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교육을 원한다④] 가금 임상:손영호 반석가금진료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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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과대학협회 교육위원회가 2월 12일 회의에서 ‘한국의 수의사상’이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인터뷰 시리즈 제목을 변경합니다. 편집자주)

한국 수의학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수의사로 만들어내느냐’로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에서는 최근 수의학교육의 졸업역량(핵심역량)을 정의하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했습니다. 졸업까지 어떠한 역량들을 갖춘 수의사가 될지 규정한 후 그러한 역량을 실제로 갖출 수 있도록 대학교육을 바꿔나간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졸업역량’을 규정하는 일은 수의학교육 개선의 시작점이 됩니다.

수의사는 임상뿐만 아니라 방역, 축산물위생,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임상만해도 반려동물, 산업동물, 야생동물 등 축종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각 분야마다 요구되는 역량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들 또한 졸업역량에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데일리벳에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들을 만나, 현장에서 바라보는 수의학교육 개선점에 대해 들어보는 [이런 교육을 원한다]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제4편은 가금 임상 분야입니다. 1998년부터 가금 임상수의사로 활동하면서 최근 6년간 가금수의사회장을 역임해 온 손영호 반석LTC 대표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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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수의사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손영호 반석LTC 대표

Q. 가금 임상수의사의 업무를 살펴보고 여기에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이를 기르기 위해선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순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반석가금진료소에서 가금 임상수의사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그려주신다면

반석LTC는 농장과 계약을 맺고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반석LTC에서 본인을 포함한 임상수의사가 주 1회 방문하여 종합적인 질병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가에서는 그에 대한 자문료를 지급하는 형태다.

한 번 방문하면 농장 상황을 점검하고 정기검진이나 상담을 진행하는데 2~3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반석LTC와 계약된 산란계 농가가 50만수에서 1, 2백만수에 이르는 대형농장이라 계사, 계군별로 일일이 체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폐사축을 부검하거나 채혈검사를 진행하는 것 외에도 영양, 환기 등 사양관리측면도 점검한다. 때에 따라 농장주를 교육하거나 가금산업, 방역 관련 정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종합 컨설팅이다.

특히 매월 진행하는 정기 채혈검사는 반석LTC의 강점 중 하나다. 혈청학적 모니터링을 꾸준히 실시하기 때문에 어떤 질병이 터졌을 때도 원인을 빠르게 도출해낼 수 있다.

사실 이처럼 농가와 정식계약을 맺고 질병관리 컨설팅을 제공하는 형태는 아직 드문 편이다. 대다수의 가금 임상수의사들은 비정기적인 왕진과 의약품 처방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 농가들 사이에서 질병진단과 관리, 사양관리 컨설팅 등 수의서비스 자체에 경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도 한 요인이다. 제대로 된 수의서비스를 위한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피해를 생각하면 그러한 인식에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실력 있는 신규 수의사들이 많이 진입한다면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Q.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매일 2개 안팎의 농장을 방문한다. 매주 10개 이상의 농장을 왕진하는 편이다.

업무시간은 좀 긴 편인데 농장간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집은 서울이지만 고객 농장은 경기남부부터 충청, 전북, 경북 등 중부권 전역에 포진하고 있어서다. 교통상황 등을 고려해 아침 7시 이전에 집을 나서는 편이고, 여름에는 더 일찍 나올 때도 있다.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중부권 교통의 요충지인 충북 음성을 반석LTC 부지로 선정했지만, 그래도 이동거리는 길다. 한 달에 1만KM 정도는 운전하는 것 같다.

병원 내부 실험실 업무나 행정관리를 담당하는 수의사와 직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현장진료와 대외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왕진만 하고 귀가할 때도 있어 사무실에는 매주 2~3일 정도만 들리는 편이다.

하지만 진료상황에 따라 긴급히 검사결과가 필요한 경우에는 검체를 들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그러다 보면 늦게 퇴근하는 일도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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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계 농장을 직접 방문해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손영호 대표

Q. 가금 임상수의사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물으려 했는데, 하루 일과를 듣고 보니 근면함이라고 답하실 것 같다

물론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자세는 필요하다(웃음).

일단 기본적으로 수의사이니만큼 농장의 질병상황을 판단하여 적절한 대처방법을 결정하고 예후를 판정하는 진료역량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실험실적인 역량을 강조하고 싶다.

