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봉사가 본업, 진료수의사는 부업?` 방경배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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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는 동물보호단체를 방문해 그곳 동물들을 치료해주는 수의사, 다른 나라 이야기이지만은 않습니다.

반려동물 임상수의사인 방경배 수의사는 매년 태국을 방문해 그곳의 동물을 돌보고 있습니다. 며칠 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머물며 진료봉사활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올해도 3월부터 6월까지 태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쳤던 방경배 수의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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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태국으로 봉사를 떠난 계기가 궁금하다.

2012년 경북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수의사로 1년여간 일하다가 태국으로 첫 봉사를 떠났다.

처음 해외봉사를 나간 계기는 복합적이었다.

수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프리카 같은 해외로 떠나 동물을 진료하는 꿈을 꿔보지 않나. 애초에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고, 예과 2학년 때부터 매년 태국과 주변 동남아국가를 여행할 만큼 태국에 대한 인상도 좋았다.

인턴생활 동안 진료에 대한 갈증, 외과 수술에 대한 흥미를 채우기 어려웠다는 점도 이유였다. 그래서 인턴 생활이 끝나갈 무렵 태국 주변에 봉사기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정보가 없다 보니 구글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만, 가까스로 태국 ‘꼬창’ 섬에 있는 사설 유기동물보호소 ‘KOH CHANG ANIMAL PROJECT’와 연락이 닿았다. 2월말 인턴생활을 마무리한 후 그해 7월까지 꼬창에 머물며 봉사했다.

매년 꼬창에서 만나는 `진저`  애교가 많아 음식을 얻어먹는 통에 살이 빠질 새가 없는 녀석이다
매년 꼬창에서 만나는 `진저`
애교가 많아 음식을 얻어먹는 통에 살이 빠질 새가 없는 녀석이다


Q.
첫 해외봉사활동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꼬창의 동물보호소는 ‘리사(Lisa)’라는 미국인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50여마리였지만 개, 고양이, 멧돼지, 원숭이, 사슴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봉사활동이 만만치는 않았다. 4월부터 6월까지는 태국의 혹서기다.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시달리면서도 선풍기는 고양이들에게 돌려 놓은 채 창문에만 의지해 종일 봉사에 매진했다. 첫 1주일 동안 몸무게가 7kg나 빠졌다.

인원이 부족한 소규모 단체다 보니 진료 외에도 밥주기, 청소 등 모든 일에 참여했다. 그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스타일의 해외봉사도 경험하고 싶었다. 한 군데를 뚫으니 정보 얻기도 수월해졌다. 연결을 시도한 여러 동물보호단체들 중 ‘치앙마이’ 지역의 ‘Care For Dogs(CFDs)’라는 곳에서 1개월 정도 봉사를 이어갔다.

CFDs에서는 태국인 전담 수의사 New, 오스트리아 출신 수의사 Pam과 함께 좁은 수술방에서 중성화수술에 매진했다. 새로운 경험과 보람에 힘든 건 잊은 채 일할 수 있었다.

CFDs의 전담수의사이자 기둥이었던 New(뒷줄 왼쪽 네번째)는 태국 봉사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줬다.
CFDs의 전담수의사이자 기둥이었던 New(뒷줄 왼쪽 네번째)는
태국 봉사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줬다.

Q. 이후로도 매년 꾸준히 태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2013년 첫 봉사활동을 마친 후 2015년까지는 한국에서 진료수의사 일을 계속했다. 2015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며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다시 치앙마이로 떠났다.

그 후로는 매년 치앙마이를 방문해 1~3개월 정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모바일 클리닉’ 프로그램을 통해 태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단기 진료봉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다시 찾은 치앙마이 CFDs는 발전하고 있었다. 영국의 국제 수의사 봉사단체인 ‘World Veterinary Service(WVS)’와 힘을 합쳤다.

WVS가 인적, 물적으로 지원해 준 덕분에 전담 수의사와 봉사자도 늘었고 테크니션, 핸들러 등 업무를 지원해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수술환경이나 의약품 공급도 나아졌다. 나를 포함한 수의사들은 치료와 수술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Q.
다른 나라 동물보호단체를 지원하는 국제 수의사 단체라니 흥미롭다.

