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습 그 이상의 경험, 미국에서의 한 달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해외임상실습 후기 : 건국대 수의대 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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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회차를 맞이한 건국대학교 해외임상실습 프로그램은 본교와 MOU를 체결한 Pacific States University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건국대 수의대 동문 선배님들이 운영하시는 여러 1차 동물병원에서 참관 및 실습을 할 수 있었고 말병원, 진단검사기관 그리고 스페셜리스트 동물병원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동계 실습은 학교에서 계절학기로 개설됐습니다. 장학금으로 실습비와 숙박비, 실습 이동 시 대중교통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문화활동비, 식사비, 항공권 정도로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2022년, 미국 소동물수의외과전문의 과정을 밟고 계시던 Dr. Clair를 만나면서 미국 수의전문의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학업과 다른 분야에 집중하느라 잠시 그 관심이 식기도 했습니다. 이후 지난 2학기, 학생회 주최 진로 세미나에서 여러 미국·캐나다 수의전문의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진로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지난 여름방학부터 이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미국 임상 환경에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와 문화 차이에 대한 걱정도 실제로 부딪혀보면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몇 가지 지원 절차를 거쳐 22명의 동기들과 함께 약 한 달 간의 실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2명의 참가자는 7~8명씩 3개 조로 나뉘었습니다. LA, Chino Valley, Orange County 등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1차 동물병원과 보호소를 묶어 한 주씩 로테이션하는 방식으로 실습이 진행됐습니다.

여름 실습 때 포함된 병원도 있었고, 이번 겨울방학에 새롭게 추가된 선배님 병원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전문의로 구성된 2차 동물병원이 새롭게 포함되어 더욱 다양한 임상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습 일정은 12월에 미리 공지되어, 평일마다 1~2개의 병원에 2~4명이 배정되는 식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출국 전, 치솟는 환율과 캘리포니아 산불로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산불이 진화되어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실습 참여기관> (제가 다녀온 곳은 3, 4, 6, 7, 8, 9번이었습니다)

1. Little Tokyo Pet Clinic(정혜옥 선배님)

2. TLC Animal Clinic(김현일 선배님)

3. Oso Pet care center(박귀영 선배님, 한상균 선배님)

4. Valencia Animal Medical Center(오현 선배님, 최기정 선배님)

5. South Hills Animal Hospital(박근형 선배님)

6. Rise Pet Health Emergency & Specialist (2차 동물병원)

7. Chino Valley Equine Hospital (말 전문 동물병원)

8. Antech Diagnostics(동물진단검사기관)

9. The Gentle Barn(대동물보호소)

원래 제 계획은 평일 4~5일 실습이었으나, 병원 사정으로 일부 병원 방문이 취소되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Valencia AMC에서는 Veterinary Technician(VT)인 Austin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오현 선배님과 인사를 나눈 뒤, 실습생에게 보호자 문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기본 문진을 VT가 담당하는데요, 실습생인 저희에게도 기회가 주어져 뜻깊었습니다.

영어로 현지 보호자와 대화하는 것이 걱정됐지만, Austin이 영어와 한글로 된 기본 질문표를 준비해주어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 입장에서 외국인 실습생이 문진을 하러 들어온다면 당황했을 텐데 감사하게도 모두 반갑게 맞아주고 친절히 대답해 주었습니다.

문진 내용을 꼼꼼히 기록해 수의사 선생님께 전달하면, 진료 시 선생님께서 추가 확인 후 심화 진료를 이어가셨습니다. 오후에는 미국수의영양학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신 최기정 선배님과 함께 공원에서 영양학 피크닉을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전 진료를 참관하며 크게 세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 상위 검사를 진행해야만 증상과 질환의 감별이 가능하지만, 보호자가 비용 부담을 느끼는 경우, 검사 필요성과 미실시 시 한계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보호자가 동의한 범위 내에서 진료를 진행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째, 산불 진화 직후 병원 근처와 보호자 집 마당에 들쥐 등 설치류가 많이 나타나 산불과 설치류 매개 질병에 대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셋째, VT가 기본 문진을 한 후 수의사가 진료를 시작하니 진료 효율과 회전율이 높아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오전에만 동기와 제가 참여한 문진이 8건이나 되었고, 다른 VT의 문진까지 합치면 보호자 대기시간이 짧아지고 진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Oso Pet Care Center에서는 박귀영 선배님이 CVPM(Certified Veterinary Practice Manager) 자격을 바탕으로 직접 병원 설계와 운영을 맡고 계셨습니다. 병원 내 각 공간의 배치, CCTV 위치 등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상균 선배님은 복강경 최소침습수술과 내시경 전문가로, 어린 암컷 웰시코기의 복강경 중성화 수술(난소절제술)을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복강 내에서 난소와 고유난소인대를 찾고 절제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며 수술의 정교함에 감탄했고, 수술한 웰시코기가 오후에 직접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며 복강경 수술의 장점을 실감했습니다.

