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②] 오진식 수의사


0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오진식 수의사입니다. 수말수 집필 당시 ㈜애니젠 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던 오진식 수의사는 현재 메디안디노스틱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동물질병진단용 키트 개발에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160321 vet1
오진식 메디안디노스틱 대표이사

Q.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수말수 집필 당시에는 애니젠에서 근무하는 중이었다. 그 전에는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바이엘코리아, 녹십자수의약품에서 일했었다.

바이오노트에서 나온 후 현재는 ‘메디안디노스틱’이라는 동물질병진단용 키트 전문 제조업체의 대표이사로 있다. 국가 방역 프로그램에 이용되는 가축전염병 검출용 ELISA 키트가 우리 회사의 주력 제품이다.

제품의 제조부터 판매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해외 수출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올해는 유럽과 남미시장 수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

Q. 수말수가 출간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수말수가 수의학 전공 희망 학생들의 필수 도서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의 내용을 잘 썼던가’, ‘본인이 수의사로써 독자들의 귀감이 될까?’라고 자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동물질병진단용 키트 개발에 종사한다는 사실과 ‘수의사’임이 자랑스러운 것은 한결 같다.

Q. 동물 바이러스 분야를 전공하고 백신 및 키트 개발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전공을 결정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본인이 재학 중일 당시에는 대학원을 간다면 기초 분야를 선택하는 추세였다. 그래서 수의 미생물학 중에서도 산업동물 분야의 바이러스와 면역을 공부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당시 국내 양돈 산업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던 돼지유행성설사병(PED) 백신과 관련된 연구에 집중하게 됐다. 당시 지도교수님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경험하고,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성품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했었던 것이 차후 백신 성공 개발에 도움을 줬던 것 같다.

그 이후 바이러스를 빼고는 개인의 역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게 됐다.

Q. 동물진단키트 분야에서 일해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적은 언제였나

이전 직장에서 일할 당시 비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3N2형) 바이러스가 포유류인 반려견 쪽으로 숙주를 바꿔 호흡기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진단하는 키트와 백신을 개발했다.

이후 이 제품의 지적 재산권을 다국적 회사에 로열티를 받고 양도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으로 남았다. 국내 개발 동물용의약품의 지적 재산권을 다국적 기업에 판매한 최초의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또 2007년경 국내 동물용의약품 최초로 미국 농무부(USDA)의 정식 허가를 받고 반려동물용 질병 진단 키트를 수출한 바 있다. 현재도 그 제품 외에는 미국에 정식 수출하는 반려동물 진단 키트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그러한 동물용의약품 및 진단기술 개발에 있어 수의사 역할은 무엇인가

질병을 다루는 일의 기본 골격은 진단과 처치, 예방으로 나눠진다. 수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진단, 처치, 예방을 위한 여러 기술과 도구를 활용하게 되지만, 더 나아가 진단키트나 백신처럼 도구 자체를 개발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수의학은 응용과학이기 때문에, 수의사가 됐다고 해서 유전자재조합이나 정제 등 개발에 필요한 기초과학 기술을 처음부터 잘 수행하기는 어렵다.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수의사보다 훨씬 능숙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수의사는 이들 각 분야를 융합하고 다양성을 포용하여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신속한 진단을 위해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한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AI라 하더라도 수의사라면 저병원성(LPAI)과 고병원성(HPAI)의 차이점이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장소라는 점을 알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

LPAI와 HPAI 모두 분변에서 검출되지만, HPAI는 다른 실질 조직 장기에서도 증식되어 검출할 수 있다. 따라서 분변뿐만 아니라 뇌, 간, 콩팥과 같은 실질 장기에서도 키트상 양성이 발현되면 HPAI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가 가진 병리, 면역, 공중보건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질병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수의사의 장점이다.

Q. 현재 종사 중인 분야의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

생명공학(BT)은 IT 못지 않은 각광을 받을 것이다. 특히 IT와 융합한 BT 시장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물론 동물병원, 공무원 등 전통적인 수의분야에 진출하는 것도 좋지만,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는 의지를 갖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맛보는 직업도 괜찮을 것 같다.

Q. 동물질병진단기술 개발 분야에서 현재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가장 도움을 준 자산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경험’이다.

졸업 후 첫 직장은 생산직이었다.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3년 간의 경험이 이후 연구개발, 품질관리, 영업, 마케팅, 전략 등 모든 분야의 바탕으로 사용됐다.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저만의 자산이 된 것이다.

후배 수의사들에게도 인생을 길게 본다면 힘들게 일을 배운 경험이 장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해주고 싶다.

두 번째로는 ‘운’이다. 회사를 다닐 때 본인의 장래를 걱정해주고 비전을 제시해준 고마운 분들을 만났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Q. 동물용의약품, 동물용의료기기 업계에 관심 있는 수의대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대학시절 준비하면 좋을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는 역시 수의학 공부다. 수의사로서 살아가려면 가장 기본이 된다.

둘째로는 영어다. 업계에서 꿈을 펼치고 해외에서도 활동하려면 영어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는 경영학 역량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의학계열 학생들이 등한시 하기 쉬운 부분이다.

결국 업계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최종 목적은 회사의 중역이나 자기 사업을 펼치는 것 아닌가. 거기에 경영학적 소양은 필수적이다. ‘돈, 돈’ 하면서 세속적이라고 비판만 하기보단 경제의 큰 흐름을 쫓는 자세도 필요하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향후 수년 내로 주식공개상장(IPO)을 추진하여 메디안디노스틱이 명실상부한 동물질병진단업계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외 다양한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새롭게 문제로 떠오르는 질병에 대한 연구개발을 추진하여 인류와 동물의 건강에 공헌하고자 한다.

후배수의사 분들도 도전정신과 열정을 갖고 기회의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

박형빈 기자 kamsangchai@dailyvet.co.kr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②] 오진식 수의사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