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못 받는 농장동물 수의사, 생선 맡은 고양이 될 판

농장동물진료권 특위 첫 공청회, 일선 진료환경 개선 모색..항생제 문제 책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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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회(위원장 최종영)가 지난 4월 29일 충북 C&V센터에서 첫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돼지, 가금 임상수의사를 중심으로 30여명이 참여했다. 농장동물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현장 수의사들의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 불법진료·처방에 대한 문제제기에 초점을 맞췄던 특위는 올해 진료환경 개선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 농장 진료비 청구하기, 항생제 총량제 등 다양한 구상이 도마에 올랐다.

항생제 전(전)성분 처방지정을 앞두고 수의사가 내성문제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불법처방이 만연하고, 약을 많이 쓰지 않을 수 없는 산업구조 속에 있지만 어쨌든 수의사의 책임이 될 판이라는 얘기다.

 

불법진료 고발로 출발한 특위, 이제는 대안 찾아야’

진료비 따로 청구하기’ 과제

지난해 출범한 특위는 전국을 돌며 불법 처방·수의사 면허대여를 일삼은 동물병원과 동물용의약품도매상을 고발했다.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처방대상약에 대해서조차 진료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데에는 사무장 동물병원과 실소유주 동물용의약품도매상의 불법 결탁이 자리잡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아울러 동물병원을 개업하지 않은 수의사의 무자격진료를 문제 삼았다. 동물약품업계 종사자나 민간병성감정기관의 진료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올해는 활동 범위를 더 넓힌다. 농장동물 임상수의사가 그리는 새로운 진료환경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영 위원장은 “지난해에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료비 청구하기’를 과제로 제시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에만 처방대상약의 원외처방이 18만건이지만, 이들의 진료비를 농장으로부터 받았을 지는 의문”이라며 “약값과 진료비를 분리해야 한다. 수의사가 농장에 진료비를 청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매상에 고용된 처방전 전문 수의사는 아예 제대로 진료하지 않고 불법 처방을 내린다. 도매상 고객농장에 대한 위탁진료를 계약한 외부 동물병원도 농장이 아닌 도매상으로부터 비용을 받는다. 농장은 도매상에 약값만 치른다.

심지어 독립적으로 농장을 진료하는 동물병원도 그 비용은 약품 거래 계약 형태를 띄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좋게 이야기하면 약값에 진료비가 포함되어 있고, 나쁘게는 약품 거래만 하면 진료는 공짜인 셈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약을 안 쓰는’ 혹은 ‘약을 덜 쓰는’ 진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특위의 지적이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국내 축산분야 항생제 사용량은 생산량 대비 OECD 1위 수준이다.

항생제 내성 문제로 수의사 처방제 도입했더니..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될까

국내도 농장별 항생제 사용·처방 관리 도입해야

올해 11월이면 모든 동물용 항생제가 수의사 처방대상으로 당연 지정된다. 축산농장에서 쓰인 항생제 하나하나에 처방을 내린 수의사의 이름표가 달리는 셈이다. 실제로 직접진료 후 처방했든, 면허를 대여한 불법 처방이든 말이다.

돼지수의사인 엄길운 원장은 “항생제 내성률 문제로 수의사처방제를 했더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줄지 않는 항생제 사용량과 내성 문제가 결국 수의사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농가가 실제로 수의사의 진료를 받는 환경을 만드는 열쇠도 항생제 문제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금수의사인 주영호 수의사는 국내 축산농장별 항생제 구입·사용량을 파악하고 일정 기준 이상을 사용할 경우 진료·처방을 철저히 관리하는 형태를 제안했다. 덴마크의 동물용 항생제 관리제도가 모델이다.

덴마크는 2000년부터 운영한 VetStat 시스템을 통해 모든 수의사와 농장의 항생제 처방량·사용량을 전산 관리한다. 농장은 의무적으로 수의사의 진료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농장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 총량을 규제한다. 상한선을 넘으면 옐로카드를 주고, 사용량 저감에 실패하면 페널티를 부과한다.

주영호 수의사는 이미 국내도 기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을 통해 농장별 지육생산량을,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을 통해 농장별 항생제 처방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수의사는 “농장에서 소량의 약품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일정 기준 이상을 사용하려면 수의사의 진료내역과 내성 검사, 처방 등을 요구한다면 항생제를 더 신중히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 과정에서 수의사가 농장을 실제로 진료하는 환경 조성을 촉진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고객 농장 생산성 개선, 수의사 역량 강화도 과제

진료환경 문제의 요인 중에는 수의사 역량 부족도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돼지수의사인 이경원 원장은 수의사 직접진료를 통한 처방제 강화가 진료권 개선방향이라는데 공감하면서도 “결국은 생산성”이라고 강조했다.

“수의사는 생산성을 개선하고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 농장에 간다”면서 “진료권을 논의하면서 고객농장의 생산성 개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돼지수의사인 김현주 원장도 “농가가 당면한 문제를 수의사가 해결해줄 수 있다면 (진료수의사를) 많이 찾을 것”이라면서 “현실적으로 그러한 능력을 함양하고 동물병원을 개원할 수 있는 수의사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오랜 기간 운영한 농장은 여러 수의사를 만난다. 신뢰할 수 없다면 무시한다”면서 “(농장동물 수의사의) 진료권 확보에는 실력이 겸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영 위원장

컨설팅사업·관납..국가의 진료훼손 중단해야

진료환경 개선할 정책제안 환영

국가가 스스로 진료에 나서거나 진료환경을 훼손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도 특위의 주장이다.

최종영 위원장은 “컨설팅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위생시험소가 불법 진료에 나선다. 국가도 농장진료를 훼손해온 셈”이라며 “동물용의약품 관납제도도 없애야 한다. 정부가 직접 약을 처방하기 보다 동물병원의 진료를 보조하거나 공공의료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관납백신을 유지하더라도 일선 동물병원이 백신 처방, 항체 모니터링 등 진료의 일환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에 집중됐던 공수의를 가금, 돼지 등 축종별로 확대하는 한편 실질적인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종영 위원장은 “농장전담수의사 제도, 항생제 총량제 등은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에만 기대할 수 없다”면서 일선 원장의 실질적인 정책 제안을 당부했다.

불법 처방, 수의사 면허대여 등 진료권 근간을 위협하는 불법에 대한 고발활동도 지속한다.

최 위원장은 “올해만 접수된 불법행위가 26건이다. 약만 판매하는 축협 동물병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며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고발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동시에 실질적인 정책제안도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료비 못 받는 농장동물 수의사, 생선 맡은 고양이 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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