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수의대 교수 故김오남의 유족을 찾습니다`

7,80년대 청계천 빈민촌의 성자 `故김오남은 한국 봉사 계기 만들어준 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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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빈민촌의 성자’로 불린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88)를 아십니까?

1968년 청계천을 방문해 빈민촌의 실상을 목격한 노무라 목사는 그 길로 빈민선교에 투신했습니다. 1985년까지 故제정구 의원과 함께 자비까지 털어가며 청계천 빈민들을 도왔던 노무라 목사는 2006년에 청계천 사진을 포함한 사료 800여점을 서울시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청계천에서 사회활동을 펼친 노무라 목사는 일제 식민지 만행을 거듭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에서 사죄하며 플루트를 연주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노무라 목사는 2013년 명예서울시민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그런 노무라 목사가 유명을 달리한 한인 수의사의 유족을 찾고 있습니다. 11일 ‘청계천 사람들’ 사진전(작가 최인기) 참석차 방한한 노무라 목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Q. 처음 목사님께 연락을 받아 검색해보니, 일본인 목사인데 한국에서 빈민 선교활동을 펼쳤다고 나와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차별받는 조선인의 실상을 뚜렷이 목격했다. 국민학교 시절에도 한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는데, 그들도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다. 매우 마음이 아팠다.

본인도 미국의 신학교에서 유학할 당시 ‘Jap, Jap’ 소리를 들으며 많은 차별을 당했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범죄이므로, 국가가 사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한 인간으로서 개인적으로 한국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고 싶었다.

Q. 본지에 실린 ‘한국수의인명사전-김오남 편’을 보고 나서야 故김오남 교수의 사망소식을 알게 됐다고 들었다

동경수의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유학생이었던 김오남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6.25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김오남은 고향으로부터 지원이 끊겨 고생을 많이 했다.

일본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였지만, 배급 받은 쌀이나 옷을 김오남에게 나눠주거나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돕고 지냈다.

당시 도쿄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예배당에서 2주간 회벽을 칠하는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다. 돈이 없어서 집까지 먼 거리를 함께 걸어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매우 친했던 사이지만 본인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헤어지게 됐다. 신학교 유학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와 보니, 김오남은 이미 고국으로 돌아가 제주대 수의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 방한에서도 청계천을 찾은 노무라 목사. (사진 : 최인기 작가)
이번 방한에서도 청계천을 찾은 노무라 목사.
(사진 : 최인기 작가)

Q. 한국수의인명사전에 따르면 김오남 교수는 1956년부터 제주대 수의대 교수로 일하셨다. 수의대 통폐합 시기를 거친 후에는 1977년 전남대로 자리를 옮겼다

1973년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해 김오남을 만났다.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며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다가 김오남이 광주의 전남대로 자리를 옮겼다. 광주로 옮긴 직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점차 연락이 끊겼다.

김오남을 찾으러 광주에 직접 간 적도 있지만 실패했다. 서울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사진의 전시회가 광주에서 열렸던 때다. 전남대에 사정을 해봤지만 개인정보를 줄 수는 없다며 거절당했다.

김오남에게는 2남 1녀가 있었다. 자녀들이 광주 주변에 지내고 있지 않을까 추정만 할 뿐이다. 최근에 김오남이 천주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역 교구의 신부님께 여쭤보려고 해도 개인정보라며 거절당할까 걱정이 된다.

Q. 청계천을 오가며 빈민선교 활동을 벌일 당시에는 김오남과 연락하지 못했나

당시에도 김오남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Q. 이제라도 김오남 교수의 묘를 찾고 싶은 이유가 있나

한국에서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 계기를 준 인물이 김오남이다. 도쿄수의대학에서 함께 고생한 학우로 다른 일본인 동기들보다도 더 친했다.

Q. 앞서 한국수의인명사전 집필진의 도움을 받아 김오남 교수의 유족을 수소문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김오남 교수를 기억하고 있거나, 유족과 연락이 닿는 수의사 제자들이 도와주시길 희망한다.

개인적인 문제라 부탁드리기 송구하지만, 꼭 찾고 싶다. 나이가 많이 들어 이제는 건강이 좋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김오남의 묘지를 참배하고 싶다. 김오남에게 인사를 전하고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

한국수의인물사전 – 김오남편 보러가기(클릭)

<제주대 수의대(1956~1973), 전남대 수의대(1977~1986)에서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던 故 김오남 교수의 유족 혹은 안장지를 아시거나, 관련한 단서를 가진 독자분들이 계시면 데일리벳 편집부(ysj@dailyvet.co.kr)로 제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인터뷰]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수의대 교수 故김오남의 유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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