겪고 잠도 잘 못 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배우는 점도 많다. 레지던트들과 함께 일하고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므로 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

1년 인턴십 과정이 끝나면, 다시 필드로 나가는 경우와 레지던트를 하는 경우로 나뉜다. 나는 콜로라도주립대학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했는데 3년 과정이다. 미국수의내과전문의 중 종양학 전공은 현재 500명이 조금 안 된다. 얼마 전까지 453명이었던 것 같다.

레지던트 과정도 당연히 너무 힘들다. 2년 차에는 이틀 동안 필기시험을 보고, 3년 차에는 전문의 시험을 본다. 이것도 최소 이틀 동안 진행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도 당연히 써야 한다. 따라서 대학 입학 후 미국수의전문의가 되기까지 최소 12년이 걸린다.

전문의를 하려면 그 과목을 진정으로 좋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진료 과목 환자만 만나고, 그 진료만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귀 진료도 안 보고 피부 진료도 안 본다. 따라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수의과대학 학생일 때는 종양을 전공할 생각이 없었지만, 결국 암에 대해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내과전문의 중에서도 종양으로 세부 전공을 택했다.

Q. 최근 한국에서도 각 임상 과목별로 전문의 과정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과정의 경우 자격 조건이나 공신력 등에 대해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수의과대학 동물병원 대학원생 진료 투입 관련 논란 등 한국의 상황을 듣고) 한국 수의과대학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만들려는 이유는 이해한다. 하지만,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 수의사 중에서 미국수의전문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전문의 과정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수의전문의가 되면 최소 연봉이 10만 달러 정도로 시작되는데,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생활을 포기한다는 점도 있을 것이고.

따라서 정부나 협회의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기초 과목의 박사 과정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부나 회사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추후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서 활동하기도 하는데, 그런 걸 참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Q. 한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1993년에 한국에 한 번 와서 2주간 여행했는데 그때 느낌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수의대 입학을 1년간 연기하면서까지 1997년에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살기도 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 뒤에 미국으로 돌아가 수의대에 진학했다.

내가 만약 미국으로 입양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한국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40대 중반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은퇴하기도 한다. 일종의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한국에 온 것도 있다. 약간 미친 거다(웃음).

미국에서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지금은 돈을 거의 못 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해마루동물병원에서 컨설턴트로 일주일에 하루 일을 한다. 한국 수의사면허가 없으므로 직접진료를 할 수는 없고, 내과 수의사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의사들에게 조언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응급의학과도 자원봉사 형태로 돕고 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10년 정도 있고 싶다. 더 안전한 나라기도 하고. 당장 미국처럼 총이 없지 않나?(웃음)

미국에도 여전히 내 병원이 있다. 다른 수의사에게 병원을 맡겨둔 것은 아니고 가끔 미국으로 돌아가서 관리한다. 대신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환자들은 이메일로 관리하고 있다. 관리하는 환자들 모두 암 환자들인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12월 2일 서울대에서 열린 수의사의 정신건강 세미나에서 잠시 이야기를 한 킴 힐러스 수의사. 미국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수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동물환자를 살릴 수도 없고, 모든 보호자를 기쁘게 할 수도 없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흘려 보내라"고 조언했다.
12월 2일 서울대에서 열린 수의사의 정신건강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 수의사들에게 조언한 킴 힐러스 수의사. 미국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수의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동물환자를 살릴 수도 없고, 모든 보호자를 기쁘게 할 수도 없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흘려보내라”고 조언했다.

Q. 혹시 수의사로서 삶의 비전 같은 것이 있을까?

가르치고 봉사하는 것이 좋다(teach and volunteer). 아마 이 2가지가 좋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수의사의 삶의 질과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한국 수의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을 스스로 잘 돌봐야 한다(Take care of yourself). 수의사로서 당연히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수의사는 신이 아니므로 모든 것을 다 컨트롤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돈에 집착하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동물을 단순히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치유하는 사람이다(not cure, but heal).

(수의사의 정신건강과 관련해서) 미국에서 수의사는 매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살률이 높은 직업이다. 한국은 가뜩이나 자살률이 높은 국가이지 않나?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기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하고 힘들면 주변에 말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수의사이기 때문에 자살할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도 악플 때문에 자살한 수의사가 있다. 그러지 마라. 그럴 때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숨을 쉬어라. 우리는 단순히 남을 기쁘게 하려고 수의사가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동물을 치료하고 살리는 직업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인터뷰:킴 힐러스] 미국수의전문의가 한국에 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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