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어두운 뒷면을 비추는 책을 만듭니다” 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대표
반려동물 실용서부터 동물원·산업 동물까지, 20년간 다져온 1인 출판의 기록

국내에 동물 관련 서적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2006년, 동물 전문 1인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스며든 생명의 가치는 출판의 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그의 시선은 사적인 돌봄의 영역을 보듬고, 우리 사회와 생태계 전체의 동물에까지 향했습니다.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생태계의 동등한 주체로 자리매김하며, 유기동물과 동물원 동물, 나아가 농장 동물과 야생 동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논의에서 밀려나 있던 존재들을 중심부로 호명해냈습니다.
십수 년간 흔들림 없이 다져온 이 견고한 행보는 2018년 환경시민단체 ‘환경정의’가 수여하는 ‘한우물상’과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 ‘언론·출판 부문 특별상’ 수상으로 이어지며 그 묵직한 사회적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활자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의 해외 상업 시설 반출 반대 운동을 이끌고, 실험동물 구조와 재난 피해 동물 구호에 앞장서는 등, 텍스트로 벼려낸 사유를 현장에서의 치열한 연대로 실천해 왔습니다.
아울러 《동물을 만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 《동물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를 펴낸 저자로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올바른 관계 맺기에 대해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특권’을 소외된 생명을 대변하는 일로 올곧게 환원하는 김보경 대표. 활자와 행동을 교차하며 단단하고 따뜻한 생태 철학을 그려온 그의 궤적을 짚어보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동물 책 전문 1인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를 운영하고 있는 김보경입니다.
동물 전문 출판이라는 독특한 분야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처음 출판을 시작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네요. 당시만 해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동물 책만 전문으로 내는 곳은 드물었습니다.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사실 제가 살기 위해 만들었어요. 90년대 전후로 가족이 된 1세대 반려동물들이 노화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거든요.
아이가 아프면 수의사에게 가거나 책을 찾아봐야 하는데, 당시엔 2차 동물병원도 드물고 참고할 만한 국내 실용서가 없었습니다. 조악한 번역서 정도가 전부였죠. 문제가 생기면 책을 찾아보는 성향이라 외국 서적에 의존했는데, 거기서 큰 도움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책이 국내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안 되면 다른 일 하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냈던 책들이 큰 호응을 얻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동물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출판사를 지속하려면 홍보와 매출이 따라줘야 하니 그 부분이 늘 고민입니다. 초기에는 독자층의 수요가 명확한 반려동물 실용서를 위주로 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독자들이 동물과 일상을 나누며 삶 자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시더라고요.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기 시작하신 거죠.
자연스럽게 마당개, 동물원 동물, 산업동물, 야생동물로 독자들의 시선이 넓어졌고, 저 역시 그 궤적을 따라 출판의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수요가 많지 않아 쉽진 않았지만, 출판사로서 반려동물이라는 좁은 범주 안에만 머물고 싶진 않았거든요.
다행히 동물권 인식이 성숙해지면서 저희 방향성에 공감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든든하게 따라와 주셨습니다.
반대로 출판 일을 하며 가장 깊은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 책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죠. 초창기에 《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라는 책을 준비할 때, 가족들의 파양 종용으로 막막해하던 독자분께 출간 전 원고를 보내드린 적이 있어요.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아 한 아이의 자리를 지켜냈을 때 참 기뻤습니다.
나아가 텍스트로 맺어진 연대가 현장의 실천으로 이어져 동물의 삶을 변화시킬 때 출판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하게 됩니다.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 반출 반대 운동이 그 예입니다. 인공 포육으로 자라 무리와 분리된 채 지내던 두 침팬지가 열악한 해외 상업 시설로 보내질 상황에 놓였었습니다. 이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시민들과 3개월간 매주 반출 중단 집회를 진행했고, 결국 철회를 이끌어냈습니다. 사람의 관심이 동물을 단순한 ‘전시 자원’이 아니라 온전한 ‘생명’으로 바라보게 만든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실험동물 구조나 보호소 기부 역시 동지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요. 개 식용이나 사육 곰 문제처럼 표면적으로 해결된 듯 보여도 그 이면에 여전히 고통받는 생명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달의 앞면만 보기 쉽지만, 뒷면의 그늘까지 함께 비추는 책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펴낸 책 중 특별히 애정이 깊게 남은 책이 있다면
펴낸 책 모두가 아픈 손가락 같지만, 아무래도 척박한 환경에서 세상에 나온 국내 저자들의 책이 마음에 남습니다. 초창기엔 동물 분야를 깊이 있게 다룰 국내 전문가가 거의 없었거든요.
반려동물 다음으로 동물원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당시엔 동물원에 대한 윤리적 관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볍고 쉬운 책부터 내보자며 기획한 것이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였어요. 놀랍게도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 동물원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책 한 권이 현장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느꼈죠.
책을 통해 동물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 자연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살아보니 나와 자연이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는데, 저 역시 깊이 공감해요. 결국 인간도 동식물과 함께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공존하는 생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원에서 흙바닥 대신 시멘트 위로 분뇨가 흐르는 걸 볼 때면, 생태적 연속성이 철저히 단절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요즘은 사람조차 도구로 취급되고, 타자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어요. 거창한 무언가보다, 그저 생명 자체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감각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책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며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긴 호흡 속에서, 역설적으로 ‘내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스스로를 선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를 만나 기획을 의논하고,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지식을 듣는 과정 자체가 무척 즐거워요. 제가 평소 품고 있던 질문들의 해답을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하면, 독자들이 거기에 흥미를 느끼고 새로운 이야기가 파생됩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를 잇는 매개자로서 담론이 확장되는 걸 지켜보는 게 생각 이상으로 뿌듯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동물 관련 담론은 어디쯤 와 있다고 느끼시나요?
동물 복지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에 비해 확실히 풍성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제도로 단단히 뿌리내렸는가 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여전히 선언적인 구호에 머무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제는 거시적인 방향을 넘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시선에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철저히 동물의 입장에서 ‘이 정도면 살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세밀한 기준들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면 그게 특권층”이라는 대표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죠. 그 일을 하면서 생활까지 영위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자 특권입니다.
수의학계만 보더라도, 뛰어난 실력으로 임상에 매진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동물 복지나 생태 연구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전국을 누비는 분들도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침팬지 반출 반대 집회나 실험동물 구조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수의사 선생님들의 조용하고 단단한 연대가 큰 힘이 되었어요.
수의학이라는 넓은 학문 안에서 스스로 가슴 뛰는 세부 분야를 찾아 기쁘게 일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응원합니다.
앞으로 책공장 더불어에서 꼭 해보고 싶은 출판 기획이 있으신가요?
‘동물 관련 법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는 사회 시스템과 동물의 삶을 즉각적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동력입니다. 영국의 ‘루시법’ 제정 이후 유기동물이 눈에 띄게 감소한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죠.
우리가 어떤 법적 토대 위에서 시작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짚어보는 작업은 꼭 필요합니다. 동물보호법, 동물원법, 반려동물 관련 법의 역사와 현황을 기록하는 일은 책이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출판사로서 반드시 펴내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의사와 수의대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수의사분들이 스스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물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고 돌보는 주체인 수의사가 직업적으로 행복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그 긍정적인 온기가 동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걷는 그 길을 기꺼이 사랑하며, 앞서 묵묵히 길을 닦아온 선배들의 지혜를 나침반 삼아 흔들림 없이 연대하고 성장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