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려견 체고·몸무게보다 중요한 주인과 시민의 `인식 및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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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한 대형 음식점 대표가 아이돌 멤버 가족의 반려견에 물려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려견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었고, 지난해 10월부터 농식품부를 중심으로 동물보호단체, 소비자단체, 전문가, 지자체 등이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올해 1월 18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제 25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현안조정회의)에서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 소개가 있었다. 여기서 정부는 반려견을 위험도에 따라 3종(맹견, 관리대상견, 일반반려견)으로 분류하여 안전관리 의무를 차등화 하는 정책안을 내보였는데, 문제점은 체고 40cm 이상의 모든 개를 ‘관리대상견’으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관리대상견의 경우 특정 장소에서 입마개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동물보호단체에 따르면, TF회의에 참여한 모든 전문가들이 이 법안에 대하여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농식품부에서 이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회의 종료 직후 서둘러 대책을 발표했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가 작년 11월에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15kg 이상의 반려견은 외출 시 반드시 입마개를 착용해야한다’라는 반려견 안전관리대책을 마련하자 전문가들이 도대체 어떤 근거로 15kg 이라는 기준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반발했고, 결국 대책이 철회된 일이 있었다.

체고 40cm 이상, 몸무게 15kg 이상 등 공격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준을 가지고 정책을 세우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것을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해서, 키가 180cm이상이거나 체중이 80kg 이상인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거나 정강이 보호대를 의무착용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반발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반려견들의 공격성의 거의 대부분은 반려견주의 잘못된 교육으로부터 비롯되며, 덩치가 아주 작은 개도 큰 공격성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품종별, 개체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를 기준으로 한 정책은 전문가와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정책일 뿐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동물자유연대 등에서 “정부의 체고 40cm 이상의 관리대상견 지정은 비합리적이고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철회를 주장했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없다.

문제는 또 있다. ‘모든 반려견의 목줄 길이는 2m 이하로 제한하며, 반려견이 사람을 물면 주인을 형사처벌한다’는 정책안이다.

동물행동학 용어로, ‘도주거리(Flight distance)’와 ‘공격거리(Fight distance)’라는 말이 있다. ‘도주 거리’는 어떤 동물에게 특정 거리 이내로 위협요인이 다가왔을 때 그 동물이 도망가는 행동을 하는 최대 거리이고, ‘공격거리’는 특정 거리 이내로 위협요인이 다가올 때 그것을 공격하는 최대 거리다.

이는 개에게도 해당된다. 품종별로도 차이가 있으나 특히 반려견의 경우 ‘사회화 정도’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려견이 사람을 무는 경우 대부분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심지어 가까운 일본에서조차 반려견에게 주인의 허락 없이 다가가거나 만지는 행위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여겨 암묵적으로 금지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귀엽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가거나 만지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주거리 혹은 공격거리가 3m인 개에게 2m 이하의 목줄을 씌울 경우, 3m 이내로 다가오는 사람을 물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그렇게 개가 사람을 물게 되었을 때, 이번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을 잘 이행해서 2m 이하의 목줄을 씌운 견주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책상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체고를 기준으로 입마개 의무화를 하고, 무조건적으로 2m 이하의 목줄을 써야하는 등의 정책안을 만들기보다 견주들의 반려견 교육 의무를 강화하고, 반려견에 대한 시민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사설] 반려견 체고·몸무게보다 중요한 주인과 시민의 `인식 및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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