가금 임상에서 질병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적 분석이 필수적이다. 물론 타 연구실이나 대학에 의뢰할 수도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농장에 질병 피해가 급속히 늘어나고 농장주가 빠른 진단과 대처를 원하는 경우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도 수의과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실험실적 경험을 쌓았던 것이 가금 임상수의사로서 활동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경영학적 지식이나 자금운용, 금융에 대한 소양도 필요하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실험실도 갖추고 약품공급관리, 현장 임상수의사 등을 운영하려면 필연적으로 동물병원 규모가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체적인 실험실 환경 없이 수의사와 약품공급이 혼합된 형태의 가금 임상이 일반적이지만, 차후에는 자체 실험실진단역량을 갖춘 가금 동물병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회장님께서는 동물용의약품 업체에서 근무하시다가 가금 진료 동물병원을 개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가금 임상수의사가 되는 경로는 어떠한가

가금과 관련한 대학원을 나오거나 약품, 사료 등 관련 업계에 취직하는 경로를 통해 가금 수의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향후에는 반려동물 임상처럼 가금 임상수의사도 동물병원에서 수련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 대학원이나 업체에서 배우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연구나 사료, 약품에 집중된 시각으로 배우게 되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금임상은 군(Herd) 단위 관리에 기반한 진료로서 각종 병원체뿐만 아니라 사료, 농장설비 등 환경적인 요소의 중요성도 크다. 이에 대한 다양한 임상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동물병원이 적합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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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LTC는 질병관리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농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Q. 가금임상역량을 갖춘 수의사를 배출해내기 위해서, 수의과대학에서 어떠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가금 임상수의사 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바로 전문 수의사 제도 도입이다. 전문의제도가 확고한 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치과에서도 예를 들어 교정을 하려면 교정 전문의를 선호하는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수의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수의사들이 모든 축종을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겠는가. 어느 축종의 임상이든 익힐 수 있는 기본역량을 공통적으로 교육하되, 각 축종별로 임상수의사를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금수의사회도 수년 전 이미 자체적인 인증교육을 도입한 바 있다. 아직 대내외적으로 인정 받는 전문의나 인정의제도를 확립한 것은 아니지만, 80여명의 가금임상수의사 대부분이 전문적인 가금임상교육을 이수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본과 3, 4학년에서는 학업의 많은 부분을 학생 각각의 진로분야에 대한 심화교육에 할애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다양한 수의사 활동분야 모두를 학교에서 심화교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교 단독으로 교육여건을 마련하기 힘들다면 현장과 손을 잡아야 한다. 가령 가금 임상수의사 진로를 원하는 학생은 본원과 같은 가금 전문 동물병원이나 관련 연구소나 대학원 등에서 현장실습을 할 수 있도록 알선하고 학점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Q. 제도적 측면에서 학과 후반부의 진로별 교육과 현장연계 필요성을 말씀하셨다. 교육 내용적 측면에서 가금수의사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나?

예전에 가금수의사회 차원에서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에 관련 자료를 전달한 바 있다. 가금전문수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수의과대학에서 졸업 전 이수시켜야 할 주요 과목이나 학습내용에 무엇이 있는지 규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사료영양이나 사육방식, 시설 등 사양관리 측면부터 항생제 및 백신 현장적용을 위한 실제적 임상능력, 차단방역, 동물복지, 고병원성 AI 대처에서의 수의사 역할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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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가금수의사회)

단순히 병원체 종류를 기준으로 백과사전식으로 가르치는 고전적 교육에서 벗어나 가금 임상수의사가 현장에서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

모든 질병을 학교에서 일일이 다 교육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임상에 접근하는 전체적인 시각과 방식을 습득했다면 나머지는 질병 종류와 병인체에 따라 바꿔 적용하면 되는 문제다. 자신의 경험을 참고하거나 모르겠으면 텍스트나 케이스리포트를 찾아본다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만약 가금 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학교에서 실험실적 경험을 쌓는 것을 권하고 싶다. 조류 관련 실험실이면 더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 없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방학을 이용해 현장겸험을 갖출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Q. 가금 임상을 진로로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수의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관련 능력을 갖춰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경우에는 어느 내용까지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사실 타 분야 수의사라면 가금임상에 대해 갖춰야 할 기초지식 수준은 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학생들에게는 기존에 조류질병학 과목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위의 교육내용 중에서는 농장 동물의 동물복지 개념이나 차단방역, HACCP 등 가금에 국한되지 않고 타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면 좋겠다.

 

Q. 현재 한국수의학교육의 졸업역량을 규정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가금 임상수의사로서 졸업역량안 초안에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규정된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임상활동 측면에서 덧붙일 점은 없다.

다만 소, 양돈 임상분야의 수의사분들이 앞서 지적한 ‘축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산업동물 임상은 전체 산업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수의사 또한 농장부터 식탁까지 축산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 산업이 돌아가는지 구조와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 또한 수의학교육의 졸업역량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을 원한다④] 가금 임상:손영호 반석가금진료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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