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험사로 간 임상수의사에게 들어본 펫보험

등록 : 2019.02.18 16:38:47   수정 : 2019.02.18 17:21:53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동물병원 개원가에 펫보험 관련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해 연말쯤이었다. 취재차 이야기를 나누던 한 동물병원 원장이 “펫보험 활성화도 결국 대형 동물병원만 신나는 일 아니냐”고 물었다.

‘펫보험이 활성화되면 동물병원 규모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그 문제를 콕 집어 찌르는 임상수의사를 만나자 더 호기심이 일었다.

*   *   *   *

예전부터 개인적으로는 펫보험이 활성화되면 동물병원 전체에 나쁠 것이 없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을 보호자들끼리 나눈다면, 보호자 개인의 리스크 관리에도 좋고, 동물병원 입장에서도 필요한 진료를 보다 수월하게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비 부담이 사회적 문제인양 부각되면서 각종 동물병원 진료비를 무작정 공개하자거나 아예 통일하자는 수의사법 개정안까지 나오는 판국이니, 심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 개정 대신 펫보험으로 보호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펫보험이 병원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펫보험이 활성화되면 진료비 부담이 줄어든 보호자들이 기왕이면 큰 동물병원에 가길 원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동안 진료비가 많이 나올까봐 큰 병원에 가길 망설였던 보호자에게라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 논리다. 아직 국내에서 펫보험이 크게 활성화된 선례도 없고, 개인적으로 고민해봐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펫보험 업계에서 일하는 수의사 A, B씨를 찾아가 의견을 구했다. 두 분 모두 수년 이상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로 일하다 최근 보험사에 합류해 펫보험 개발에 참여했다. 보험사 안에서는 동물병원을 가장 잘 아는 인력인 셈이다.

A 수의사는 “펫보험이 활성화된다고 대형 병원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외국의 펫보험 관련 데이터나 자사의 청구 실적을 분석해봐도, 수술처럼 큰 진료비가 드는 ‘고심도청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부병이나 감기 증상 등 일상적인 진료로 인한 ‘저심도청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A 수의사는 “대리점을 통해 들어오는 펫보험 관련 문의도 ‘큰 수술이 보장되냐’는 것보단 ‘피부병처럼 일상적인 진료가 보장되냐’는 쪽이 더 많다”며 “펫보험이 활성화되면 일상적인 진료의 빈도수가 높아지는데 효과가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큰 수술을 앞두고 닥터쇼핑을 가속화하기 보다는, 반려동물이 ‘아픈 것 같은데 병원에 가볼까 말까 고민하는 시점’에서 내원을 결심하게 도와주는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이다.

보험에 가입됐다고 하더라도 고액 치료비의 부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목했다.

펫보험이 전체 치료비의 일정 비율을 보장해주는 형태라 총 진료비가 커지면 자기부담금도 높아지는데다가, 고액 청구는 갱신 시 보험금 상승의 요인이 될 수 있는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 수의사도 “펫보험은 병원 문턱을 낮춰 조기내원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며 “펫보험이 활성화되면 반려동물 진료의 파이가 커질 것이며, 늘어난 파이가 대형 병원에만 돌아갈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도 실손보험이 자리잡으면서 진료시장 확대됐지만, 그 혜택이 큰 병원에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펫보험이 장기적으로 반려동물 진료시장을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가격부담이 완화될수록 덤핑에 의한 시장교란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지목했다.

B 수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를 설득하면서도 보호자의 지갑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임상수의사의 고충”이라며 “보험이 자리 잡는다면 수의사분들도 보다 편하게 진료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   *   *

펫보험 활성화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펫보험이 동물병원 규모에 따라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언할 수는 없다.

동물병원 수의사들로부터 ‘펫보험이 활성화된다 해도 일선 동물병원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고, 이른바 1.5차 이상의 중대형 병원의 고액 청구에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거듭 접했다.

보험금 청구와 연관된 진료기록 관리 문제 등 부작용이 없도록 다듬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동물병원 진료비와 관련된 수의사법 개정 시도와 펫보험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면서 수의사들 사이에 부정적인 시각이 짙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펫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러 보험사들이 신상 펫보험 상품을 앞다투어 내놨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서는 ‘보험 청구를 경험했다’는 동물병원을 예전보다 흔히 접하게 됐다.

펫보험이 동물병원 현장의 수의사와 환자, 보호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형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건설적인 논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