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인증, 일방적 사육기준 강화‥양돈 동물복지는 어디로 가나

한국양돈연구회 ‘한돈산업과 동물복지’ 양돈연구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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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물복지형 돼지사육을 위한 정부 정책은 2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위로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통해 우수한 사육환경을 갖춘 농가를 인증해주는 한편, 아래로는 축사 내 암모니아 농도 제한, 임신돈 스톨 사용 제한 등 최소 기준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한국양돈연구회가 19일 광교테크노밸리에서 제13차 양돈연구포럼을 열고 ‘한돈산업과 동물복지’ 이슈를 조명했다.

이날 포럼에 모인 업계 관계자들은 ‘동물복지형 사육은 가야할 길’이라는데 공감하면서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소비자들이 준비되지 않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는 이미 실패했고, 전국 양돈농가의 사육환경을 일괄적으로 뜯어고치는데는 무리가 따를 것이란 지적이다.

현행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문조 대표
현행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문조 대표


시장이 동물복지 축산물을 비싸게 사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정부로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 받은 경남 거창 ‘더불어행복한농장’의 김문조 대표는 이날 포럼에서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고 토로했다.

동물복지형 사육을 시도하면서 일반적인 양돈농가 대비 80% 수준의 생산성에 그치게 됐지만, 그로 인해 높아진 가격을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김문조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직접 하나로마트에 입점해 판촉해봤지만, 소비자들은 1천원이 싼 옆 세일 매대로 몰릴 뿐이었다”며 “(동물복지 축산이) 단순히 감정이나 바람만 가지고 시행해야 할 제도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행복한농장에서 동물복지적으로 생산된 돼지고기는 결국 일반 돼지고기와 같은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다. 늘어난 생산비로 인한 손해는 농가가 고스란히 떠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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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제에 나선 이득흔 돼지와사람 편집국장도 “돼지의 동물복지인증제도는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2013년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난해까지 인증을 받은 농가는 12곳에 그친다. 이들 인증농가에서 사육되는 돼지를 모두 합쳐봐야 3만4천여두로, 전국 1,100만여 돼지의 0.3%에 불과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해 실시한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서 ‘동물복지 인증표시 제도를 안다’고 응답한 비율은 35.4%에 그쳤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매하겠다는 응답은 70.1%에 달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득흔 국장은 “윤리적 상품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소비자 가운데 실제로 구입한 비율은 10분의 1에 그친다는 해외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동물복지형 사육이 성공하려면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포럼 참석자는 “소비자의 지갑은 여전히 값싸고 맛있는 제품을 선호하지 ‘동물복지’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한 동물복지형 축산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동물복지축산 정책에 대해 입장을 전한 한돈협회 이병석 부장(왼쪽)
정부 동물복지축산 정책에 대해 입장을 전한 한돈협회 이병석 부장(왼쪽)


한돈협회 `기존 농가까지 일방적 스톨사육 제한은 반대`

한돈협회 이병석 부장은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가는 방향을 거스를 순 없지만 방법과 시기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마련한 동물복지형 사육기준은 2019년부터 축사내 암모니아 농도를 25ppm 미만으로 규제하고, 신규농가에 한해 임신돈 스톨 사육을 ‘수정 후 4주’로 제한하는 것이다. 임신돈 사육밀도도 마리당 1.4㎡에서 2.25㎡로 늘린다.

2025년이 되면 암모니아 농도 기준을 20ppm 미만으로 강화하고, 임신돈 관련 기준을 기존 농가에까지 소급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병석 부장은 “스톨을 제거하면 돼지들끼리 서열다툼이 일어나면서 유산, 생산성 저하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며 “서열 우위에 놓인 소수의 돼지에만 좋고 다수의 돼지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스톨에 이 같은 위험을 예방하는 기능이 큰 만큼 ‘고정틀’이나 ‘감금틀’이 아닌 ‘보호틀’로 명명하고, 보다 효과적인 활용법을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신규농가에는 스톨 사육제한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시설을 뜯어고쳐야 하는 기존 농가에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돈협회의 의견이다.

대신 기존농가에는 스톨 사육 감소를 권고사항으로 두고, 가칭 동물복지축산농장 직불금 등 지원책을 마련해 유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돈 사육밀도를 높이는 문제도 국내산 돈육의 자급율 문제, 사육규모별 차등화된 사육밀도 기준 마련 등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병석 부장은 “4월말까지 정부 동물복지형 축산대책에 대한 협회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은 유한상 서울대 교수(가운데)를 좌장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포럼은 유한상 서울대 교수(가운데)를 좌장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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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사육은 이미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있다` 업계 선제적 대응 주문

이득흔 국장은 한돈산업이 이미 동물복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돼지에게 신선한 사료와 물을 제공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하고, 생균제나 보조제를 적극 활용하며, 건강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살피는 ‘돌봄’이 이미 동물복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득흔 국장은 “모든 돼지농가들은 돼지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보살핌을 경주하고 있다”며 “물론 부족한 점은 있지만 시간을 두고 개선해나가야 하는 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해외사례와 같이 양돈산업이 동물복지 의제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관산학이 모여 동물복지 축산으로 가는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동떨어져 있는 동물복지 인증도 여러 단계로 구성된 민간 차원의 인증제로 재편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높이면서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기홍양돈연구소 안기홍 소장은 “이제껏 업계는 동물복지 문제를 정부 주도에만 맡기고 일이 터지면 부랴부랴 대응하는데 그쳤다”며 “지금이라도 업계와 학계가 힘을 모아 동물복지 이슈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실패한 인증, 일방적 사육기준 강화‥양돈 동물복지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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