WVS는 아시아권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 쪽 수의사들에게는 잘 알려졌다고 한다. 설립자인 영국인 수의사 루크 갬블(Luke Gamble)은 영국의 TV쇼에도 출연하는 유명인으로 영국리얼리티프로그램 ‘Vet Adventures’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루크는 세계의 많은 동물보호소가 수의사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수의사 단체로서 WVS를 설립했다고 한다. 태국 외에도 인도, 캐리비언 연안, 아르메니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 지부를 세웠다.

수의사의 재능기부를 안내하고, 기금을 모금하고, 진료봉사활동을 학생과 수의사의 임상교육 기회로 활용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직접 만난 루크는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동물을 치료한다는 게 정말 멋진 일 아니냐”며 봉사참여에 고마움을 표했다. “언제든 참여하고 싶고, 아프리카에서도 일해보고 싶다”고 화답했다. 멋진 사람을 만나 좋은 에너지를 얻었다.

WVS의 설립자 루크 갬블(오른쪽)과 함께
WVS의 설립자 루크 갬블(오른쪽)과 함께

Q. 다른 나라 수의사들과 함께 일할 기회도 많았을 것 같다.

거의 언제나 외국인 수의사들과 함께 일했다. 아무래도 WVS가 참여하는 곳이다 보니 영연방 국가 출신이 많았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나 미국 출신도 있었다.

태국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수의사들은 예외없이 서양인이었다. 덕분에 기존에 알던 한국의 수술법과 다른 서양 수의사들의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서양에서 온 수의사들은 현업에 종사하다가 잠시 휴가를 내고 봉사차 방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열흘 휴가를 내고 태국으로 날아와 봉사활동에만 매진하다가 하루이틀 쉬고 돌아가는 스케줄이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일본, 중국은 해외봉사활동을 할만한 국력을 갖춘 것 같은데, 한국인은 물론 동아시아권 수의사들을 볼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동기 수의사에게 WVS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할 겸 봉사활동에 초대했다.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봉사활동에 만족했는지, 올해도 짬을 내 함께 봉사할 시간을 만들었다.

ITC에서 봉사 겸 수술지도에 나선 모습
ITC에서 봉사 겸 수술지도에 나선 모습

Q. 트레이닝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외국 수의대 중에서는 지역 보호소의 동물들을 진료하거나 중성화수술하는 식으로 연계 교육을 펼치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방식인가

WVS가 운영하는 ‘International Training Center(ITC)’는 진료봉사활동을 교육에 활용한다. 수의대생이나 초임 수의사 등이 진료에 참여하면서 이론과 실습교육을 병행한다.

보호소에서의 외과진료는 90% 이상이 중성화수술이다. 안구적출이나 절단수술 같은 외상 치료도 일부 있다. 교육도 이러한 수술 케이스에 초점을 맞춘다. 참가생들은 술자와 보조, 마취모니터링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전마취부터 술후 회복까지 전 과정을 실습해볼 수 있다.

강사는 봉사활동 중인 수의사들이 맡는다. 본인도 4번에 걸쳐 강사로 참여하면서 여러 나라의 수의대생과 수의사들을 지도했다.

ITC는 국제코스와 태국 현지인 코스로 나뉘는데 치앙마이 외에도 인도 캘커타와 고아에서 운영되고 있다. 참가비 수익은 모두 보호소 운영에 보탠다.

올해 4월 모바일 클리닉에서 고양이 TNR에 매진했다
올해 4월 모바일 클리닉에서 고양이 TNR에 매진했다

Q. 특별히 기억나는 활동이 있나?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모바일 클리닉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올해는 3월부터 6월까지 봉사를 다녀왔는데 일부러 현지 모바일 클리닉 계획을 감안한 일정이었다. 교통편은 자비로 해결해야 했지만 꼭 참여하고 싶었다.

모바일 클리닉은 수의사가 없는 섬이나 산악지대를 직접 방문해 5~6일을 머물며 중성화수술과 광견병백신접종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지에서 장소만 마련해주면 봉사인력과 의약품, 의료장비는 모두 WVS가 가지고 간다.

올해 찾아 간 꼬야오야이, 꼬야오노이 섬은 개는 별로 없고 고양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독특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저와 태국인 수의사 Kai, 영국인 수의사 Roy는 5일 동안 고양이 290마리의 중성화수술을 실시했다.

