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에 그친 실험동물 복지‥전임수의사가 필요하다

윤리적 동물실험·실험동물 복지 책임질 실무자..수의사 있는 동물실험기관 38%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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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실험동물 숫자가 매년 늘고 있지만, 실험동물의 복지는 아직 선언에 그치고 있다. 현장에서 실험동물의 복지와 연구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실험동물 전임수의사(Attending Veterinarian)의 역할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복지국회포럼과 농림축산식품부는 4월 24일 ‘세계 실험동물의 날’을 맞아 ‘동물실험윤리 증진 및 실험동물 복지 확대를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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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문에만 있고 현장에는 없는 `3R`..수의사 역할 제도화 촉구

대체(Replacement), 감소(Reduction), 개량(Refinement)을 내세운 ‘3R원칙’은 실험동물 복지를 위한 대명제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동물보호법 제23조에 3R원칙을 명시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단순한 선언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실험 현장에서 복지 문제는 뒷전에 머물러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미국,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관련 법은 실험동물 복지에 대한 세부사항을 규정하지 않아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진수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장도 “현장에서는 비윤리적 동물실험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면서 “실험동물수의사회 조사 결과, 국내 유명 동물실험기관에서도 실험동물을 과도하게 밀집사육하거나 건강문제를 방치하는 등 미흡점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가령 현행 동물보호법이 ‘고통이 수반되는 실험은 수의학적 방법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담당할 수의사의 의무고용이나 역할은 제도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가 각 실험의 윤리성, 실험동물의 복지 문제 등을 고려해 동물실험을 허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IACUC는 실험계획을 심사할 뿐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는지는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진수 소장은 “선진국은 IACUC만으로는 실험동물 복지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실행기구’로서 전임수의사를 두고 있다”면서 국내에도 전임수의사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동물실험기관마다 전임수의사를 두고 ▲실험동물 건강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수의학적 처치와 관리 ▲동물실험의 윤리적 측면 검토 ▲연구자들의 작업안전 관리 등을 담당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수의사가 있는 동물실험 현장이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국내 동물실험실시기관 367개소 중 수의사를 고용한 기관은 조사에 응한 331개 기관의 38%에 해당하는 125개소에 불과하다.

이형주 대표는 “연구를 위해 질병이나 부상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키는 동물실험 현장에서,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질 수 있는 수의사가 존재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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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수의사 고용·역할 함께 제도화해야

이날 토론회 참석한 한 실험동물 수의사는 “수의사도 실험동물을 돌보는 시간보다 전화 받고 행정업무를 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토로했다.

정작 수의사가 고용된 기관에서도 이들이 ‘실험동물 전임수의사’로서 활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험동물 복지를 관리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일선 동물실험기관에서는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실험동물수의사회(KCLAM) 김종성 기획이사는 “선진국에서는 실험동물의 입수부터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수의사의 역할을 법제화하고 있다”면서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 보니 동물실험기관의 수의사들도 비(非)수의학적 역할을 많이 수행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임수의사의 의무고용뿐만 아니라 그 역할도 관련 하위법령에 제도화해야 한다는데 무게가 실린다. 이에 필요한 교육과 근무조건 등도 고려해야 한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날 서보라미 국장은 “실험현장의 연구자나 수의사의 근무조건도 중요한 문제”라며 “부족한 시간과 실험업무에 시달리게 되면 사람의 안전이나 실험동물의 복지는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의사 수급 두고서는 ‘시각차’

전임수의사 제도화 시 수의사 수급 문제를 두고서는 시각차를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 박은표 사무관은 “동물실험이 많은 바이오·제약업계에 따르면 동물실험 전문 CRO나 대규모 제약회사는 이미 수의사를 고용하고 있어 부담이 적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연간 실험횟수가 많지 않은 기관들은 전임수의사 풀타임 고용이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실험동물협회 장재진 회장은 “실험동물의학에 전문성을 가진 수의사는 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수의사 수급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진수 소장은 “한국실험동물수의사회는 미국, 유럽, 일본과 더불어 세계실험동물수의사회 회원단체로서 12년째 전문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실험동물전문수의사(DKCLAM) 47명과 더불어 실험동물수의사회 회원 300여명이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수의사를 제도화한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될 것이고, 타 분야 임상수의사도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전임수의사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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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동물복지국회포럼의 공동대표 박홍근 의원(사진)은 “실험동물 시설의 일부에만 수의사가 배치돼 비윤리적 실험이 수행될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생명윤리적 관점에서 보완해야 할 사항을 모색하겠다”고 전했다.

토론의 좌장을 맡은 박재학 서울대 교수는 “실험동물시설, 동물실험윤리위원회와 함께 전임수의사가 3대 요소로서 동물실험과 실험동물 복지를 관리해야 한다”며 전임수의사 제도화를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을 촉구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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