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57] 한국 수의축산 이끈 `이근태 국장`

등록 : 2020.05.11 16:03:20   수정 : 2020.05.11 16:03:20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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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57. 이근태(李根台, 1901 ~ 1965). 수원농업전문학교 수의축산학과 학과장, 수의학부 초대학부장, 농림부 2대 축정국장, 수의계 첫 학술 정보지 ‘한국수의’ 발행인, 축산시험장장.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축전(畜田)이며, 1901년 11월 21일에 평안남도 평원군 용호면 당우리에서 출생하였다.

평양 숭실중학교와 일본 히로시마[廣島]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제국대학 축산학과를 졸업하였다.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학교가 폐쇄된 후 만주국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여 수원농업전문학교(서울대학교가 발족하면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문부로 개칭됨) 수의축산학과 주임교수(학과장)를 맡았다. 우리나라 축산 분야 학사 출신 1호인 그는 강의 시간에 원서로 강의하여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수의학부(수원에서 종로구 경성의학전문학교 자리로 이전)가 개설되자 1947년 9월부터 초대 학부장을 맡게 됐다. 미 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할 때 농림부 제2대 축정국장에 임명되어(1948년 10월 1일 초대 국장으로 내정된 이근이 하루도 근무하지 않아 실질적인 초대 국장) 약 5년 동안 해방 후 혼돈과 한국전쟁 전란기의 한국 수의축산을 이끌었다.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오랫동안 일본의 압제와 전쟁으로 굶주린 민중은 8.15해방을 맞은 기쁨과 더불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희열이 겹쳐 가축 도살이 성행하는 일시적 혼란기가 발생했고 축산 발전에 적지 않은 장애를 가져왔다.

한우는 농우로 사용하였지만 유우는 일본 사람들이 사육하였기에 도살이 성행하였다. 그래서 미 군정기에 1차적으로 유우도살금지령(1945. 9. 21.)이 발령됐고, 이어서 축우(한우)도살금지령(1947. 6. 9. 미군정법령 제140호)이 내려졌다.

해방 후 축산 정책은 가축 육종보다 가축 수의 보존과 증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일본이 사용하던 성환목장을 축산기술원이 인수하여 종우, 종마, 종돈 등을 대규모로 사육하는 ‘대규모 가축 사육장’을 설치함으로써 국내 축산물의 생산 기반을 마련하려고 하였다(1948. 1. 12. 미군정청 발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국립제주목장(송당목장)을 설치하였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5.16군사정변 후 민간에게 불하되어 현재는 한진그룹의 육우 목장과 직원 연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는 수의축산 행정의 실질적 최초 책임자로서 재임 동안 가축 진료 제도 개혁, 공수의 배치, 수의사법 입법, 수의사 국가시험 제도 도입, OIE(세계동물보건기구) 가입, UNKRA(유엔한국재건단) 원조 사업, 한국전쟁 중 축산 자원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또한 국장 재임 중에《韓國獸醫》라는 수의계 첫 학술 정보지의 발행인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수의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를 약 4년 동안 축정국장으로 보필한 김영한의 회고에 따르면, “애정 깊고 이해심 많은 상사였으며 업무 처리 문제에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국장 명령이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 없이 계속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하는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아냈다.” “축정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비관료적인 태도로 일관하였지만, 학식과 인격은 언제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축정국장에서 축산시험장장(성환, 1954. 9. 2.~1955. 12. 7.)으로 전근하여 전문 분야의 시험 사업을 통솔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하지만 1년 남짓 후에 가축위생연구소장(부산)으로 발령이 나자 그는 그곳으로 부임하지 않고 사표를 제출해 공무원 생활을 마감했다. 그 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고려대학교 축산학과에 출강하면서 『畜産學』, 『養鷄法』,『畜産汎論』, 『家畜飼養學』의 저술을 남겼다.

제자들이 마련한 회갑연에서 제자 대표의 연수사(延壽辭)를 받자 “이 몸의 생이 계속할 때까지 나의 힘과 노력을 이 나라 축산을 위하여 바치겠습니다.”라고 내빈에게 인사하였다. 호가 축전(畜田)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기록으로 보면 “한국 수의축산 발전의 전망(《대한수의사회지》 9권 6호, 1964. 12.)”이란 좌담회에 패널로 참석한 것이 마지막 대외 활동이다.

1965년 2월 6일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자택에서 65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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