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없는 석시닐콜린` 유기동물 고통사 문제 도마 위로

비구협, 영호남·충청권 보호소 47곳 방문조사..안락사 관련 근거 제시한 단 한 곳도 없었다

등록 : 2021.01.26 11:10:57   수정 : 2021.01.26 11:16:34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영·호남권 동물보호센터 상당수가 유기동물 안락사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마취 없는 석시닐콜린 투약으로 인한 고통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전국 시군 동물보호센터 실태조사 및 개선활동 1차 보고서’를 19일 발표했다.

최근 3년간 지역별 유실유기동물 증감
(사진 : 비글구조네트워크)

유기동물 안락사 관련 근거 제시한 보호소, 단 한 곳도 없었다

비구협은 최근 3년간 영·호남권 중소 규모 시군의 유실·유기동물 증가율이 80%에 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안락사·자연사·입양 비율이 전국 평균과 크게 다르거나 인구수에 비해 유기동물 숫자가 급증한 영호남권 동물보호센터 39개소와 비구협에 제보가 접수된 충청권 동물보호센터 8개소를 대상으로 114회에 걸쳐 방문조사를 벌였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지자체 동물보호센터가 유기동물을 인도적으로 처리(안락사)할 때 마취를 실시한 후 심장정지·호흡마비를 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대상 47개소에서 마약류 관리대장이나 약물 사용 기록 등 해당 규정을 준수한다는 근거를 제시한 곳은 없었다.

격리실 등 안락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갖춘 곳도 7개소에 그쳤다. 동물보호법은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비구협은 “동물보호단체나 민원인이 안락사 현장을 참관하는 것은 어렵고, 내부 제보나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문제를) 적발하기 어렵다”며 “안락사 전 필수과정인 마취제 관련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동물보호센터는 사실상 ‘고통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비구협은 지난해 8월 전남 보성군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마취제없이 고통사를 실시한 현장을 적발했다. 비구협은 “현장의 수의사가 마취제 없이 근육이완제(석시닐콜린)로 고통사를 실시했다고 시인했다”고 설명했다.

마취제 없는 석시닐콜린 주사는 호흡근 마비로 인한 질식사로 이어진다. 의식이 있는 상태라면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이 같은 문제는 경남 고성·의령, 경북 울진·의성 등 타 지역 보호소에서도 포착됐다.

이처럼 열악한 보호환경의 원인으로는 예산 부족 문제가 지적됐다. 조사대상 보호소 47곳의 운영비는 평균 16만원으로 나타났다. 이 안에서 포획, 보호, 안락사, 사체처리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비구협은 “대부분 예산이 법적보호기간(10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1개월 이상 동물을 보호하는 곳이 절반이 넘는다”며 “현재 보호비용으로는 정상적 환경이나 관리를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보호소에서 발견된 석시닐콜린 빈 병
(사진 : 비글구조네트워크)

대동물 수의사에게 맡긴 보호사업, 개농장주나 번식업자에게 재위탁

방치되는 시골개가 유기동물 급증 원인..중성화 사업 필요

조사대상 보호소를 위탁 받은 사람 중 개인 수의사가 16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중 대다수인 15명이 대동물 수의사로 조사됐다.

비구협은 “수의사가 위탁받은 보호센터를 다시 개농장주나 번식업자에게 재위탁하는 경우도 6곳”이라며 “수익을 나눠가지는 구조로 운영비에 인색할 수밖에 없고, 방문조사에서도 전국 최악의 수준이었다”고 꼬집었다.

전·현직 개농장주(3)나 번식업자(3), 축산업자(3) 등이 위탁한 보호소도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호남 지역에서 유기동물이 급증한 원인으로는 시골개가 지목됐다. 시골에서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무더기로 보호소에 입소하거나 들개화되어 주변 지역민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비구협은 “보호소 47개소에 유입된 유기견은 일반 가정견이 아닌 들개나 시골개 중성화 미비로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이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영호남권 동물보호센터에 주로 입소한 새끼 강아지들
(사진 : 비글구조네트워크)

비구협 ‘인도적 처리 규정 구체화, 처벌규정 만들어야’

비구협은 보고서에서 유기동물 안락사 절차를 보다 구체화하고, 고통사에 대한 처벌규정 마련을 촉구했다.

비구협은 “근육이완제인 석시닐콜린은 의식 있는 상태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유발한다. 미국수의사회 동물 안락사 가이드라인에서도 허용불가로 분류되어 있다”며 “지자체 직영보호소조차 마취제가 아닌 진정제를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유기동물 안락사의 구체적 절차와 허용 약물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보호소가 안락사 관련 근거자료를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취없는 고통사가 동물학대에 해당하는 만큼 관련 처벌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이 밖에도 동물보호센터 예산을 보다 현실화하고 지자체 직영화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유기동물 발생량 자체를 줄이기 위한 시골개 중성화 사업, 유기동물보호사업 재위탁 금지 등도 개선방안으로 제시했다.