이날은 저희 실습을 위해 진료 수를 조절하셔서, 매 환자마다 직접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셨습니다. 복부 촉진 방법, portable otoscope 사용, 심음 청진 등 다양한 실습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압력 센서 매트를 이용한 정형외과 검사도 해보며, 사지별 체중 분배와 균형 상태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선배님들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알차고 의미 있는 실습이었습니다.

수의전문의의 과제 설명

Rise Pet Health는 내과, 외과, 응급중환자의학, 영상의학 등 다양한 전문의와 수의사, VT Specialist, VT 등으로 구성된 24시 2차 동물병원입니다. 770평 규모의 넓은 공간에서 3일간 실습하며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수의사와 지원인력의 협력, 전문의들의 협진 체계, 그리고 다양한 과제를 경험하며 정말 값진 실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오전은 병원 구조와 분위기를 익히느라 분주했지만, 곧 다양한 진료 공간과 협진 체계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응급중환자의학과, 신경과, 그리고 수의사-지원인력 관계가 인상 깊었습니다.

응급중환자의학과에서는 중환자실 허스키 환자의 차트를 보며 고소듐혈증(hypernatremia)의 원인에 대해 Dr. Wong에게 질문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저에게 원인을 찾아오라는 숙제가 주어졌고, 이후에도 환자 케이스마다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환자 사례와 연결해 hypernatremia 원인, 나트륨 이온 교정 속도, free water deficit 계산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경련 발작으로 입원한 잉글리쉬 불독 환자의 신경검사와 Ddx 과제도 있었으나, 두 번째 신경 검사를 직접 하러 갔을 때는 이미 환자 증상이 심해져서 결국 보호자가 안락사 결정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겪었습니다. 과제를 받고 긴장 속에서 자주 쓰던 용어조차 까먹더라도 저를 기다려주고,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시간을 준 Dr. Wong에게 감사했습니다.

신경과에서는 내과 전문의 Dr. Collinet의 신경검사를 참관하며,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 질문을 했고, 주호소 증상과 감별진단 과제를 받았습니다. 신경과 바닥에 앉아서 환자 옆에서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제가 제시한 답이 틀리자, Dr. Collinet이 VITAMIN D(Vascular, Inflammatory/immune-mediated, Trauma, Anomaly, Metabolic, Infectious, Nutrional/Neoplasia, Degenerative) 접근법을 칠판에 직접 설명해주셨고, 증상에서부터 감별을 시작하는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Registered Veterinary Technician 외에도 분과별 VT Specialist(VTS)가 존재하며, 각 과에서 환자 기본 처치와 차트 기록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VTS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경력과 케이스 경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수의사 지원인력이 전문성을 갖추고 환자 관리를 담당하기에, 수의사는 진단과 진료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VT, VTS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나라와 테크니션 제도의 차이점을 실감했고, 수의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 수의사 진로를 고민할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언어 소통 능력이었습니다. 수능과 영어 자격증 공부 덕분에 읽기와 듣기는 익숙했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공부할 때 ‘혹시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컸습니다. 진로 세미나에서 선배님들께서 “금방 적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간 미국에서 생활해보니 정말 귀가 트이고, 꽤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어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전화영어 등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동물병원 실습에서 적극적으로 임하려 노력했지만, 실습생이 경험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제도적으로 실습생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한국에서보다 훨씬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청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중환자가 아니라면 심음 청진을 해볼 수 있었고, 여유가 있을 때는 카테터 삽입 기회도 얻었습니다. 질문과 과제가 자연스럽게 오갔고, ‘May I?’, ‘Of course.’가 반복되는 분위기에서 적극적인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실습뿐 아니라, 동기들과의 추억도 소중했습니다. 원래도 자주 모임을 할 정도로 친했지만, 이번 실습을 통해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놀이공원, 해변, 그랜드캐니언 등 다양한 곳을 함께 여행했고, 매일 저녁 마트에서 장을 봐와 직접 요리해 먹으며 나눈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동기들 덕분에 다소 낯설고 무서웠던 거리와 대중교통도 잘 이용할 수 있었고, 미국 문화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간 쌓은 추억이 앞으로의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미국 실습에서는 말병원 실습, Antech Diagnostics 견학 등 다양한 경험도 있었지만, 동물병원 실습 위주로 후기를 남겼습니다. 최대한 현장감을 살려 제가 보고 느낀 점을 전달하고자 했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그 생생함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실습을 신청하기 전, ‘나는 나중에 미국에서 수의사를 할 생각이 없는데 굳이 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미국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외임상실습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꼭 잡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임상수의사의 다양한 진로를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미국 동물병원의 구조, 테크니션과 수의사의 관계, 비대면 진료(텔레벳), Antech와 같은 진단검사기관에서의 수의사 역할 등 다양한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수의사를 하더라도 앞으로의 임상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미국 사례를 통해 더 넓은 시각으로 고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잘 이어져 후배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운영에 힘써주신 학교와 미국에 계신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국대 수의대 본과 4학년 박유진

[기고] 실습 그 이상의 경험, 미국에서의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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