햇볕에 의지해 수술하고, 에어컨은커녕 시원한 물도 없이 며칠간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했지만,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후에는 치앙마이로부터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북부산악지대 빠이(PAI)에서 모바일 클리닉을 진행했다. 지난해 태국을 방문했던 동기 수의사도 함께 했다. ‘PAI FOUR LEGGED FRIENDS’라는 현지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빠이`에서의 모바일 클리닉 활동
`빠이`에서의 모바일 클리닉 활동

Q. 매년 해외봉사를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해외 봉사를 떠나면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더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진료 외(外)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지만, 태국에서 봉사할 때는 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외과 수술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적성에 맞다. 트레이닝 코스에 강사로 참여해 전세계 수의대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에 있는 동안은 봉직수의사나 대진, 관리수의사로서 일한다. 어찌 보면 해외봉사를 가기 위해 개원을 미룬 셈이다. 임상수의사가 된 지는 만5년이니 본인처럼 졸업 후 바로 임상을 시작한 동기들은 이미 다들 원장이다.

병원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원장 생활을 뻔히 아는데, 지금의 활동을 안하고 참을 수 있을까 고민이다. 매년 ‘이번 봉사가 마지막이다, 곧 개원할거다’라고 다짐하지만 지금도 계속 미루는 중이다(웃음).


Q.
태국에서 해외봉사에 참여하는데 비용이 어느 정도 드나? 업무 강도도 궁금하다.

보호소 측에서 숙식은 제공해준다. 기본적으로는 오가는 교통편만 부담하면 되지만, 일과가 끝난 후 여가나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아무래도 체제비가 필요하다.

본인은 비교적 장기간 머무르다 보니 따로 숙박장소와 교통수단을 마련하는 편이라 월 50~100만원 정도 소비하고 있다.

WVS 활동을 기준으로 한다면 봉사업무는 주5일이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그날 할당된 수술이 끝날 때까지만 일하면 된다. 트레이닝코스에 강사로 참여하면 기간 동안에는 휴일 없이 매일 봉사와 교육이 진행된다.

WVS ITC 인터내셔널 코스 수료생들과 함께
WVS ITC 인터내셔널 코스 수료생들과 함께


Q.
해외봉사에 관심 있는 수의사들이 유념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봉사단체나 보호소마다 환경이 다양하다 보니 활동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치앙마이 CFDs에서는 온전히 수술에만 집중했지만, 꼬창에서는 동물을 돌보는 활동 모두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다.

대부분의 보호소가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지는 않다. 숙식은 제공되지만 함께 머무르는 외국인과 문화적인 차이를 느낄 수도 있고, 음식이 입에 안 맞을 수도 있겠다.

진료 내용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서양 쪽과 우리나라의 중성화수술법도 약간 다르다. 실내에서 기르는 반려동물 진료와 달리, 수술 후 하루가 지나면 바로 방사해야 하는 환경적 요인도 수술방법에 영향을 준다. 보호소라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인 수의사가 많다 보니 멸균 조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최소한 영어로 의사소통되어야 한다는 점은 기본이다. 일적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문제가 없다. 특히 한국사람은 미국식 영어에만 익숙하기 쉬운데, 영연방 쪽은 물론 세계 각국의 억양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당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 수의사가 봉사하러 오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한국 수의사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주의했다. 청소나 궂은 일에도 자주 나서다 보니 “수의사 봉사자들 중에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섬 모바일 클리닉에 참여한 수의사 드림팀
섬 모바일 클리닉에 참여한 수의사 드림팀

Q. 외국인 수의사가 가서 진료하는데 문제는 없나?

개인적인 견해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태국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치앙마이 지역은 특히 그렇다.

지난해부터 보호소에 현지 공무원이 시찰을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WVS에서는 시찰 중에는 외국인 수의사들의 수술을 중지시키더라.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산티숙 보호소의 외국인 수의사가 봉사활동으로 진료하다가 연행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데일리벳에 기고된 장승준 선생님의 글에 나와있듯 태국인 수의사가 지도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수의사가 진료봉사하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

WVS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 보니 태국인 수의사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단체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는 유의해야 한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외봉사를 다니며 부러웠던 점들 중 하나는 서양에서 온 수의사들의 폭 넓은 활동과 자유로운 마인드였다.

그들처럼 우리나라 수의사나 수의대생 분들도 좀더 넒은 곳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주 많다.

제 활동은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외국인 수의사나 봉사자들에 비교하면 초기 입문단계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한국인 수의사들과 봉사자들이 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우리 나라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우리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인터뷰] `해외봉사가 본업, 진료수의사는 부업?` 방경배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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