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전염병의 세계사/김도균

등록 : 2020.05.12 06:45:00   수정 : 2020.05.11 18:46:43 데일리벳 관리자

모든 생명은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현상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생명이나 생명의 현상에 대한 이해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생명에 대한 이해는 분절화되었고 생명의 현상에 대한 이해 또한 단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틀은 의료영역에서도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있습니다. 이 팬데믹에 대해서도 우리는 바이러스와 유기체의 관계로 이해하기 보다는 원인을 바이러스로 환원하는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은 바이러스와 유기체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기 위하여 4월 책읽기 모임에서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을 함께 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과 관련된 많은 문제가 산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은 모두가 인간이 행한 행위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수의사는 동물을, 더 나아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기 위하여 매달 생명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그 나눔을 동료 수의사분들과도 함께 하고자 데일리벳의 협조를 얻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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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세계사 / 윌리엄 맥닐

4월 21일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모임은 역사학자인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를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저자는 인류에게 일어났던 전쟁이나 문명, 종교 등 인간사의 총제적인 변화나 현상들이 어떤 형태로든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며 사례들을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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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렵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할 때까지는 자연환경과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경을 하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인구의 증가를 바탕으로 더 많은 농경지를 개간하고 목축을 하게 되면서 몇몇 종의 동식물이 과다하게 증식되었다.

반면에 종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먹이사슬이 단축화 되면서 기생생물이 잠재적인 먹이가 인간공동체 내로 감염되는 사태가 이어졌다.

더욱이 도시의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기생생물의 폭발적인 대량 감염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인류가 온대 지방이나 극지방에 진출 후 그 지역의 대형동물이 소멸한 것에 비해 아프리카, 아마존, 인도와 같은 더운 지방에는 아직도 사자나 코끼리 하마 같은 커다란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이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예전 전쟁에선 전투에서 사망한 병력의 손실보다 전염병에 의한 손실이 더 컸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전사자중 25프로 정도가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당시의 일본군을 선진군이라며 평가할 정도다.

고대 인도 북서부에서 성장한 힌두 문화는 세력이 막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동남부의 고온다습한 숲지대 종족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종족들을 불가촉천민으로 규정하며 카스트제도의 근간을 만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도 숲지대 종족의 군사적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 아니라 침입자들이 열대성 전염병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황허지역이 따뜻한 양쯔강 이남보다 문명의 꽃을 피운 것도 열대성 전염병이 적었기 때문이다. 양쯔강 이남지역의 한족은 전염병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후 온전한 중국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족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실크로드를 개척하게 되자 질병의 전파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다. 1346년 몽골군이 크림 반도를 공격할 때 유럽으로 유입된 페스트(흑사병)는 1350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유럽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로마제국의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은 게르만족등의 외세 침입에 의했다기 보다는 근본적으로는 남쪽의 아프리카로부터 전파된 천연두와 홍역으로 인해 국력이 급격한 쇠락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로마가 국교를 기독교로 개신했던 이유 역시 질병이 신의 채찍이나 형벌내지는 신의 거역할 수 없는 뜻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고 돌봐주는 기독교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단 600명의 병사로 인구 수백만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다. 이것은 그들의 발달된 무기나 수많은 전투경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후 120년 동안 멕시코와 페루는 유럽인이 지난 4천 년 동안 겪었던 전염병을 천연두를 필두로 홍역, 발진티푸스와 유사한 질병, 인플루엔자와 디프테리아를 경험하면서 인구가 90%나 감소했다.

이러한 엄청난 전염병의 재앙은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에까지 변화를 주어 페스트의 침입 이후 유럽에선 신비주의가 만연하고 카톨릭에 저항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겐 자신의 토착신앙을 멀리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활발한 교역과 교통의 발달로 인류는 질병을 대양을 뛰어넘어서 교환하게 되고, 모든 질병의 패턴을 균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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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그러나 그런 발전이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병원균에 의한 미시 기생생물이나 특정 인간집단이 다른 집단 위에 군림하는 거시 기생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공격해 올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의 공포에 떨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에는 숙주와 기생체가 서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생태적 균형이 이루어지겠지만, 맥닐의 말처럼 “가까운 과거에 그랬듯이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엄청난 생태적 격변을 맞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미시기생과 거시기생의 틈바구니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숙주와 기생체 모두가 충격적인 첫 만남에서 살아남아 적절한 생물학적, 문화적 적응을 통해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관계를 정립해야 서로 안정적인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

개인의 삶이나 인류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숙명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에 능동적이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서로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하지 않나 싶다.

김도균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